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아도

by 수연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 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할 때였다. 면접을 수없이 보고 또 봤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누군가 좋은 곳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겉으로는 축하하면서도 속으로는 질투와 시기, 초조함이 일었다.


이번에는 잘하고 싶었는데, 면접장을 나서며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망했다. 지난 시간 동안 쌓아온 노력과 경험들은 몇 개의 키워드와 숫자로 압축될 뿐, 실제 나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하게 느껴졌다. 면접관의 무심한 표정과 형식적인 질문 앞에서 나는 어떻게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고 초라해졌다. 좀 더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나를 질책했고, 다른 지원자보다 부족하다는 열등감은 어느새 깊은 수치심으로 변해있었다.


광화문 한복판에 홀로 멈춰 섰다. 길들지 않은 새 구두가 발을 조여왔다. 부어오른 발의 감각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고통을 참고 다시 걸을 수도 없었다. 아픈 발보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기분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제 어떻게 하지’, ‘이대로 멈춰야 하나?’, ‘뭐 해먹고 살아야하나’라는 생각에 막막함이 몰려왔다. 저리 많은 회사 중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헛웃음만 나왔다.


퇴근하는 회사원들로 북적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찾기 위해 노선도를 살폈다. 사람들은 매일 오가는 길이 익숙한 듯 심드렁하게 서 있었다. 나만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 같았다. 그때, 무표정한 사람들의 틈새를 비집고 한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왔다. 포근한 인상의 아주머니는 작은 일회용 밴드 두 개를 내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학생, 이거 붙여요.”


그녀는 어리둥절해하는 나의 손을 잡고 아래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아주머니의 시선을 따라 내려다보니 오른쪽 발뒤꿈치 살갗이 벗겨진 게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뒤꿈치가 따갑게 느껴졌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도 전에 그녀는 멀리서 들어오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달려갔다. 아주머니가 떠난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구두를 벗고 밴드 하나를 상처에 붙였다. 밴드의 중앙이 붉게 물들었다.


집으로 향하는 대신, 구두 뒤축을 짓밟아 구겨 신고 어스름한 청계천을 따라 걸었다. 낮 동안의 모든 소란이 가라앉아 고요해졌다. 잔잔한 물소리와 산책 나온 사람들의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섞여 들었다. 불빛 아래 반짝이는 물결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피로 진득해진 밴드를 떼고 아주머니가 준 두 번째 밴드로 갈았다. 발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 피는 나지 않았다. 상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물어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아지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내 마음에도 작은 여유가 생겼다.


세상은 여전히 냉정하고 내 마음 같지 않지만, 그럼에도 작은 온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소한 친절과 연민이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그 마음이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나를 다시 살게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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