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우연히 도윤이에게 다연이 말고 다른 동생이 있으면 좋겠냐고 물어봤다. 도윤이는 고개를 흔들며 그렇다고 했다. 말을 안 듣는 다연이(베리)는 다른 곳으로 던져버리겠다고 했다. 말을 잘 듣는 동생이 필요하다고 한다. 도윤이는 베리가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조금 있다 아이들 양치질을 시키는데 도윤이가 다연이는 던져버리고 세트동생이 가지고 싶다고 했다. 순간 쌍둥이라는 말인가 싶어 다시 물어봤다. 세트동생이 뭐야? 대답을 못했고 둘이란 말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약간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저런 말을 조합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내에게 도윤이가 그런 말을 했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아내는 이제 더 이상 도윤이를 말로는 당할 수 없다고 했다.
도윤이는 베리와 재밌게 놀다가도 애써 만든 레고 장난감을 부수거나 입으로 살집을 물어서 아들의 심기를 한 번씩 뒤집어 놓는 베리가 정말 싫은가 보다. 그러면 도윤이는 손바닥으로 베리 정수리를 강타하고 곧이어 목을 한껏 움츠린 베리가 울면서 엄마를 찾는다. 가만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 웃겨 죽겠다.
나는 도윤이가 생각 없이 베리를 괴롭히는 경우가 압도적인 것 같은데 아내는 베리가 여우짓을 한다며 나와는 현상을 바라보는 입장이 정반대다. 다연이가 오히려 도윤이를 도발한다는 것이다.
도윤이는 다섯 살이지만 말을 너무 못하는 나는 도저히 아들을 감당할 수가 없다. 한 번은 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도윤이가 장난감이 꼭 갖고 싶다며 사줄 수 없냐며 나에게 물어봤다. 나는 그냥 그 순간만 모면하고자 나중에 사줄게 하고 넘기려고 했다. ‘아빠 나중에는 필요 없어. 지금 당장 필요한 거야’라고 말하는 도윤이를 보며 어떻게 저런 논리를 구상할 수 있을까 놀라면서도 앞으로 어떻데 설득해 거절해야 하는지 걱정이 앞섰다.
오랜만에 잠시 글을 쓸 틈이 생겼다. 가족과 함께 슈필라움에 놀러 와 타다다닥 카라반 벽체를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시 감상에 빠졌다. 피곤해서 저녁 8시가 되기 전에 잤는데 엄청 많이 잔 것 같았는데 깨어보니 새벽 1시였다. 개운하게 깼는데 아직 한 시라니. 에누리를 많이 받거나 덤을 기대보다 많이 받은 듯 흐뭇했다.
비가 내려 올여름 애써 고친 카라반에 또다시 물이 스며드는 것을 보니 심란하다. 아무 생각 없이 살 것만 같던 도윤이는 요즘 새 유치원에 적응하느라 꽤나 힘든 모양이다. 아내는 곧 복직할 생각에 걱정이 많지만 우리 가족 중에 역시나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베리가 제일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