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말 자연인 Mar 31. 2023

무료함과 독서

이 글은 육아휴직 중에 무료해서 썼던 글인데 업무에 복직한 지 한 참 지나 갑자기 정리해서 마무리한 글이다


요즘은 꿈도 꾸던 것만 꾼다. 몇 개의 스토리가 반복될 뿐이다. 전날 밤 꿈자리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다 생각되면 어김없이 예전에 꿨던 꿈을 또 꾼 것이다.


요사이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도 자주 힘에 부친다. 이해하기가 싫거나 힘들다는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심리적 육체적 에너지가 기대이상으로 소비된 다는 뜻이고 또 그럴 여력이 없다. 유튜브도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늘 비슷비슷한 영상만 볼뿐이다.


철 지난 사극을 짧은 영상으로 봤을 때 옛날 생각이 나면서 이미 아는 내용이라서 이해하는 데 전혀 힘이 들지 않아서 어느덧 그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공영방송사도 유튜브에 수시로 종영된 지 오래된 사극을 틀어주거나 명장면들을 업로드해 준다. 아무 때나 들어가서 봐도 그 영상이 작품의 어느 시점인지와  상관없이 수월하게 그 상황에 이입하게 된다. 왕건이나 대조영, 해신을 쓸데없이 많이 본 것 같다.


틱톡이라는 아주 짧은 영상만 취급하는 서비스도 자주 보게 되는데 조금만  보자 하고 시작하면 수십 분이 그냥 지나간다. 자극적인 내용들을 계속 보게 되니 그 세상에 갇혀 우리네 일상생활도 그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한 번씩 무료함을 달래고자 영화를 본다. 그나마 내 일상에 새로운 줄거리가 주는 신선함을 맛볼 수 있다. 나는 영화 추천작 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핸드폰에 목록화시켜 놓는다. 짬이 생겼을 때 이것저것 검색하느라 허비하는 시간도 아깝고 그 자유시간에 꼭 유튜브를 틀었다가는 삼천포로 빠져 이상한 영상이나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나를 가두기 전 까진 한 편의 영화에 오롯이 집중하기도 쉽지 않다. 오지도 않는 카톡을 보기도 하고 쓸데없는 기사나 인터넷 짤에 탐닉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꽤 오래전부터 전자책 리더기를 정말 사고 싶었다. 뜻하지 않게 공돈이 생겨 중고로 하나 장만했다. 침대 옆에 눕서대를 두었는데 독서등이 너무 밝아 아내가 잠을 못 자겠다고 잔소리를 했었다. 전자책 리더기는 어두워도 가독성이 좋아 정말 만족한다. 특히 전자책을 아이패드로 볼 때와는 현격하게 다른데 일단 눈이 편하다.


낮에 딸아이를 재우고 등을 맞대고 누워 옆에서 독서하기 편하고 또 밤에 잠들기 전 잠이 올랑 말랑 할 때까지 읽다가 스르르 자서 좋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모습을 도윤이나 다연이가 본다면 아빠가 침대에 자빠져 유튜브나 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윤이한테 이건 책이라며 아빠는 독서 중이라고 세뇌 중이다.


작년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은 슈필라움에 있느라 전자책 리더기를 사지 못하고 둘째 날 아이들이 자는 야밤에 공원에서 구매했다. 일월 중순까지 그래도 꽤 읽었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었는데 최근 읽은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와 비교 또는 연계되어 읽기 좋았다.


또 말로만 듣던 법정스님의 수필집을 읽었는데 글이 간소하고 정갈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족함을 알고 사시던 분의 글이라 내 인생에 시사하는 바도 조금 있었다. 바깥은 한여름이라는 단편소설집을 읽으면서는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에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났고 또 소설 속 화자가 인간이나 동물이 아닌 무생물인 언어가 주인공인 단편소설에 놀라기도 했다.


읽다가 도저히 못 읽겠어서 반납한 책도 있었고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라는 책도 읽기 편해서 좋았다. 특히 필멸의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개별적인 삶을 수백수천 배 증폭시킴으로써 대신  남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이야기의 효용에 공감이 갔다.


아무튼 나는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니지만 독서가 좋다. 정말 책이야말로 일상의 진부함을 깨줄 수 있는 도끼다. 누군가의 책 제목이다. 가끔 아내에게 내가 읽은 내용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옆에서 듣던 도윤이가 조금 지난 시점에 그걸 기억하고 조잘조잘 얘기할 때가 있는데 마냥 귀엽고 흐뭇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한 달 살이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