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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달 Feb 26. 2021

102일 차

그런 날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머리가 무겁고 아팠다. 정말 얼마 만에 느껴보는 두통인지. 소화가 안돼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어제 나에게는 중요한 두 가지의 과업이 있었다. 딱 어제 끝내야만 했던 일이라 내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단 일을 해결하기 위한 단계가 많았고 각각에 드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한 가지 단계를 마무리 짓는데 준비가 부족했고 그다음으로 진행하려면 또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더 허무한 것은 하루 종일 내가 마음 편히 있지 못하며 했던 노력이 다 헛수고였다는 결말이다.

 

 어제 해야 했던 두 가지 과업 중 하나는 쇼핑이었다. 여러 가지 핑계를 모아 나는 한 물건을 사려고 마음먹었다. 그 전날까지도 갈등이 많이 되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나를 이제는 사도 된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그런데 특정 회사의 카드를 사용해야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필이면 나는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었다. 지인과 인터넷의 도움으로 ‘모바일 카드’를 만들면 10분도 안되어 인터넷 쇼핑 시 사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발급받고 나머지 집중 과업을 해결하는 동안 시간이 좀 흘렀다. 살까 말까 고민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결론을 내고 결제하려 다시 해당 쇼핑몰에 접속해보았는데 할인이 안 되는 것이다. 할인 혜택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불과 몇 시간 만에 할인 가능한 카드사가 변경되어 있었다.

 ‘아... 역시 헛된 소비였던 것일까’라고 체념하며 오후를 다 보냈다. 그런데 저녁 준비를 하면서 다시 한번 더 도전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새로운 카드사에 접속해서 발급을 받으려 하니 이미 영업시간이 지난 데다가 실물 카드를 수령하고 등록해야 앱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무용지물인 카드도 있었다. 하나 가입하려 할 때마다 본인인증을 해야 하고 다른 일 처리하다가 다시 돌아가면 세션이 종료되어 있고 다시 처음부터 하고 등등 몇 번의 반복 끝에 겨우 카드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카드마저도 앱카드를 사용하려면 실물 카드 수령부터 해야 함을 나중에야 알았다. 세상에.


 결국 내가 원하는 바를 하나도 얻지 못하고 어제 하루를 보냈다. 그러고 나니 몸도 마음도 피곤해서 꿈도 안 꾸고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서 현타처럼 두통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자고 일어나니 또 카드사가 바뀌어서 내가 어제 발급받은 두 개의 카드 모두 결국 필요 없어져 버렸다. 하하하하)


 오전 내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속이 울렁거려서 힘들었는데 그래도 나를 살게 한 건 나의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오늘도 내게 주어진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할 수 있는 자질구레한 일들부터 처리하기로 마음먹고 신나게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나니 점심쯤엔 또다시 체력적 한계가 와서 잠시 쉬어야만 했지만 충실한 하루를 채운 것 같아 기분도 좋고 몸을 움직이니 두통도 조금이나마 가라앉은 것 같다.


 나 혼자를 이끌어가는 것도 어렵지만 우리 가족을 기본 생활이 되도록 끊임없이 점검하고 서포트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늘 내가 기다려야 하고 상대의 결과에 따라 내 선택지를 바꾸고 더 오랜 시간을 써야 하는 것이 힘들다. 다시 한번 마음을 고쳐먹어 본다. 서로에게 합리적인 시간 활용이 될 수 있도록. 일단 내가 열심히 움직이니 살 것 같다. 어느 정도 포기해서 나를 지켰다. 아직 왼쪽엔 두통이 남아있다. 그래도 일단 반드시 해야만 했던 일을 끝낸 건 마음에 든다. 이제 진지한 일도 시작해야겠다.


 모든 상황이 나만 빼고 한편이라도 먹은 것처럼 하는 것마다 잘 안 되는 날이 있다. 내 잘못이 아닌 경우도 있고 나로 인해 발생되는 일이 있기도 하다. 이 두 가지를 잘 구분하고 내가 바꿀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해보는 효율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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