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내 청년시절 대부분의 모임과 만남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항상 설레었던 곳이고 지나갈 때마다 혹여나 누구라도 만나지 않을까 주위를 한번 더 둘러보게 되는 곳이었다. 그날의 모임 장소도 역시 그곳이었다. 나는 그이의 손을 잡고 기나긴 출구 계단을 올라 헉헉대는 숨도 고르지 못한 채 어여쁜 동생들을 만났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는 모든 이의 주목을 받았다. 찬란한 20대의 그를 주목받게 한 일등 공신은 바로 등산복 패션.
"아우 진짜! 오빠, 언니랑 만나면서 이러지 마. 언니는 그래도 괜찮아?"
편하잖아.
편안하다는 한마디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핀잔의 목소리를 잘근잘근 씹어 넘기는 그의 태도마저 좋았다. 사실 나는 그의 일관된 등산복 패션에 고맙기도 했다. 꽁한 마음이 없고 자신을 타인의 시선 안에 가두지 않는 그는 우리 둘만의 데이트를 하는 날이면 정성스러운 차림으로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막역한 선후배들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그의 예쁜 패션. 사랑은 칼로 물 베기라던가? 비록 등산복이 아닌 옷들의 깔맞춤이었지만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 그이의 최선이 묻어나는 안성맞춤 패션 앞에 나는 항상 속수무책이었다.
그이와 만나 온 물리적 시간이 쌓여갈수록 더 오래 함께하고픈 마음도 커져갔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유난히 남달랐던 젊은 시절의 나는 누구의 소유가 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특히나 어린 시절 겪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남자를 믿지 못하게 되면서 그이와 손을 잡고 포옹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모든 혼란스러운 순간들 속에서도 내 마음은 분명했다. 나는 그의 것이 되고 싶었다.
"우리 강릉에 놀러 갈까? 근데 1박은 안돼."
그러지 뭐.
'그러지 뭐'라는 한마디로 아쉬운 내색 없이 단번에 내 의견을 존중해 준 그가 고마웠다. 그리고 새벽 12시경 고속버스를 타고 무작정 강릉에 도착해 바닷가 곁 포장마차에서 날을 샜다. 조개구이도 시켜먹고 어묵탕도 시켜먹었다. 소주 한 병에 얼얼하게 취기가 오르자 우리 둘은 새벽 댓바람에 어두 컴컴한 모래사장을 내달렸다. 쏟아질 것 같은 별이 빛나는 밤,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환한 별이 되어 주었다. (진심 이게 다다)
달밤의 체조를 마치고 잠이 쏟아졌지만 숙소를 잡아 놓지 않았기에 무작정 걸었다. 그러다 기차를 잡아타고 속초로 넘어가 신사임당 생가에 들려 차 한잔을 하고 초당 순두부집을 찾았다.
"우리 여기서 좀 자고 갈까?"
그러지 뭐.
망설이는 내색 없이 또 한 번 순순히 내 의견을 따라준 그는 순두부집주인 아주머니를 만나 사정이 이러한데 잠깐 눈 붙일 수 있는 방이 있냐고 물었다. 흐지부지하지 않고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그가 멋져 보였다. 지금은 정말 유명한 맛집이 된 그곳의 주인분은 흔쾌히 우리에게 뜨끈뜨끈한 단체 손님방 하나를 내주셨고 우리는 방석을 베개 삼아 잠을 청했다. 드르렁 두루렁 콧노래 부르며 얼굴을 맞대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딱 한 시간 잠을 청한 후,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서 순두부를 시켜 먹었다.
"이거 추가할까?
그러지 뭐.
애틋한 사랑이 절정에 달한 것은 내가 유학길에 올라 롱디를 시작하게 되면서부터다. 나는 그에게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보내주길 원했고 그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묵묵히 그의 삶을 살아내기 바빴다. 15시간의 시차가 주는 우리 사이의 심리적, 물리적 간극은 엄청났다. 한 번도 우리 사이를 의심하지 않았지만 건조해진 내 마음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_왜 연락이 없어?
(읽씹)

때때로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술자리에 간다는 그에게 카톡을 보내고 읽씹을 당했을 때는 내 마음에 심하게 금이 갔다. 틈 사이로 흩날리는 마음의 가루들에 눈앞이 가려졌고 눈물이 났다. 그가 내 전화를 받지 못하거나 핸드폰이 꺼져있다는 매몰찬 여성의 안내를 받을 때면 나는 그에게 칼날을 갈았다. 너도 한번 아파보라고.
이렇게 칼로 다져온 우리 사랑은 연애 4년 결혼 7년, 총합 11년을 향해간다. 그사이 그이를 움직이게 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존재가 열 달간 내 뱃속에 머물다가 세상에 태어났다. 이 기념비적인 사건은 그와 나의 사랑이야기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요구했다. 우선, 전지적 나의 시점에서 벗어나야 했다.
"아빠, 나 짜장 먹고 싶어."
그러지 뭐. 여보 나 좀 도와줄래?
남편의 한마디에 나는 칼을 들고 나섰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모든 재료들을 제대로 다져주겠다는 결심과 함께. 이럴 때면 물을 베어 오면서도 틈틈이 날카롭게 유지해온 칼날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신속 정확하게 움직이는 나의 칼놀림이 남편과의 듀엣으로 울려 퍼지니 우리 집 주방은 흥으로 가득하다. 나아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을 맛보며 함께 간 맞춰가는 삶을 통해 식구(食口)의 참 뜻을 알아가는 기쁨이 참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