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꾸밈말 11
고속도로를 내달려 목적지로 가는 길, 뒷좌석에 앉은 아들과 나는 이 심심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가 끝말잇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릎' 앞에서 패배를 인정한 아들이 나에게 묵찌빠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묵찌빠를 한평생 해온 내 앞에서 아들의 실력은 기를 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지기를 반복하던 아들이 물었다.
엄마,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어?
그때 내 머릿속에 두 가지 비법이 떠올랐다.
첫째는, 마지막 단어를 유난히 크고 확신에 차서 외치는 것. 큰 동작과 함께라면 더욱 효과가 좋다. 예를 들어 묵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면 '묵- 묵- 빠!' 하고 마지막 빠를 힘주어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와 연관된 동작을 하고야 만다. 이 비법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상황과 닮았다.
두 번째는, 같은 상황에서 묵묵빠를 일정한 간격이 아닌 시간차 공격을 하듯 밀어붙이는 것이다. 담담하게 침묵을 지키다가 '묵묵빠~' 하고 스리슬쩍 타이밍을 혼란시키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 혼란은 목소리가 작아도 커도 모두 성공하는 편이다.
나의 두 가지 비법을 듣고 난 아들은 자신감에 넘쳐 재도전을 했지만 혀가 꼬이고 동작이 헛 나오는 오작동으로 나에게 연거푸 졌다. 자신이 고안해 낸 방법이 아닌 누군가의 방법을 열심히 따라 하는 아들의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귀여워서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들도 본인의 목소리와 동작이 조절되지 않으니 헛웃음을 내뱉으며 스스로 고꾸라졌다.
가는 길이 있었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있는 법. 이번엔 내가 운전대를 잡고 남편과 아들이 뒷좌석에 앉았다. 아들은 나에게 전수받은 묵찌빠의 비법을 터득해서 아빠를 이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운전하던 남편이 그 비법을 못 들었을 리 없다. 어느새 승부욕이 발동한 두 사람은 운전하는 내 귀의 고막이 휘청거리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묵찌빠를 이어나갔다. 목소리 크기와 길이, 그리고 타이밍을 어떻게 잡아야 상대를 홀릴 수 있는지 감도 못 잡은 두 사람은 목이 아프기 시작해서야 게임을 멈췄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또 웃고야 말았다. 그리고 동시에 지나간 몇몇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고야 마는 이런저런 일들.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뒤쳐질 거라고 부축이며 혼란의 스파이크를 때려 넣는 교활한 말들. 떠밀려한 선택이 아닌 나의 온전한 선택을 위해서는 큰 목소리와 시간차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고정박을 지켜내야 한다는 결론과 함께. 그렇게 쌓인 별것 아닌 비법들이 모여 비범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뒷좌석에서 아들이 부른다.
엄-마!!!!!!!!!!!!!!!
(생각을 끊고 안 쳐다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