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은 다양한 행동과 특기로 보호자를 즐겁게 하고 때로 위로와 용기를 준다. 사람과의 소통이 가능한 탓에 손! 하면 앞발을 내밀고 엎드려! 명령에 포복 자세를 취하고 빵! 하면 드러눕는 강아지를 보고 즐겁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호자가 아프거나 슬퍼 보이면, 옆에 와서 가만히 있어주거나 핥아주는 행동을 하는데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반면 자기중심성이 강한 반려묘는 차이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자기가 우선이고 집사는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의 치명적인 매력은 존재감이다. 순종, 충성, 애교와 같은 행동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닌, 같이 있는 것 자체로 든든하고 기분 좋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깨가 쏟아질 정도로 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거슬리지도 않게 요령껏 자기 몫을 하는 룸메이트에게서 느껴지는 정겨움이라고 할 수 있다. 반려묘로서의 매너를 잃지 않고 항상 자기 자리를 지키는 양이와 생활하다 보면, 한 배를 탄 동지의식으로 힘이 되고 즐겁기도 하다.
존재감이란 말을 많이 쓴다. 존재감이 큰 사람, 제로인 사람, 미친 존재감, 확실한 존재감과 같은 표현에서 느껴지듯이, 존재감이란 사람이나 사물에게서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또는 ‘나는 여기 있다’ 는 식으로 흘러나오는 느낌을 말한다. 흔히 훌륭한 외모에서 뿜어 나오는 아우라, 크고 다부진 체격에서 비롯되는 파워, 날카롭고 지적인 분위기, 신비로운 이미지에서 비롯되는 두드러진 느낌을 말한다. 공통점은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느낌 자체가 강렬하고 돋보이게 만드는 파워인 것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존재감이 큰 사람을 찾아보니 기억나는 몇몇 연예인, 정치인, 사회 유명 인사 등이 떠오른다. 반대로 존재감이 없다, 존재감이 작다는 표현은, 거기에 있지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 함께 했지만 기억나지 않는 사람 등을 말할 때 사용된다.
존재감은 포스(force, 힘)와도 비슷한 의미로 쓰여 지기도 한다. 존재감 있다가 포스가 있다고도 표현되고, 누군가가 존재감이 크다면 그만큼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종종 특정 인물의 존재감으로 인해 몰랐던 이슈에 대해 주목하게 되고, 그 사람이 광고하는 브랜드가 관심을 받게 되는가 하면, 사람들의 연민 또는 공분를 일으키기도 한다. 나의 경우만 해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품기는 존재감에 매료되어 투표를 하고 여행지를 결정하고 물건을 구입하기도 한다. 외모가 되었던 능력이 되었건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존재감 타령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종종 존재감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모임에서 튀는 행동을 하고,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신비주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등 독특하고 도드라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본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존재감을 알림으로써, 관심을 받고 의도한 목적을 이루려는 것 같다. 반대로 존재감을 감추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용히 듣기만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상식 밖의 행동에도 눈을 감음으로써,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만들거나 감추는 존재감은 특정한 목적을 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찐 존재감과는 다르다.
외모나 분위기가 출중한 사람, 파워풀해 보이는 사람, 시선을 끄는 사람으로 존재감 있는 사람을 정의하면, 소심하고 말주변 없고 매우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나와 비슷한 주변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대신, 존재감의 의미를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각각의 느낌으로 좀 넓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색다른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키가 작고 야무진 데서 느껴지는 똘똘한 존재감, 상식과 정보가 풍부한 데서 느껴지는 지적인 존재감, 따뜻한 미소와 점잖은 모습에서 풍기는 인격적인 존재감, 정확한 사리판단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 존재감, 유머감각이 뛰어난 데서 오는 유쾌한 존재감 등등. 존재감을 있다/없다, 크다/작다의 잣대가 아닌, 누구에게나 있는 느낌 또는 분위기로 여긴다면, 우리 모두는 각각의 존재감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어떤 사람은 외모로서 존재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재능이나 인격으로, 어떤 사람은 평범함이나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자기만의 무엇으로 존재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존재감이 있기에 모두 열심히, 즐겁게, 의미를 갖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존재감이 없다고 느껴지면, (그 또한 존재감의 하나이겠지만) 사는 것이 지루하고 방향을 잃을 때가 있는 것 같다. 존재감은 나의 일부이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오래 전 살던 동네에서 존재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나의 아버지이다. 항상 웃는 얼굴에 신상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휠체어에 탄 채 수퍼 마켓을 매일 다니는 백발의 노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명랑한 할아버지로 통했다. 아버지가 건네는 눈인사, 손인사는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 기분을 전염시키며 유쾌한 존재감을 나타내었다. 나의 남편도 한 존재감 한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남편과 마주치면, 숱이 많은 은발에 배가 나오지 않은 날씬한 체격과 큰 키로 인해, 초로의 할아버지 연배지만 쌩쌩한 신사의 느낌을 풍긴다. 아마도 이런 존재감으로 인해 더 열심히 운동하고 등산을 하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양이의 세계에서 양이의 존재감은 아주 미미하거나 없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 평범하고 소심한 고양이인 탓에 호감과 매력을 뽐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양이의 존재감은 집사에게 그 어느 고양이의 존재감보다 크고 소중하다. 무뚝뚝한 겁쟁이 양이의 존재감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즐거움이 되고 위로가 된다. 양이처럼 존재만으로도 누군가를 마음 편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존재가 되면 좋겠는데, 나의 존재감은 어떨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