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공유는 계획을 못 지켰다.
이제 시험이 겨우 3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공유는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 잠이나 자자며 또 계획을 미루는 공유는 언제나 이렇게 미루고 있고, 공유의 내일은 24시간이 아니라 34시간이 되어야만 미뤄둔 계획을 다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공유는 매번 시험 때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계획을 잘 지키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한 것 같다. 모임에서 들은 아이들 얘기를 되뇌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 완벽하게 모든 것을 알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수학 문제 하나에 머리를 끙끙 싸매며 시험지를 제출 못하고 있는 고은이나 학생 주임 선생님을 너무 싫어해서 선생님의 담당 과목인 과학시간에 일부러 반항하며 숙제를 번번이 늦게 내는 동건이는 이유는 다르지만 자신이 할 일을 미룬다는 것은 모두 같아 보여서 엄마들 모두 걱정이다.
드디어 책상에 앉아 계획표를 지키려 공유가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는 공유의 눈에 당장 펼쳐봐야 할 사회교과서가 아닌 교과서 옆 책 무더기가 먼저 들어오고, 계획표 따윈 잊고 평소엔 도통하지 않는 정리로 책 무더기를 붙잡고 시간을 끌고 있는 공유의 미루기 행동에는 이유 따윈 없어 보여 엄마는 더 마음이 답답하다.
공유의 미루기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도대체 없을까? 어찌 저리 불성실한 모습인지... 걱정이 앞서지만 내일이 시험인데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는 공유를 보면 ‘얼른 책 펴고 자리에 앉아!’라는 고함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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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이유로 미루기 행동을 하는 학생들이 찾아옵니다. 공유의 미루기와 고은이의 미루기, 동건이의 미루기는 모두 다른 원인으로 인해 생긴 것이지만 해야 할 일을 미룬다는 결과는 모두 같습니다.
위의 아이들을 보고 대부분 부모님께서 처음 드는 생각은 ‘우리 아이는 성실하지 않아!’입니다. 학업 지연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선생님이나 부모님께서 가장 먼저 하시는 생각이지요. 어떤 학생들은 숙제가 주어지면 그 즉시 계획을 짜고 11월 1일 마감 이전이 아니라 대략 10일쯤 전에 모든 것을 마무리해놓고 마감일이 다가오기를 여유 있게 카운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지는 않을 듯이 느껴지시지만 수많은 엄친아들이 이미 어디에나 있어왔기 때문에 그 모든 엄친아는 한명인가하는 합리적 의심도 들곤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런 성실함으로 똘똘 뭉친 학생들도 미루기를 해서 문제가 되는 학생들만큼이나 제가 많이 만나게 되곤 하는 학생들이란 거죠.
이야기는 옆으로 좀 샜지만, 성실함은 미루기 행동을 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불성실한 학생들이 미루기가 많은 것은 굳이 연구를 해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요소이지만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많은 심리학자들이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성실성을 평가하는 것은 무척 어렵고 주관적인 일입니다.
11월 1일이 마감일인 과제를 제출할 때 10월 1일에 처음 숙제를 낸 선생님의 입장에서 숙제를 내준 날부터 숫자를 센다면 1일이 지난 10월 2일에 숙제를 시작해도 미루기를 시작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기 때문이고 1일이 지나던 10일이 지나던 미루기를 시작한 불성실한 학생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업을 미루는 행동을 정의할 때, 미루기를 시작하는 시점을 부모님, 선생님과 학생 간에 조정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10월 1일에 나온 숙제가 1달이란 시간이 있다면 계획을 어떻게 짜고 언제부터 시작을 할 것 인지에 대한 전체적인 타임라인과 세부적인 시간계획을 아이와 함께 먼저 상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성인이 되기 이전에 이런 훈련이 충분히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계획을 짜는 법을 정확히 모르는 아이라면 대학생이나 성인이라도 훈련과 연습은 해야 하고 부모 혹은 교수님, 혹은 동료들과 아니면 저 같은 상담 선생님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계획 단계를 함께 상의하다보면 미리 계획이 되어 있는 일이 미루어질 때 그것이 상습적인지 일시적인지 판단할 수 있고, 일시적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늦어진 결과에 대한 이해도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습적인 것으로 판단될 때조차 아이의 시간계획표를 짜는 방법에 대한 문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숙제가 나온 날 혹은 시험일자가 나온 날 전체적인 타임라인을 잡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과제나 시험공부의 시작 지점이 어디인지 누군가가 함께 알고 있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마감일이 긴 과제들의 경우 어느 시점에 시작을 했을 때 적절한 지를 아이가 알고 있고 준비 계획을 잘 지키고 있다면, 그 기다림은 답답하지만 시작이 10월 30일이어도 크게 미루는 것이 아니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또한 아이가 미루기 행동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1일만 숙제를 늦게 시작해도 미루기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11월 1일의 마감일에 맞춰서 과제를 내지 못하고 다음날에 제출할 때 미루는 행동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적절한 기준을 함께 정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알고 합의된 정보를 함께 공유할 때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불성실한 태도나 행동에서 온 미루기 행동이라면 계획을 정확히 수립하거나 행동수정, 모델링 등의 행동치료적인 기법이나 인지치료의 기법들이 도움이 많이 됩니다. 이렇듯 부모는 계획을 짠 것을 검토하는 역할이 아니라 계획을 정확히 짜는 법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도움을 줘야 합니다.
고은이나 동건이의 미루기는 다른 해결 지점이 필요할 수 있지만 공유는 인지행동치료적인 접근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순간순간에 충실하고 집중이 짧고, 충동조절이 되지 않아 미루기를 하는 아이들도 많이 있는데 우리 공유는 그런 경향이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질적으로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학생의 미루기 행동은 단순히 불성실하기 때문은 아니고 잘하고 싶다는 동기가 없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1달 뒤 혹은 3일 뒤의 시험이나 과제보다 오늘 문제인 책상 위 책 무더기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경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책상이나 방등 공부를 하기 위해 주변 상황을 정리해 놓고 내가 집중하여하기 싫은 당면과제들 조차 집중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은 필요합니다.
공유가 중요한 시험이나 과제를 앞두고 계획을 짤 때에는 쉬는 시간의 계획도 꼭 함께 짜는 것도 제안드립니다. 컴퓨터 게임이나 유튜브를 볼 때 한 편을 보는데 혹은 게임을 한게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정확히 알아야만 ‘엄마 이 게임은 중간에 끄면 안 되는 게임이야 이것 끝날 때까지만 볼게.’라며 자연스레 하는 지연행동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공유와 비슷한 아이들에게 이것은 물마시듯 자연스레 일어납니다. 혼이난다고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지만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횟수를 줄여나갈 수 있는 지연행동들 입니다. 또한 계획을 짤 때 한가지 중요한 것은 한번에 집중을 하여 학업을 하는 시간입니다. 고등학생 아이들도 처음에 집중시간을 늘리는 연습을 할 때 15분에서 20분 단위로 학습계획을 짜곤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처음부터 한 시간이나 두 시간씩 집중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남들이 다 짜는 계획이 아닌 자신에게 맞춤이 되는 정확한 시간 계획을 짜고 지키도록 격려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유가 짜던 계획표의 헛점들을 보완하는 것은 지연행동을 막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점심 설겆이를 통에 미루어 두었습니다. 혹시 어머님도 그러신 적이 있진 않을까요? 그러나 중요한 손님을 초대해 놓고 설겆이를 가득 늘어놓지는 않을 겁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미루기 행동이기때문에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을 감정적으로 내 말을 아이가 무시해서 듣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반항하는 것이 아닐까를 걱정하시기 보다는 중요한 타이밍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를 위해 계획을 잘 지키는 아이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고 고민하시는 게 훨씬 쉬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