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말이 명품이 되던 순간

말의 품격

by 안미정

결혼 8년 차. 그동안 남편과 나 사이에는 꽤 많은 말들이 오갔다. 그러면서 말들에 담긴 생각들이 서로에게 물들어 우리 둘은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의 사고 필터를 장착하게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고 말하더라도 그 이면을 보게 되는 그런 사이.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대면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교육 서비스를 업으로 삼아온 나는 물질적으로 심한 타격을 받았다.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었던 남편의 재택근무가 이어지면서 나는 심적으로도 지쳐갔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일을 할 수 없는 현실과 무너져 버린 삶의 균형에 허덕이며 자아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말하기를 좋아했던 내가 말을 잃어가고 가정에서는 필요한 말들만이 오갔다.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 아이에게도 Yes와 No정도의 간단한 지시어를 제시하며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미안했고 부족했지만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없었던 나는 어느새인가 침체된 시간들의 침전된 부유물이 돼버렸다.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질문했지만 생각할 힘조차 없었다. 잠이 늘었고, 일어나기 싫었고, 잘 돌아가는 SNS 세상을 들여다볼 때마다 더욱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보였다. 삼시세끼 밥을 먹고, 집을 치우고, 세탁물들을 처리하면서 몇백 번이나 현실에서 벗어나 가상의 공간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매일같이 나에게 묻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상공간에서라도 내 꿈을 펼치는 거야."

온라인 교육 서비스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자 실행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이미 4개월간 온라인 수업을 받아온 아이를 통해 온라인 플랫폼의 쌍방향 소통 가능성을 알고 있었고, 영상과 음성의 최적화 세팅에도 익숙했다. 수십 년간의 오프라인 티칭 노하우를 온라인으로 옮기기 위해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과정은 행복하기까지 했다.


디지털 기술을 익히고 여러 프로그램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는 나에게 희망이라는 공을 쏘아 올리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나는 다시 활력을 되찾았고 하고 싶은 말이 생겨났다. 매일 마지못해 차려냈던 밥상에도 생기가 돋아나고 무지개색 향연이 펼쳐졌다.


오가던 말 수가 확연히 줄었던 우리 둘 부부의 사이에도 더욱더 활발한 대화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 익은 벼가 고개 숙이고 낙엽이 지는 가을이었지만 우리 집에는 봄이 찾아온 듯했다. 우리 집은 생각의 싹이 트고, 대화의 꽃이 피고, 신선하고 영롱한 초록 기운이 가득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배움을 추구하면서 나는 지금이야말로 나만의 콘텐츠를 생산해야 할 때라는 것은 직감했다. 그리고 모든 시작은 최소한의 투자가 필요했다. 모두가 어려웠던 때라서 섣불리 그 말을 꺼내는 것이 두려웠고 언제, 누구에게 이 말을 꺼내야 하나 망설였다.


"여보, 있잖아..."

"응?"

"나 사업을 해보려고. 근데 투자금이 필요해. 어떻게 마련하면 좋을까?"

"그래? 내가 투자할게. 내가 투자자가 될게."

"..."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거대한 자존심이란 벽 앞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나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선약한 남편에게 나의 바람을 너무 느지막이 알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나에게 선뜻 투자하겠다며 말을 건넸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 그 누가 뭐라 해도 함께해 줄 든든한 동료와 함께하는 기분.


나는 더 이상 세상에 떠다니다 아무 곳에나 주저 않은 부유물이 아니었다. 나는 영양분 그 자체였고 내가 하기로 하면 무에서 유도 창조할 수 있는 창업자, 내 삶의 주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의 한마디는 그렇게나 소중했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내 남편이라니!


학생 부부로 유학을 나와 잦은 이사를 다니느라 명품 하나 걸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철없는 아내에게 명품 말 제조사 남편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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