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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ul 18. 2016

당신의 얼굴값은 얼마입니까

서구적 미인 vs 한국적 미인

앞서 발행했던 3편을 통합 정리한 글입니다.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이미 읽어보신 분은 자리를 털어주세요!


심리학은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여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정립하는 학문입니다. 그 성격상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내면의 흐름을 파악하고 외부 환경과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어떤 환경을 겪는가에 있어선 내면보다 외모가 더 강력한 역할을 합니다. 내면은 전달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반면 외모가 평가되는 시간은 1초가 채 안 걸리기 때문이죠. 한번 정해진 인상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대변합니다. 관계 속에서의 가치, 사회적인 인정 등 개인을 나타내는 다양한 지표가 단지 외모를 통해서만 평가되기도 합니다. 당연하게도 좀 더 나은 외모는 더 나은 적응의 기회를 얻습니다. 어쩌면 '내면' 따위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무시해버리기엔 무시무시한 외모, 특히 얼굴은 그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글은 아름다운 얼굴의 기준을 탐색합니다. 눈물 없인 읽어 내려갈 수 없는 차디찬 연구결과를 공유합니다. 즐거운 하루를 원하신다면 여기서 멈춰 주세요. 평소 눈물이 많은 분은 미리 손수건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울수록 더 많은 혜택


외모에 대한 연구결과들은 미인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긍정적 기대와 혜택을 입증했습니다. 가령 사람들은 상대방의 외모가 뛰어날수록 더 쉽게 믿으며 더 많은 친절을 베푸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빼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은 덜한 사람에 비해 '더 똑똑하고 재밌고 사교적이고 독립적이며 안정적'일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서럽게도, 누군가는 옅은 미소 한 방으로 취하는 것들을 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얻어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눈물을 떨구긴 이릅니다.) 외모 수준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 비해 연봉이 5~10% 더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기업의 관리자들은 외모가 사회적 인정이나 성공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신생아들 조차 매력적인 얼굴을 더 오래 바라봅니다.


뭐, 굳이 더 많은 연구결과를 봐야 할까요. 지나버린 시간 속 숱한 경험들이 알려주었는 걸요.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 노력해서 더 좋은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그런데 죽도록 노력해서 도달한 그곳에도 예쁘고 잘생긴 것들은 있다. 어디에나 있었다. 항상 그곳의 나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린다...' 때문에 당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더 좋은 외모를 찾아내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 좋은 외모는 무엇일까요. 아름다움, 즉 미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어쩌면 그 기준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 얼굴을 구기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전 세계의 미인들, 2015


미인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수십 년간 이미 여러 연구자들이 미의 기준을 알아내려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논문들이 쓰고 반박되고 다시 쓰이는 시간이 반복되면서 미의 기준에 대한 세 가지 관점이 정립되었습니다. 보편적 관점, 문화적 관점, 감성적 관점입니다.



보편적 관점의 미인

Johnston & Oliver-Rodriquez, 1997


보편적 관점에서는 미에 대한 단 하나의 기준이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알아내고자 합니다. 대표적인 이론으로는 '평균 가설(Averageness Hypothesis)'이 있는데요. 얼굴을 수학적으로 봤을 때, 더 많은 얼굴의 평균치가 더 아름답다는 가설입니다. 가령 10명의 얼굴을 하나로 합성한 사진과 100명을 합성한 사진을 제시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명 사진을 더 아름답다고 평가했습니다. 1,000명의 사진을 합성하면 더 아름다운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겠죠. 전 인류의 사진을 합성해보면 그토록 이루려던 미의 기준을 알 수 있을지도.


Tccandler라는 미국의 블로그에서는 매년 세계 미인 순위를 발표하고 있는데요. 글쓴이가 K-pop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인지 한국 아이돌이 순위에 다수 포함되어 있고, 때문에 국내에서도 몇 번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최근 발표한 2015년 순위에서는 애프터스쿨의 나나가 2014년에 이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을 재치고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으니 어떤 면에선 국위선양을 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비록 개인에 취향이 반영되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꼽으려는 접근은 앞서 언급한 '보편적 관점'의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발표된 공신력 있는 순위였다면, 1위를 차지한 나나 씨의 얼굴에는 우리 언니나 누나, 여동생, 또는 여자 친구의 얼굴이 포함되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가장 많은 얼굴의 평균치일 테니까요.

Tccandler의 미인 순위, 2015


곰곰이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합니다. 위의 이론이 맞다면, 내 방 거울을 비롯해 주변에 보이는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가 힘을 합친 100명의 평균 얼굴이 원빈, 장동건, 정우성 단 3명의 평균 얼굴보다 잘생겨야 하니까요. 하지만 굳이 직접 해보지 않더라도 100명보다 나은 3명의 조합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평균 가설은 미의 기준에 대한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지만, 후속 연구들에서 이 같은 반론이 제기됐습니다.


기본적으로 '보편적 관점'은 진화 및 번식을 위한 짝의 선택과 연관성이 높습니다. 인간은 진화된 후손을 위해 더 나은 짝을 찾으며, 그런 기준들이 모여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었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접근에서 평균 이론의 빈틈을 물리적인 분석으로 해소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대칭 이론을 들 수 있는데요. 이에 따르면 좌우 대칭 수준이 높은 얼굴은 건강함, 이성으로의 매력, 높은 번식 잠재력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능력이 부족할 경우 얼굴 대칭에 편차가 발생한다는데요. 때문에 대칭적인 얼굴은 다양한 환경에서의 생존력, 다음 세대에 대한 능력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셈입니다. 더 예쁘고 잘 생겨 보이겠죠.


* 할리우드 스타들의 얼굴을 좌측 또는 우측으로만 합성한 이미지입니다. 그들의 좌우대칭 수준이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youbeauty.com/)


그런데 대칭 이론 역시 동일한 한계가 있습니다. '대칭적인' 오징어 꼴뚜기 대구 명태 거북이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이들을 아무리 모아 모아 평균을 낸다고 한들. (휴, 그만 쓸까.) 자, 그래서 보편적인 관점으로는 미의 기준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문화적 관점의 미인

Rhee & Lee, 2010; Wheeler & Kim, 1997


아시아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성적인 성숙함'을 나타내는 얼굴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편적 관점의 한계를 나타내는 연구결과이며 국가별로 미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의미인데요. 이처럼 미의 기준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여기는 것이 '문화적 관점'입니다. 이에 따르면 미의 기준은 문화권에서 학습된 이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문화별로 역사적 시기별로 미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령 19세기 우리나라의 미인상에는 '둥근 얼굴, 눈꼬리가 올라간 외꺼플, 짧고 둥근 코 등'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외모를 가진 연예인들이 각광받는 경우가 있지만) 19세기의 미인상이 최근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다른 인종간 유명 연예인의 사진을 각각 합성한 연구에서도 각 인종간 광대, 턱, 눈의 기울기 등에서 서로 다른 특징들이 나타났습니다. 합성한 얼굴을 해당 문화권의 대표 미인으로 보긴 어렵겠지만 각 문화 간 미인에 대한 기준이나 이상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5개 문화권의 미인 합성 이미지가 각기 다릅니다(Rhee & Lee, 2010).





감성적 관점의 미인

Kim, Park & Chung, 2006


감성적 관점은 얼굴을 '감성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얼굴의 평가 지표로 감성적인 형용사들을 사용하는 관점입니다. 가령 '큰 눈, 오뚝한 코, 그리고 두꺼운 입술'을 가진 얼굴은 '활발한, 자유로운, 적극적인, 서구적인'과 더불어 '까다로운, 고집 있는, 예민한'과 같은 감성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감성적 관점은 사실상 '관점'이라기보다는 연구방법론에 가깝지만, 미인의 기준을 '못났다-잘났다'의 1차원적 접근에서 여러 유형으로 확장했다는 점, 맥락에 따른 다양한 미적 기준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관점의 성격을 갖습니다.


위의 관점 중 문화적 관점과 감성적 관점에 따라 한국 미인의 기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연예인 ○○○의 눈 + □□□의 코 + △△△의 입'과 같이 쉽고 흥미로운 내용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한국 여성의 미인상이 어떻게, 왜 변화하였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린 어떤 얼굴을 좇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 미인의 기준


외모는 그 시대 및 사회의 이상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됩니다. 한국 여성의 미인상 역시 이 같은 역사‧문화적인 흐름에 따라 변화했는데요. 크게는 서구문화 유입이 활성화된 20세기를 기점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까지 한국사회는 미인상의 기준이 그들의 사회적 역할과 관련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여성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식의 양육을 포함한 가사를 담당하는 게 주요 역할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특성이 반영된 '둥근 얼굴, 넓고 반듯한 이마, 길쭉한 눈, 눈꼬리가 올라간 외꺼플, 숱이 적은 초승달 눈썹, 선이 짧고 둥근 코, 작고 붉은 입술'이 미인상의 기준이었습니다.


20세기 미인상 (미인도, 신윤복)


반면, 21세기의 미인상은 '갸름한 얼굴, 쌍꺼풀, 큰 눈, 높은 코 등' 기존과 상반되는 기준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서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 ‘섹시한, 도도한, 능력 있는, 성숙한'과 같은 특징들을 나타냈다고 하는데요. 상대적으로 서구적인 특징들이 더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갸름한 바탕 안에 큰 눈과 높은 코가 다 들어가 있고 심지어 섹시하면서 능력까지 있는 얼굴이라니. 차라리 타임머신을 만들어 '둥근 얼굴'의 낙원 20세기로 돌아가는 게 빠를 수도 있겠네요. (준비해놓은 손수건을 사용할 타이밍.)


21세기 미인상 (연예인 합성 사진: 김태희, 이영애, 한가인, 한예슬, 송혜교, 손예진, 이민정)


이러한 변화는 아름다운 몸에 대한 기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아이를 잘 낳을 수 있고 힘든 일도 거뜬히 소화할 수 있는 '건강한 골격, 풍만한 엉덩이와 허벅지'가 아름다운 여성 몸을 의미한 반면, 최근에는 '서구적이고 마른 몸'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안타깝게도 여성의 약 30~40%는 정상체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뚱뚱하고 느낀다고 합니다.


1950년부터 2002년까지 미스코리아의 선정 기준에서도 동일한 기준 변화를 엿볼 수 있는데요. 1979~81년 미스코리아의 평균 신장/체중은 166cm/50kg인데, 이는 62~72년에 비해 키는 10~11cm 더 커지고 몸무게는 2.4kg 줄어든 수치입니다. 1982~96년 평균은 170cm/52kg인데, 이는 최근 2000년 대에 비해 키는 3cm 정도 적고 몸무게는 1kg 많습니다. 더 길고 날씬한 여성이 한국을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이토록 빠르게 변했을까.


20세기 정치가 및 지식인들은 한국사회가 일본의 식민지 하에 놓이게 된 원인이 '봉건적인 삶의 방식을 고집하며 서양의 선진문물을 도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양 기준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더 빨리 발달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이런 생각들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미인에 대한 기준 변화 역시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서구적 가치가 반영된 셈입니다.


무역의 증가, 발달된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변화의 속도에 한몫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다양한 문화권의 미디어를 접할 수 있으며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도 손쉬운 교류를 할 수 있습니다. 삶의 가치와 라이프 스타일 역시 세계화되면서 그 흐름을 따르게 됐는데요. 묘하게도 최근 미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세계화가 곧 서양화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많아지는 미인, 좁아지는 기준


미인에 다가가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성형 수술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외모가 성공에 있어서도 중요하다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성형수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시술과 수술을 구분하는 등, 이전에 비해 많이 보편화되었죠.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APS)에서 발표한 2009~2011년의 세계 성형수술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성형수술을 가장 많이 한 상위 25개 나라 중 7위를 차지했으며, 각 나라별 성형외과 수에서도 7위, 성형수술 비율에 대한 조사(이코노미스트, 2012)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미용 및 성형기술은 국제적으로도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미용이나 성형을 목적으로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이 2009년 5만 명, 2010년 7만 명, 2011년 10만 명으로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형외과가 이미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한 반면 시술비용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이쯤 되면 이 분야에서 껌 꽤나 씹고 침 좀 뱉는다고 볼 수 있겠죠? 즉, 우리는 누구나 결심을 하면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얼굴에 근접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미용이나 성형의 목적은 외모 수준을 높이고 긍정적인 심리 변화를 겪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성형수술 전후로 신체상, 자아존중감, 자기효능감과 같은 심리적 변인에서 좋은 변화가 나타났다는 연구들이 많죠. 그런데 어쩌면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얼굴이 특정 상황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갖고 올지도 모릅니다. 외모에 대한 평가는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예컨대 동일한 얼굴이라 해도 데이트 상대로 생각할 때, 일생의 반려자로 생각할 때, 업무 파트너로 생각할 때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습니다.


가령, 감성적 관점의 연구에서는 서구적으로 '더 예쁜' 여성이 '덜 예쁜' 여성에 비해 사교적이고 외향적이나 덜 따듯하고 허영심이 많을 것으로 평가되었고, 가정과 직장에서의 역할 수행에 대해서도 그 기대치가 낮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미의식 조사의 결과에서는 잘 갖춰진 얼굴의 미인을 이상형으로 생각하면서도 나름의 자연스러운 모습 또한 소중하게 생각하는 양상이 혼재되어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20대 대학생 연구결과에선 너무 큰 눈, 뾰족한 코, 과장된 표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미인에 대해 일반적으로 느끼는 긍정적 느낌과는 상반되는 결과네요. 연구 참가자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냥 이쁜 것들이 싫어! (부러워서가 절대 아니야.)


예쁜 얼굴이 되어본 적 없는 우리는 막연하게 더 예쁜 얼굴이 더 좋은 삶을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에서는 새로운 기준이 마치 이상적인 얼굴을 대표하는 것처럼 표현되고, 조각 같은 미남, 미녀들이 티브이 밖을 나와 주변을 배회합니다. 하지만 앞선 연구결과가 말해주듯, 아름다움은 외모를 지각하는 사람이 느끼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반응으로도 판단될 수 있습니다. 얼굴의 물리적인 특징과 더불어 그에서 유발되는 심리적인 특성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죠.


이 글은 미인을 흉보는 글이 아니며, 예뻐질 필요 없다고 비현실적 안정제를 주입하는 글도 아닙니다. 어떻게 예쁠까에 대한 글입니다. 수십 년 전 기준에 맞춰 둥근 얼굴을 고집할 필요가 없듯, 서구적인 기준에 맞춰 맹목적으로 왕눈을 장착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지향하는 얼굴이 실제 삶과 관계 속에서는 어떤 요소들을 갖고 있는지,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지 알고 예뻐질 필요가 있습니다.



서구적인 미인 vs 전통적인 미인


그 지향점은 앞서 말씀드린 서구적인 얼굴과 전통적인 얼굴로 나눠서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혹시 내가 겪게 될 관계 속에서는 20세기 초의 미인상이 더 선호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역시나 21세기 미인이 더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어줄까요.


중앙대학교 사회심리학과에서 이와 관련된 꽤 재밌는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서구적인 얼굴과 전통적인 얼굴이 대인관계 맥락인 '감성적 관점, 업무상황, 사회적 거리감, 친밀함'에 있어서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조사했는데요. 가령 각 얼굴에 대해 '함께 일(또는 조별과제)하게 됐다면, 친구라면 중요한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지, 연인이라면 나를 배려할 것 같은지 등' 실제 관계를 가정한 설문으로 첫인상을 비교합니다. 연구 결과를 통해 '예쁘다, 매력 있다' 정도로 비교되던 미의 기준을 다양한 관계적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지향하던 외모의 현주소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서구적인/전통적인 대표 얼굴


서구적인, 전통적인 미인에 대한 인식을 비교하기 위해선 그에 해당하는 대표 얼굴을 정해야 합니다. 연구에서는 400여 장의 사진을 시작으로 세 차례에 걸친 예비 조사 및 선별 작업을 통해 아래의 얼굴이 선정되었습니다.



서구적인 미인상. 진한 이목구비, 쌍꺼플, 큰 눈, 선이 길고 높은 코, 대체로 날렵한 형의 얼굴.


전통적인 미인상. 얇은 이목구비, 외꺼플, 선이 짧고 둥근 코, 대체로 둥근형의 얼굴.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미지와 가까운 가요? 제한적인 사진이긴 하지만 두 얼굴의 차이는 대략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연구 결과를 보시기 전에 내가 두 가지 미인상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어떤 얼굴을 지향하고 있는지, 그 얼굴이 관계 맥락에서 어떤 인상을 가질지 미리 예상하고 보시면 더 재밌을 듯합니다.


자, 그러면 각 대표 얼굴이 '감성적 관점, 업무 관계, 사회적 거리, 친밀한 관계' 4가지 맥락에선 어떻게 인식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감성적 관점

어떤 성격으로 보일까.


대표 얼굴에 대한 감성적 요소들을 비교해본 결과, 설문 참여자들은 서구적 얼굴이 (전통적 얼굴에 비해) 더 '외향적이고 자신감 있는, 활발한' 성격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반대로 전통적 얼굴은 더 '정서적으로 안정된, 친화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서구적 미인: 외향적, 자신감있는, 활발한 / 전통적 미인: 정서적으로 안정된, 친근한


호감도에 대한 추가 조사 결과에서는 전통적인 얼굴이 더 높았는데요. 상대적으로 선이 굵고 강한 인상의 서구적 미인은 호불호가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반면, 선이 얇고 부드러운 전통적 미인은 온순할 것으로 지각하는 것이 호감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호감도가 높고 접근하기 쉬운 게 꼭 좋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척박&야박&독박 3박자가 어우러진 사회생활에 있어선 접근하기 어려운, 이른바 '센 언니'의 포스가 오히려 효과적일 수도 있으니까요.



업무 관계

같이 일을 하게 된다면?


업무 시 고려되는 여러 요소들로 두 유형의 얼굴을 비교해본 결과, 자신감, 신체적 능력, 긍정적 태도, 신중함 4가지 요소에서 인식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서구적 얼굴이 더 자신감 있고, 신체적 능력이 좋을 것으로, 전통적 얼굴이 더 긍정적이고 신중할 것으로 응답했습니다. 이 결과가 맞다면 마케팅 부서에는 서구적 얼굴, 연구/개발 부서에는 전통적 얼굴이 많겠네요. 면접 시에도 그런 인상이 어느 정도 반영될 테니까요.


사회적 거리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까?


'시회적 거리'는 상대방과 얼마나 가까운 관계인지 알아볼 수 있는 척도인데요. 가령 '이 사람을 길에서 마주치면 어떨지'와 같이 피상적 관계인 1단계부터 '평생 알고 지낼 사람으로서 어떤지'와 같은 4단계까지 구분되며, 이에 따라 두 얼굴의 인상을 비교하는 설문이 진행됐습니다.



그 결과 모든 단계에서 전통적 얼굴이 높은 수치를 나타냈습니다. 사람들은 서구적인 외모보다는 전통적인 외모의 여성으로부터 관계의 시작과 더불어 가깝고 깊은 관계까지도 기대한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1, 2 단계에선 서구적 얼굴이 더 좋은 인상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놀라운 결과네요.



친밀한 관계

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인의 대인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서 '정'을 빼놓고는 얘기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을 달리 말하면 '정서적 유대'라고 할 수 았는데요. 정서적 유대는 친밀한 관계, 가령 절친이나 애인, 결혼상대를 정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서적 유대가 형성 및 유지되기 위해 중요한 요소는 '다정다감성, 타인에 대한 배려, 인간적 연약성'이라고 합니다. 당연하게도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배려해주는 상대와 친밀한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죠. 재밌는 요소는 '인간적 연약성'인데요. 스스로의 어려움을 상대방에게 공유하는 것, 상대방의 어려운 상황을 거절하거나 모른 체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적 연약성이 정서적 유대의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은 한국인의 대인관계가 '개인주의적 가치와 독립적인 자아개념'을 가진 서양문화권에 비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조화를 중시하는 '상호의존적 자아개념'에 기인한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서구적/전통적 얼굴을 정서적 유대 요소로 비교한 결과, 3가지 모든 경우에서 전통적 얼굴이 높은 수치를 나타냈습니다. 응답자들은 전통적 얼굴이 더 정서적 유대를 쌓을 수 있는, 즉 자신과 친밀한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사회적 거리'에 대한 결과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특히 앞서 언급한 '인간적 연약성(Weakness of heart)'에서 유독 큰 차이가 났는데요. 아무래도 서구적인 외모가 갖는 외향적이고 강한 이미지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비교적 부드러운 느낌의 전통적 외모에 비해 서구적 외모는 나에게 자신의 결점을 공유한다거나 내 어려운 상황에 도움을 줄 것 느낌이 적게 드는 것이죠.


종합해보면,

서구적인 얼굴은 자신감 있고 외향적인, 건강한,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트렌디한 인상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인 관계 맥락에서는 전통적인 얼굴이 더 긍정적이고 친밀한 인상을 나타냈습니다. 이는 사회 정체성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유입된 서구적인 문화는 한국인의 여러 기준들을 바꿔 놓았고, 미인의 기준 역시 이전과는 다른 서구적 가치를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의 결과처럼 한국인의 실제 삶, 그 사회 정체성 속에는 여전히 관계지향적이고 정서적 유대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타인에 대한 평가에 반영되고 있었습니다.



마치며 - 내 얼굴값은 얼마


얼굴값: 생긴 얼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


현대인들은 외모를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이른바 '어디서나 먹히는' 외모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결과는 조금 다른 내용을 전하네요. 딱 잘라 말해서, 미인의 기준을 하나로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미의 기준을 다루려던 글에서 '하나의 기준은 없다'고 결론 내는 건 조금 무책임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결론을 낸 이유는 기준의 의미가 가진 한시성 때문입니다. 기준은 제한된 범위와 시점이 있어야만 정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크게는 문화권, 작게는 내가 속한 관계 속에서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엄마에게는 '내 아들이 유시진 대위보다 미남!', '내 딸이 강모연 선생보다 미녀!'인 것처럼 말이죠. (물론 거짓말이겠ㅈ...)  얼굴에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 그곳에서의 미인은 내가 될지도 모릅니다.


비록 서두에 '내면 따위'라고 했지만, 내 얼굴에 담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실 내면이 아닐까 합니다. 미인으로 보였던 어떤 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못나 보이는가 하면, 눈에 띄지 않던 누군가가 어느 날부터 미인으로 보이기도 하죠. 어떤 식으로든 내면의 모양은 얼굴에도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내 얼굴의 아름다움을 알려면 내면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진 좋은 면들이 얼굴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난 어떤 순간에 가장 행복하며 그때의 내 얼굴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내 얼굴이 내가 바라는 삶과 가까운지 말이죠.


본문에 언급한 대로, 이 글은 '어떻게 예쁠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얼굴값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얼굴값의 정의는 '생긴 얼굴에 어울리는 행동'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행동에 어울리는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행동은 동기를 갖고 있으니 '내가 바라는 삶에 어울리는 얼굴'로 고쳐 말할 수 있겠네요. 내 얼굴값은 얼마일까요. 내가 기대하는 삶에 적합한 얼굴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요. 혹여 그와는 정반대의 것을 갖기 위해 무작정 노력하는 건 아닐까요.


어떤 삶을 원하시나요.

어떤 얼굴을 원하시나요.


당신의 얼굴값은 얼마입니까.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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