한국의 인구구조와 문화지체
우리는 먹는 것에 꽤 진지한 편이다. 가끔 전화하시는 어머님은 매번 ‘밥 먹었니?’로 대화를 시작하시고, ‘밥은 먹고 다니냐?’나 ‘식사 잡수셨어?’라는 인사가 영화나 미니 시리즈에 등장해 히트를 친다. 조금 서먹한 관계에 있는 친구나 지인과 헤어질 땐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자’란 인사가 가장 흔하게 쓰인다. 안식년때 한국에서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낸 적이 있는데, 방과후 아이들을 데리러 온 엄마들이 교문을 나선 아이들을 반기며 하는 첫번째 질문은 한결같다. ‘점심급식 뭐 나왔니?’ 요즘 세대들 사이에서 먹는 것 자체에 대한 중요성은 다소 감소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보라. 온갖 귀한 음식들이 그들의 페이지를 찬란히 장식하며, 이로써 자신의 – 혹은 자신이 지향하는 - 아이덴티티가 표출된다. 문자그대로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한 문화학자의 말을 현실에서 마주하게되는 순간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먹방은 여전히 인기가 있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십년 전 쯤이었을까. 미국 중서부의 한 소도시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던 때다. 봄학기가 5월 중순이면 모두 끝이나고, 8월 말까지 긴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매년 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와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떠난다. 대부분 미시간 호수를 끼고 있는 주립 공원들이다. 출발전 우리는 음식과 조리 도구로 미니밴의 큰 트렁크를 가득 채운다. 스테이크용 안심, 삼겹살과 각종 채소, 라면 한 박스, 쌀과 밥솥, 아이들을 위한 카레나 짜장, 소세지, 크래커와 마쉬멜로우, 그릴을 위한 차콜 한 포대, 그리고 가끔 작은 미니 냉장고 하나를 통째로 옮겨가기도 한다. 물론 맥주도 빠지지 않는다. 주위의 다른 가족들과 함께 캠핑을 갈 때도 종종 있었는데, 그 때는 출발전 모두 모여 캠핑 중 하루 세끼 무얼 먹을지에 대해 긴 회의를 하곤했다. 실제로 캠핑이 시작되면 숙영지 편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은 식사하기와 식사준비에 할애된다. 마치 ‘놀다’와 ‘먹다’가 동의어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국 대중의 캠핑 역시 초점은 먹을 것. ‘캠핑가서 뭐먹지?’가 출발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며, 실제로 이는 ‘캠핑가서 뭐하지’와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내가 목격한 미국인들의 캠핑 패턴은 이와 조금 달랐다. 물론 샘플 수가 크지 않으므로 여느 과학적 주장과 마찬가지로 확증된 것은 아니다. 그들도 가끔씩 그릴에 고기를 굽기는 하지만 대부분 햄버거 패티인 경우가 많다. 주로 아침에 간단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산으로 호수로 나갔다가 저녁에 다시 숙영지로 들어온다. 다녀와서도 뭔가 뻑적지근하게 한상 차려 먹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이킹을 마치고 돌아와 모닥불 주위에 앉아 얘기를 나누거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잠자리로 향한다. 그들은 먹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원래 목적인 하이킹에 몰두한다.
이러한 차이는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여러번 느낀 적이 있다. 한 달에 두어번 우리 아이가 미국인 – 물론 국적만 미국이고, 루마니아, 이탈리아, 아일랜드, 인도 등 부모의 문화배경은 다 다르다 –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거나 초대를 받아 친구집에 놀러갈 때가 있다. 나와 나의 처는 아이들이 놀러와서 먹을 간식에 꽤 신경을 쓰는 편이다. 최근엔 간장과 김, 혹은 매운 라면을 찾는 아이들이 몇 있어 그것들을 미리 준비해 둔다. 반면 우리 아이는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돌아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한참 자랄 때인 아이들을 초대해 놓고 먹을 것도 챙겨주지 않다니. 서운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유사한 발견은 계속된다. 한국으로 자리를 옮긴 뒤 학교나 각종 기관에 연구비를 신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거기엔 반드시 ‘회의비’가 포함된다. 연구 진행을 위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용도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며 운좋게 연구비를 몇 번 받아본 적이 있지만 이런 항목을 본 적은 없다. 나와 연구원의 인건비, 설문조사비, 장비구입비 등이 전부다. 한국이 좋다.
수립과 채집에 주로 의존하는 경우, 한 번 먹을 때 잘먹어야한다. 오늘은 재수좋게 사냥에 성공했지만 이런 날이 언제 또 올지 모른다. 사냥중 멧돼지의 습격으로 어제 하늘나라로 간 내 친구를 떠올려보면 내일 내가 살아 숨은 쉬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다행히도 농업혁명으로 안정적인 식량공급이 시작되면서 생존에 대한 불확실성은 크게 감소했고, 이것이 사람들을 ‘굶주림’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켰다.
오늘날 한국에서 음식은 매우 흔한 상품이다. 매일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만해도 하루 2만톤이 넘으니 이제 흔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다. 불행한 소수의 시민들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이 음식이다. 개인의 기호와 능력에 따라 메뉴가 달라질 뿐이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머릿속에 음식이 그토록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가난하던 시절을 살아온 우리 윗세대의 문화가 한국의 경제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화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23년 현재 한국인 평균 연령이 44.4세라는 점과 하체(저연령)에 비해 상체(고연령)비만이 매우 심각한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를 감안하면 더 그럴 듯 한 설명이다. 밥을 함께 먹으며 일상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인간적 유대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한 나같은 ‘옛날 사람들’이 문화의 세대전환을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경직된 기업문화를 바꿔보기위해 과감한 변신을 약속하던 일본의 한 회사에서 도장 찍어주는 로봇을 채택해 홍보했던 웃지 못할 해프닝이 남의 일만은 아닌 듯 하다. ‘밥’에 대한 한국인의 애정과 진심이 점차 우리 사회문화의 여러 영역으로 엷게 흩어지기를 바란다. 물론 한국이 더 젊어져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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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김상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