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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Jun 28. 2023

13장 원함과 필요의 중간 지대는 ‘좋아함’

나이 들면서 편하지만 슬픈 점은 필요한 것이 줄어들고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신발이 대표적인 예이다. 젊은 시절 나의 짐 가운데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신발이었다. 신발장이 차고 넘쳤는데, 막상 버리려고 하면 언젠가 신게 될 것 같아 버리지 못하고 새로이 사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신으려고 하면 딱 마음에 들어오는 신발이 없었으니 신발의 세계는 신기할 따름이다. 신발도 예전에는 구두가 위주였다. 직장, 모임, 친정 방문에도 각각의 특성에 맞게 구두를 골라서 신었고 구두를 꼭 신어야 되는 줄 알았다. 구두 시대가 지나고 운동화 패션 시대가 도래하면서, 신발장에는 형형색색 구두들보다 부피가 나가는 운동화들이 차지한다. 


요즘 나의 신발장도 추세에 맞추어 구두는 봄, 가을용 두 켤레에 운동화들이 대부분이다. 정확히 세어보니 운동화가 여섯 개인데 실제로 자주 신는 것은 두 켤레에 불과하다. 신는 이유, 안 신는 이유도 각각이다. 신는 이유는 비교적 최신 트렌드에 발이 편해서이고, 안 신는 이유는 초라하고 발도 불편하고 나의 차림새와 구색이 안 맞기 때문이다. 보기만 해도 즐거웠고 화려했던 신발장에서 단촐하고 빈약한 느낌이 나는 이유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 만나는 사람들, 가야 할 곳들이 없어진 데다, 편한 신발로 다니는 게 우선이 되었다. 어디 신발뿐인가. 살림살이, 옷, 장신구, 책, 가방, 가구 거의 모든 것들이 줄고 최소화되어진다. 의식주가 단순해 지다보니 생각도 단순해진다. 생각할 것들이 있지만 이전처럼 생각에 잠겨서 고민에 빠질 만한 힘이 없다. 대신 내가 편하고 좋아하는 한두가지 생활에 집중하게 된다. 


양이의 보물 서랍이 있다. 딸의 말로는 인터넷에 나와 있는 고양이 장난감과 용구들은 다 모아 놓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자주 사고 들여 놓지만 대부분 양이가 좋아하질 않아 고스란히 서랍행이 된 아이템들이다. 주기적으로 아이템 나누기를 하지만 신상을 들여오기 때문에 보물 서랍은 늘 만원이다. 아이템들의 본전 생각에 서랍을 열면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어쩔 수가 없다. 양이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비용 절약 겸 아이템의 효율화를 위해 신상 구입을 자제하는 대신 양이가 좋아하는 두 세가지 놀이 아이템을 주기적으로 바꾸어 주고 있다. 


그렇다고 양이가 재미없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자기 마음에 드는 두 세가지를 가지고 잘 놀기 때문이다. 양이처럼 산다면 돈도 안 들고 힘도 안 빼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며 그것에 따라 만족과 불만족을 저울질하며 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신발장뿐이었을까? 나의 삶에는 원하는 것, 꼭 있어야 되는 것, 있지 않으면 불안한 것, 심지어 막연하게 있어야 될 것 같은 것들로 꽉 차 있었다. 그 중에는 내 마음에 들어서 산 것도 있지만, 남들이 좋다고 해서, 삶의 질이 올라 간다고 해서 얼떨결에 들여 놓은 것들이 더 많다. 냄비가 부엌장에 차지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크다. 냄비 본체에다가 뚜껑과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이다. 특히 6세트, 8세트 식으로 들여 놓기 때문에 큰 냄비, 작은 냄비, 딸려온 프라이팬 등을 합치면 부엌장은 차버린다. 실제로 애용 냄비는 한 두개에 불과한데 나머지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다. 문구왕 남편도 못지 않다. 얼마 전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라면 박스에 꽉 찬 새 문구류를 발견하였다. 포장을 뜯지 않은 채 몇 년 된 것, 일본에서 사들인 것, 직구로 들여온 것, 대형 책방에 갈 때마다 사 모은 것들이다. 정작 본인은 이런 문구 박스가 존재하는 것도 잊어버리며 지금도 사들이는데, 자신의 취미 생활이니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한다. 사실 물건을 구경하고 연구하면서 들여 놓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취미이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 


나의 냄비나 남편의 문구류 수집을 보면, 실제 필요보다 갖고 싶다는 원함이 더 크다. 그러기에 새 디자인이 나오고 특이한 스타일이 발견되면 마치 득템인냥 또 사게 되는 것 같다.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원한다는 것은 그만큼 삶을 향한 열정과 꿈이 있다는 뜻이다. 냄비만 보면 바닥은 몇 중인지, 스테인레스 급은 어떤 급인지, 손잡이의 질감은 어떤지 꼼꼼히 살피며 새 냄비와 함께 할 일상을 꿈꾼다.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것을 갖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을 하며 돈을 번다. 그런데 원함이 많아지면 지속적인 결핍을 느끼게 된다. 원하는 것을 이루어도 또 다른 원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 원함과 달리 필요는 삶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로 이루어진다. 냄비의 경우 필요 아이템이지만 냄비 세트가 늘어나는 것은 필요가 아닐 수도 있다. 필요에만 맞추어 산다면 간단하게 살 수 있지만 삶이 너무 빡빡하고 재미가 없다. 


최근에 재미를 붙인 아이템은 운동과 관련된 물건들이다. 짐에서 운동을 하기 위해서 운동복, 운동화를 구입했고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 수영복, 수영모, 물안경을 구입했다. 운동과 수영에 열심을 내다보니 좀더 다양한 도구들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짐에서 사용하는 폼롤러, 밴드와 더불어 수영장에서 사용하는 귀마개와 아쿠아봉을 추가로 구입했다. 추가의 도구들을 사용해보니 운동이 재미있고 더 효과적이 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운동과 관련된 소비 생활은 어디에 속할까? 필요와 원함 그 중간의 ‘좋아함’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필요에 의해 시작했지만 좋아지는 것들은 그 자체로 좋기 때문에 오래 쓰고 다른 모델이나 스타일을 찾게 되지 않는다.


양이가 좋아하는 몇 가지에 몰두하듯이, 우리 삶도 너무 많은 것으로 채우려고 애쓰는 대신,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면 불필요한 낭비와 수고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는 것들을 다 가질 수는 없지만 찐으로 좋아하는 몇 가지를 기분좋게 소유하는 것은 일상을 즐겁게 한다. 너무 필요에만 의존하는 삶에는 재미가 적고, 너무 원함을 쫓는 삶에는 만족이 없다. 그 중간 지점에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삶이 있다. 정말로 좋아하는 것들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고, 이왕이면 오래 갖고 사용할 수 있는 것들로 삶을 꾸리는 것도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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