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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안 Feb 21. 2024

물레를 차며 집중하는 순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하다.

교직원 연수에서 처음 접한 물레


학교에서는 교직원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그중에 자주 하는 프로그램이 도자기 체험이다. 다수의 인원이 참여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손작업을 중심으로 체험하지만 작은 학교에 있을 때에는 인원이 적어 직접 물레를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도예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물레 위에서 돌아가는 흙을 만지고 모양을 만들어갈 때의 감촉은 너무 좋았다. 어렸을 때 흙을 만지면서 놀았던 세대인데도 나이가 들어서는 흙을 직접 만져볼 기회가 없었기에 그 감촉이 새로움과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어렵게 찾은 취미반 과정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 중에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 학원을 다니려 한다고 말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도자기를 배우는 것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셨다. 그제야 예전에 체험했던 물레가 생각이 났고 그때 느꼈던 흙의 감촉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물레를 배우기 위해서 다양한 도자기 공방을 검색해 봤지만 대부분은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어렵게 취미반 및 자격증 과정을 운영하는 공방을 찾았지만 차를 운전해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당시에는 집 주변만 겨우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도자기를 배우는 것은 일단 포기하기로 했다. 


중심 잡기 하면서 깜짝 놀라다


2개월 정도 집 주변에 있는 학원을 다니면서 어느 정도 불안 증상이 완화되었을 때 생활 반경을 조금 더 넓히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침 미술 학원과 도자기 학원이 근처에 있어서 비슷한 시기에 등록을 했다. 처음 도자기 공방에 갔을 때 선생님께서 일단은 중심 잡기를 연습할 것이라고 하셨다. 흙을 붙인 후에 물레를 돌리면서 손으로 흙을 위로 올리고 아래로 내리면서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과정이었다. 예전에 한 번 해봤으니까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너무 어려워서 깜짝 놀랐다. 원데이 클래스에서 체험할 때에는 이미 중심이 잡힌 흙이어서 손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중심 잡기만 6개월 이상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중심을 잡으려고 자꾸 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흙은 더욱 중심을 잃어갔다. 도저히 중심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선생님은 아주 간단하게 중심을 잡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가 더 힘이 세지는 않겠죠? 힘이 아니라 물레가 돌아가는 속도와 손이 올라가는 속도가 맞아야 해요."


2시간 동안 집중하는 시간


한동안 불안 증상으로 인해서 점점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도 10~20분 이상 집중하는 것이 힘들었다. 무언가를 할 때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뛰고 손발이 떨리기 시작하면 집중을 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 특히 부정적인 생각으로 빠지기 일쑤였다. 생각의 미로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누워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물레를 차는 2시간은 정말 아무런 잡념도 없이 흙과 내 손의 감촉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 손이 미세하게 흔들리거나 올라가는 속도가 조금만 빠르거나 느려도 물레는 반응한다. 중심을 잡기 위해서 내 감각에만 집중하며 물레는 차는 2시간은 나에게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집중하는 것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내 주위에 있는 것에 집중했었다. 카페나 사람이 많은 장소를 힘들어했던 것도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주변의 말소리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길을 걷는 것이 힘들었던 것도 지나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의 눈빛과 표정에 집중하느라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서도 나 자신에게는 집중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내 손과 흙의 감촉에만 집중하는 시간은 새로운 깨달음으로 찾아왔다. 돌아가는 물레를 사이에 두고 나와 흙만 존재하는 그 시간이 참 소중했다. 물레를 차서 만든 기물이 잘 나올 때도 있고 엉망진창일 때도 있었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결과가 아니었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바로 그 시간이었다.


물레를 차서 완성한 도자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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