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의 기원
중화요리 전문점을 경영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은 내 식도락 취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부인할 생각조차 없다. 내가 중화요리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를 공유하자면, 나는 자장면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다. 예쁘게 수놓아진 오이채와 삶은 달걀 반쪽은 필수옵션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시작된 이 습관은 꽤 오래 유지되었다. 조기교육이 참 무섭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탕수육 부먹녀다. 주방을 담당하셨던 작은 아버지는 요리에 자부심이 큰 분이셨고 그분의 믿음에 따라 탕수육 소스가 따로 나오는 일은 "배달"이 아닌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게 부먹은 초코파이에 초코가 묻혀 나오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부먹이 참 맛있었다. 적당히 촉촉해진 탕수육 껍질을 한입 베어 물 때면 그 보드라움에 눈이 절로 감겼다.
그러나 IMF 불경기에 갑작스레 가게가 폐업된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단, 나의 입맛만 빼고. 그리고 한동안 중화요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작은 아버지의 중화요리 맛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까닭도 있었고, 지금껏 공짜로 먹었던 음식을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한다는 것이 미치도록 아까웠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감사해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보기 좋은 것, 인기 많은 것, 쿨하다고 소문난 것들로 나를 포장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연애할 때도 유명한 음식점을 검색해서 찾아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당시 이연복 셰프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중식에 대한 나의 관심이 되살아났다. 명성이 자자한 중식당들을 몇 번이고 찾아갔지만 탕수육만큼은 나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다. 맛이 없어서 라기보다는 내가 찾던 맛이 아니어서일 것이다. 결국,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 탕수육 맛"이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연애시절의 남편은 새로운 음식을 찾아 나서는 호기로운 취미가 있었는데 그런 그를 따라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을 접해볼 수 있었다. 여러 번 유명한 중화요릿집에 찾아갔는데 우린 항상 짬뽕, 짜장에 탕수육까지 시켰다. 물론 탕수육은 터질 듯 한 포만감으로 느려지는 젓가락 속도를 감안해서 "찍먹"으로 주문했다. 부먹일 경우 탕수육의 튀김이 보드라운 식감을 넘어서 문드러졌기 때문이다.
이런 연고로 나는 내가 부먹녀라는 것을 남편에게 밝힐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찍먹에 익숙해갈 때쯤 나는 남편의 인도로 찹쌀 탕수육을 처음 먹어보게 되었다. 그리곤 그 쫄깃한 맛에 단번에 매료되었다. 고기튀김이 갖는 고유한 맛에 참으로 눈을 떴다고나 할까? 탕수육이 꼭 부먹일 필요는 없다고 알려주는 듯했다.
얼마 전 내 개인 페이스북에 공유된 수년 전 추억에는 "찹쌀 탕수육, 소스는 꼭 따로 찍어 드세요!"라는 권고문과 함께 작성된 나의 포스팅이 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탕수육 먹을까 여보?"
"좋지. 고기를 좀 사 와야겠네."
타향살이 8년 차, 동네에 중화요리 집이 없다는 사실을 달게 인정하고 우리 부부는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몇 번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이젠 고기를 큰 덩어리째 구입한 후 손질해서 요리한다. 반은 돈가스, 그리고 반은 탕수육. 쓱쓱 칼을 갈고 고기를 재단하는 남편의 모습이 이제는 참 익숙하다. 그런데 아뿔싸, 오늘 남편의 욕심이 조금 과해 탕수육 튀김이 딱딱하게 튀겨졌다.
"아, 어쩌지?"
"괜찮아. 그냥 먹지 뭐."
"그럼 오늘은 부먹 하자."

찍먹남 남편의 입에서 "부먹"이 나올 줄이야! 나는 거침없이 고기튀김 위에 소스를 부었다. 촤르르르~ 영롱한 오렌지 빛 소스가 튀김을 감싸며 스며들었다. 소스가 듬뿍 묻은 튀김 하나를 집어서 한입 베어 무니 촉촉한 식감에 온몸이 찌릿했다. 참 맛있었다.
부먹도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는 남편의 평가를 들으며 '라테는 말이야~'가 튀어나오는 것을 참았다. 남편은 내가 부먹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까? 아니 내가 말한 적이 있던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서로가 익숙해진 이 시간,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 "때로는 찍먹, 어쩔 땐 부먹"이라는 우리의 취향이 생겨난 것에 마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