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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Jun 28. 2023

11장 소심하다는 것의 의미

소심해서, 소심한 탓에, 소심쟁이 라는 말을 할 때도 들을 때도 있다. 주로 자신의 작은 간(!), 대범하지 못함, 겁 많음, 예민함, 눈치 봄, 조심성 등을 나타내거나 그로 인한 결과를 다른 사람한테 설명할 때 사용한다. 예를 들면 투자를 권하는 은행 직원에게 안 하겠다는 의사를 ‘소심해서요’ 라고 말하거나, 부당한 처우에 말 못하는 자신을 ‘소심해서’ 라고 탓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은 나를 향해 소심한 사람, 소심해서 --하다는 말을 직접 대고 사용하지 않는다. 소심은 주로 내가 나를 표현할 때 쓰지, 다른 사람이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말이고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소심함이 분노나 짜증처럼 다른 사람이 쉽게 눈치채기 어려운 나만이 잘 아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대범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쫄보라는 건 자신만이 안다.


소심함을 한국어기초사전에서 찾아보니 ‘겁이 많아 대담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마음’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소심함의 반대편에는 대범함이 있다. 통이 크고 크게 관여치 않고 주저하지 않는 성향이다. 여행을 가면 소심파와 대범파로 나누어진다. 소심파는 아는 길로 가자며 헤맬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는 반면, 대범파는 확실치 않은 길도 가보면 길이 있고 만나게 되어 있다고 장담한다. 소심파가 있기에 여행이 안전하고 대범파가 있기에 무모함에서 오는 모험이 있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는 어떠한가. 소심파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한편, 대범파는 새로운 메뉴, 먹고 싶은 음식에 도전한다. 소심이라는 작은 마음과 대범이라는 큰 마음이 공존하니 세상은 복잡하고 일도 많다. 


인터넷에 소심함을 영어로 번역한 것을 찾아보니 재미난 표현이 많다. 닭처럼 겁이 많다는 표현의 chickenhearted, 쓰러질 것 같이 심약하다는 faint-hearted, 백합꽃처럼 창백한 간이라는 lily-livered, 라틴어에 어원을 둔 용기가 작다는 뜻의 pusillanimous 등이다. 닭, 간, 흰 색깔, 작다 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걸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심함의 특성은 비슷한 것 같다. 소심함과 연관어로는 두려운, 겁많은, 수줍은, 세심한, 조심성 많은, 자신없는, 망설이는, 꼼꼼한 등이 검색된다. 나열된 연관어들을 보면, 소심함은 만만치 않은 세상을 더 어렵게 만드는 약함이나 부족함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겁이 나도 눈 딱 감고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눈치가 보이니 신경 쓸 일이 많고, 매사에 결정을 못하니 스트레스가 심하다. 대범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까짓 것’ 이라는 말이 소심한 사람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대범한 사람처럼 누가 뭐라든, 무슨 일이 생기든, 결과가 어쨌든 하는 베짱과 뚝심을 갖고 싶지만 소심한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소심한 사람이 다 고달픈 삶을 산다는 것은 아니다. 세심하고 꼼꼼하기에 실수가 별로 없고 생각이 많아 진중하고 배려심이 깊으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드물다. 소심한 친구를 두면 덩달아 텐션이 떨어지나 안전하고 신뢰롭다. 


양이를 표현하는 다양한 형용사 가운데 소심함이 빠질 수 없다. 새로운 사료를 덥썩 맛보는 것이 아니라 냄새만 슬쩍 맡고선 단박에 물리치고, 새로운 놀잇감도 위협으로 여겨 달아나고, 모든 고양이들이 중독된다는 고양이 방석에도 한 발만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한 뒤 가버린다.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양이를 푸쉬해 본 적은 없다. 소심한 양이에게 올라가라, 먹어라 등으로 부담을 주면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소심한 사람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말은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다, 크게 걱정할 일 아니다 등인데 이러한 말들이 위로가 되기 보다 압박이 된다. 마음 속으로는 엄청 부담이 되는데 머리로는 부담갖지 말라는 메시지 간의 불일치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걱정이 되는 일 앞에 걱정하지 말라는 조언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머리 속 가득 걱정으로 차 있는데 쓱싹 그릇 닦아내듯이 걱정을 비우라니 비현실적인 일이다. 


최근에 양이가 누워 있는 집사에게 가까운 거리로 다가온 적이 있다. 일년에 몇 번 안되는 일이기에 신났지만 꾹 참으며 양이가 어떻게 애정 표현을 하는가 기다려 보았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한 쪽 발로 팔꿈치를 건드려 보다가 가만히 있으니 나의 팔에다 자기 발을 포개는 것이었다. 마치 슬로우 모션을 찍듯이 양이의 조심스러운 앞 발과 건드림, 확인, 눈치 봄, 포갬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재미있었다. 소심한 사람의 애정 표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다고 무조건 직진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태를 조심스레 확인하는 절차와 일련의 검증을 거친 뒤에 신중한 고백을 하지 않을까 싶다. 


왜 나는 소심할까? 이 고민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우선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성향상 남들보다 마음 사이즈가 작게 태어났다는 뜻이다. 어릴 적부터 겁도 많고 주저주저하고 수줍음이 많았다면 사이즈가 작은 마음을 갖고 태어났다고 본다. 어린이 상담을 해보면 소극적인 아이라서 좀더 대범하게 길러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무장한 부모를 만난다. 많은 친구들과 섞이게 하고 태권도와 웅변(스피치)을 가르치는가 하면 단체활동의 대장 역할을 추천하기도 한다. 모두 사회성을 기르고 담력과 용기, 리더십을 기르는 활동을 통해 소심함을 극복하라는 뜻이지만, 성향상 소심한 어린이들이 훈련만으로 어느날 갑자기 대범한 어린이로 변신하는 것은 어렵다. 나이를 먹고 좋은 관계와 경험, 성취를 쌓아가며 서서히 소심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소심함은 남아 있을 가능성은 높다. 두번째 이유로는, 삶의 힘든 경험이 남긴 흔적이다. 고달프고 힘든 시간을 많이 겪음으로 인해 눈치를 보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작고 큰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트라우마, 따돌림, 이별, 사고, 실패, 좌절 경험 등으로 인해 마음 사이즈가 반복적으로 쪼그라들면 소심증이 생긴다. 불안장애,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적인 질병도 힘든 마음을 참고 누르다가 마음의 공간이 작아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소심과 대범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소심도 스펙트럼의 일종으로 심한 사람과 심하지 않은 사람의 연속선 가운데 어딘 가에 있거나 뒤섞여 있다. 많은 것에 대범한 사람도 의외로 어떤 것에 대해선 소심할 수 있고, 소심한 사람에게도 대범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소심파인 나의 경우 십만 원 쓰는 데는 벌벌 떠는 한편 백만 원 쓰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수술받는 것은 대수롭지 않지만 백신 예방 주사 맞는 것은 일주일 전부터 걱정으로 인해 덜덜 떤다. 은행에 가서 투자 상담을 하면 억 단위가 오가는 것은 무감하지만 천만 원이 왔다갔다 하는 것은 후덜덜해진다. 


실제로는 소심함으로 손해를 보거나 방해가 되기 보다는 자신을 괴롭히는 때가 더 많다. 나는 왜 이렇게 겁이 많을까, 소심할까, ‘노’라고 과감하게 말하지 못할까, 맨날 뒤에서 구시렁거리기만 할까, 남들 눈치가 보일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할까, 남들 의견에 쉽게 영향을 받을까, 그렇게 했어야 되는데 등으로 자신의 작은 마음을 구박하는 하는 것이다. 소심한 사람이 자책과 후회가 많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괴롭고 남들로부터 좌지우지 당하는 것 같아 속상하고 그런 자신이 싫은 이유이다. 


그런데 소심함에도 양면이 있다. 소심한 사람은 마음의 크기가 작은 대신 섬세하고 진중하며 집중력이 뛰어나다. 세심하다 보니 실수가 적고 생각이 많다보니 신중하며 집중하다 보니 결과물이 좋다. 무엇보다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는 대신, 뒤에서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라준다. 불평과 군소리없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며, 대놓고 수고와 힘듦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소심한 사람과 같이 일하는 사람은 오히려 든든하고 마음 편하다. 소심함으로 인해 본인은 괴롭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소심한 사람에게는 걱정되고 아쉬운 마음, 복잡한 생각들을 털어놓을 수 있고 소심함을 탓하지 않으면서 지지해 주는 지원군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소심한 사람은 소심한 자신을 탓만 안 해주어도 살 것 같다.  


양이는 자기의 정체성을 소심양이로 아예 정해 버린 눈치이다. 집사가 빤히 새로운 사료나 간식을 사와도 자기는 원래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고양인 줄 모르냐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런 소심양이다 라고 선언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멋지다. 소심하면 소심한 자신을 받아주고 남들도 그렇게 알라고 말해주는 것도 살아가는 방법이다. 굳이 대범한 사람 앞에서 주눅들거나 부러워하는 대신, 너는 대범해서 좋겠다/나는 소심해서 힘들다 라는 태연한 마음을 가진다면 꽤나 대범한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소심함을 싸워 물리쳐야 할 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나의 일부로 소중히 받아주면서, 남들보다 더 갖게 되는 스트레스와 긴장, 불안을 조금씩 줄여가는 연습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내키지 않는 부탁에 ‘노’라고 말하고, 먹고 싶지 않은 메뉴 대신 다른 메뉴를 골라 보고, 부당한 요구를 예의있게 거절하고, 트집이나 짜증을 무시하고, 부정적인 피이드백에 맞서 설명해보고, 나홀로 결정을 내려 보는 연습 말이다. 나의 경험상 소심파의 삶은 심심하지만 소심파만의 안전감과 조용한 즐거움이 있다. 소심파여 지혜롭게 스트레스와 긴장을 줄여가는 훈련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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