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hovis Apr 03. 2022

당신이 몰랐던 또 다른 사진의 모습 - 상

즉석 사진과 Polaroid Emulsion Lift

사진은 영어로 Photography인데,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물감이 빛이고, 그리는 종이는 필름이나 디지털 카메라의 센서를 지칭한다. 사진 촬영의 초기 형태는 금속판 위에 감광(減光) 물질을 발라 그 판에 렌즈로 통과시킨 빛을 쪼여주면 피사체가 반사시킨 빛의 강약으로 인해 감광물질이 변화하고, 그것을 현상물질로 처리하면 촬영한 화상이 드러나는 과정을 가진다. 하지만 여기서 몇 개의 수단들을 다른 것들로 대체하여 이미지를 얻는 것을 종합적으로 Alternative Process라고 일컫는다. 감광물질과 현상물질만 있다면 피사체를 어떤 형태로든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과정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것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현상액 제외)들을 이용하여 사진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사진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직접 참여하여 사진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재미가 있고, 특별한 기록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이 있다. 나는 그 중에서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즉석사진의 사진층을 수채화 종이에 옮기고 그 위에 밀랍을 바른 모습

그 전에 참고할만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뉴트로(Newtro)는 직역하면 새로운 복고풍이라는 상반된 의미의 단어들이 합쳐진 특이한 합성어인데, 단순히 생각하면 2000년대생들이 기성세대가 젊었던 시절에 유행했던 것들을 동경하고, 그것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거나 그대로 재현하면서 탄생한 일종의 트렌드이다. 그 시절 유행했던 것들 중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아이템이 바로 즉석카메라이다. 정제되고 세련된 현대의 이미지와 반대로 거칠고 색감이 다소 제멋대로(?)인 사진 촬영매체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성질이 하나의 특징으로 여겨져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 사각의 플라스틱 프레임 속에 담겨 특별한 그날의 감성이 표현하는 사진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특히 Polaroid에서 생산했던 즉석카메라와 필름은 그런 감성을 대표하는 오브제들 중 하나이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필름을 판매하고 있지만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생산했던 모델들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아 중고거래로 웃돈을 주고 사야한다. 그러나 이 즉석필름으로 할 수 있는 흥미로운 표현 방법에 여러분은 기꺼이 지갑을 열지도 모르겠다.

‘즉석 카메라’의 대명사인 폴라로이드는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오래된 브랜드들 중 하나다.

즉석카메라가 사진을 만드는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용자가 피사체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셔터 버튼을 누르면 감광물질이 도포돼있는 매체의 표면 위에 피사체가 빛과 함께 노출된다. 그 후에 사진기 내에 장착된 모터가 사진을 사진 배출구로 밀어낸다. 이 때 사진의 프레임 하부에 부착된 현상 및 고정 역할을 하는 물질이 담긴 주머니를 카메라의 사진 배출구 안쪽에 설치된 롤러가 압착하면서 주머니 속의 그 물질을 사진의 아래에서 위로 도포한다. 이때 사진을 흔들지 않고 햇빛이 닿지 않도록 하면 더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즉석 사진을 이용하여 사진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는 Polaroid Emulsion Lift(이하 PEL)이다. 촬영하여 얻은 사진의 전체 프레임으로부터 상이 현상 및 고정된 층(Emulsion)(이하 ‘사진층’)만을 분리(Lift)하여 다른 매체에 옮기는 방법을 지칭한다. 여기서 Polaroid사(600 시리즈, SX-70 시리즈, Now 시리즈 등)와 Fuji사(FP-100C)에서 만든 즉석사진이 대표적인 재료다. 이 필름들의 외형적 특징은 사진의 밑부분 여백이 다른 세 부분보다 두꺼운 것인데, 앞서 사진 촬영의 원리에서 설명했듯이 이 부분 내부에 현상과 고정을 하는 화학물질이 저장돼있기 때문이다. 이런 프레임 틀을 벗어나 색다른 매체에 이미지를 얹혀 전혀 다른 사진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PEL의 핵심이다.

플라스틱 판 위에 사진층을 옮겨 건조시킨 모습. 떨어져나가기 쉽다.

이 방법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촬영된 지 최소 하루 이상 지난 즉석 사진, 가위, 물을 어느 정도 담고 그 속에 사진을 담글 수 있는 넓은 그릇, 따뜻한 물, 작은 크기의 붓(수채화 붓 기준으로 10호 정도가 적당하다), 사진층을 옮겨담을 매체가 필요하다. 이 때 매체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물을 어느 정도 머금을 수 있는 매체를 권장한다. 예를 들면 수채화용 도화지, 천, 나무판자 등이 좋다. 그릇에 따뜻한 물(최소 섭씨 30도 이상)을 담아 둔다.

흑백의 즉석 사진와 PEL의 조합은 예전 사진을 연상케한다.

사진의 네 면의 테두리(흰색이거나 여타 다른 컬러의 ‘프레임’)를 가위로 잘라낸 후 사진 뒷면의 검은 판을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이때 촬영한 지 하루를 넘기지 않은 사진의 경우 사진층이 검은판에 붙어 떨어져 나갈 수 있다. 따라서 촬영된 지 하루 이상 지난 사진을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남은 것을 준비된 물에 모두 잠기도록 담근다. 5분에서 10분 정도 기다리면 사진의 네 꼭짓점이나 모서리부터 물에 뜨는 것이 보일 것이다. 이 때 한 손으로는 사진 전면에 있는 플라스틱 필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붓을 사용하여 그 플라스틱 필름과 사진층을 분리시킨다. 여기서 사진층은 특히 600 시리즈용 필름의 경우 물리적으로 매우 취약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작업해야한다. 사진층 분리에 성공했다면 옮겨 담을 매체를 입수시켜 붓을 이용하여 천천히 그 매체의 표면에 안착시키고, 붓으로 사진층을 잘 펴준다. 이 때의 사진층은 물에 잘 쓸려갈 수 있기 때문에 동작을 천천히 하는 것을 권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진층을 매체에 안착시키는 동작을 여러 번 해야 될 수 도 있다. 안착시키는 것에 성공했다면 이것을 그늘에서 건조한다. 그 이후에는 에폭시를 부어 고정시킬 수도 있고, 투명 접착제를 바르고 2개의 아크릴판으로 압축시켜 매체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고정시킬 수도 있고, 다 마르는 대로 이것을 스캔해서 디지털 이미지로 간직하거나 이것을 인화하는 방법도 있다. 왁스를 녹여 붓으로 사진층 표면에 발라 고정하는 방법도 있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떤 분위기를 연출할지 결정하는 게 큰 매력이다.

나의 경우 내가 작업한 풍경사진을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아크릴 표면에 사진층을 올려놓고 그것이 거의 다 마를 즈음에 에폭시를 부어 고정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에폭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포가 많이 발생하여 사진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마치 기포가 그 사진의 일부로 보이는 착각까지 일으켰다. 내 의도는 기포가 없는 선명한 에폭시층이 마치 액자처럼 만들어지는 것이었는데 그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와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기포 현상을 해결하거나 이용할 수 있으면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사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기록의 매체로서 정보 전달의 기능이 가장 크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날의 느낌을 가장 잘 살려줄 수 있는 추억저장고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예술로서 담론을 제시하는 역할도 해낸다. 사진의 또 다른 모습으로 당신만의 가치가 담긴 사진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접사 사진의 매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