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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Sep 20. 2017

뭐 눈엔 뭐만 보인다?

<건축학개론>



심야의 지하철은 조용합니다. 비록 열차와 선로의 마찰음이 있지만 소리의 패턴이 일정하여 주의를 뺏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격앙되면 자연히 그곳에 주의가 집중되죠. 저는 자리에 앉아있었고, 어떤 남성이 전화 통화를 하며 열차로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의도가 뭔데!?"


그가 긴 숨을 뱉으며 묻더니, 제 옆자리에 엉덩이 반틈만 걸치고 앉더군요.


"아니, 왜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냐고. 장난쳐?"


뭐가 그리 심각한지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흥분된 음성을 이어갔습니다. 들리는 단어들로 보아 애인과 다투는 것 같더군요.


"날 무시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말할 수가 없어."

"네가 그럴 뜻이 없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몰랐다는 게 중요한 거야!"

"지금 그런 반응이 날 더 바보같이 만든다고!!"


통화는 길었지만 남자는 굉장히 제한적인 단어와 표현을 반복해서 내뱉었습니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그 전화를 받고 있던 여자는 남자의 흥분을 진정시키려는 것 같았어요.


"사과를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야.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내가 만만해? 꼴이 이러니까 사람까지 우스워보여!?"


결국 남자는 더 비좁고 탁한 장면으로 들어서는 말을 뱉으며 열차에서 내렸습니다. 그의 경직된 어깨, 격앙된 목소리, 반복되는 몇 가지 단어들을 보고 들으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씁쓸해지며 한 가지 방어기제가 떠올랐습니다. 투사. 투사에 대해서 쓸 때가 됐다.



뭐 눈엔 뭐만 보인대!


말싸움에 소질이 없던 저에겐 이만큼 효과적인 반격기가 없었습니다. "반사-" 보다는 왠지 더 구성진데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죠. 화려하게 퍼붓는 상대방의 디스 랩을 듣다가 툭, 뱉으면 그만. 이 말을 들은 대부분의 상대는 갑작스레 공수를 전환하며 "아닌데, 난 아닌데."라고 답하곤 합니다. 그러면 저 역시 공수를 전환하여 한 마디 더합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왜 그렇게 효과적이었는지 방어기제의 '투사'를 접해보고 알게 됐는데요. 그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투사 (投射, Projection)
: 불쾌한 원인, 받아들이기 힘든 충동의 원인을 (자신 내부에 있는 것을 알더라도)  마치 외부에 있는 양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 (두산백과)


투사를 '남 탓' 정도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핵심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나의 생각을 (외부의 어떤 존재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날씨가 덥다. 냉면 먹고 싶지 않니?"와 같은 가벼운 권유에서부터 강요, 원망, 자격지심, 질투, 의심, 집착까지 굉장히 많은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 특히 대인관계와 밀접하기 때문에 방어기제 중에서 가장 피부로 와닿는 녀석이라고 볼 수 있죠.


이런 녀석을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하는 건 좀 아쉽고! 투사가 나타나는 현상을 위주로 더 구분해볼까 합니다. 그중 대인관계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유형 세 가지를 뽑아봤는데요. 아래와 같습니다.



1. 나 자신의 모습을 반영: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상대방도 나를 판단할 것이다.

2. 내 생각을 반영: 상대방도 나와 같은 태도나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3. 내게 일어난 일의 원인을 반영: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상대방의 책임이 있다.



유형의 의미가 구분이 좀 되시나요? 어렵다고요! 아래의 예시를 보면 좀 더 구분이 될지도 모릅니다.



1. 나 자신의 모습을 반영: 자격지심, 콤플렉스, 안하무인, 교만
 - "내가 지금 백수라고 너도 날 무시하는 거야?"
 - "니깟게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수준 떨어지게. 나 누군지 몰라?"

2. 내 생각을 반영: 의심, 질투, 집착
 - "너도 더운데 돌아다니기 싫었던 거잖아. 왜 지금 와서 아니라고 해?"
 - 내가 교통신호를 잘 지키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고 믿는 것
 - 내가 다른 이성에 호감이 있으므로 애인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의심하는 것

3. 내게 일어난 일의 원인을 반영: 책임전가, 외부 귀인, 원망
 - 아이가 발을 헛디뎌 넘어진 뒤 "엄마가 내 손을 놓아서 넘어진 거야!"
 - "네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자, 어려운 얘긴 다 끝났고 (휴-) 본격적으로 영화 속에서 투사를 찾아보겠습니다. <건축학개론>의 승민(이제훈 분)은 투사 중에서도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한 투사를 많이 보여주는데요. 시작으로 시작해 시작으로 끝나버리는 그의 사랑엔, 어떤 투사가 숨어있을까요?




영화 <건축학개론>





건축학개론은 서른다섯 승민에게 대학교 시절 첫사랑이었던 서연이 갑작스레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건축가인 승민은 서연의 의뢰를 받고 그녀를 위한 집을 짓기 시작하는데요. 집을 점차 완성해나가는 현시점과 서로의 호감이 풋내를 채워가던 과거 시점을 오가며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과거의 승민은 아직 사랑이 서툰 새내기 대학생입니다. 가뜩이나 쉽지 않았던 승민의 첫사랑은 강남과 강북으로, 부유함과 가난으로, 능숙과 미숙으로, 멋진 선배와 숫기 없는 신입생으로 대조되면서 극악의 난이도로 진입하게 되죠. 묘하게 어긋나는 상황 속에서 그는 자신의 어떤 모습을 상대방에게 투사하게 될까요? 승민의 일기장을 훔쳐보겠습니다.




1. 우린 친해진 걸까



수업시간. 집에서 학교로 오는 길을 표시하기 위해 칠판 앞에 섰다. 내가 선을 그어야 할 곳에는 이미 하나의 선이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서연이와의 첫 인연이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산다.


과제 때문이긴 하지만 단둘이 개포동에 갔다.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도 들었다. 그녀가 자기 집 얘기도 한다. 그런 얘긴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만 하는 걸 텐데...


친구 납득이에게 묻자 그건 정말이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한다. 그럼 그렇지. 





2. 재욱 선배



서연이가 좋다. 그런데 서연이는 재욱 선배와 친해지기 위해 방송반에 들어갔고 건축학개론 수업도 듣고 있다. 재욱 선배는 세련되고 말도 잘하는 엘리트다. 차도 있고, 돈도 많다. 그 선배를 싫어하는 여자 후배는 본 적이 없다. 


왜 다들 선배를 좋아하냐고 묻자, 키도 크고 잘 생겼고 돈도 많으니 인기 많은 게 당연하단다. ‘너도 좋아하냐’고 묻자, 화를 냈다. 더 묻지 못했다. 




3.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엄마 가게 앞에서 우연히 서연이를 마주쳤다. 배고프다며 이 가게에서 순댓국을 먹자고 한다. 가게 주인인 엄마는 옆 가게 아주머니와 악다구니를 치며 다투고 계셨다. 난 순댓국을 잘 먹지 못한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난 후 재욱 선배가 서연이와 나를 바래다줬다. 선배의 옆자리에 그녀가 앉았다. 대화에 끼어봤자 비교만 될 게 뻔하니 자는 척을 했다. 실눈에 들어온 두 사람의 모습이 참 잘 어울린다. 둘은 내 옷의 브랜드 스펠링이 틀렸다고 함께 비웃었다.


에 도착하자마자 티셔츠를 내팽개쳤다. 엄마가 멀쩡한 옷을 왜 던지냐며 가게 장사도 안되는데 정신 차리란다. 선배보다 잘난 게 하나도 없다. 대문을 걷어찼다. 헐어빠진 문짝이 참 쉽게도 휜다. 이런 내가 그녀를 좋아하려고 했다니, 다 착각이었다.




4. 그녀의 생일


서연이의 생일날, 우리는 단둘이 파티를 했다. 그녀가 우리의 10년 뒤를 물었다.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했다. 그녀가 살고 싶은 집을 얘기했다. 그 집을 지어주고 싶었다. 비록 납득이에게 무시당했지만 키스, 아니 뽀뽀도 했다. 날 집으로도 초대했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며 함께 웃었다.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했다. 


그녀에게 고백해야겠다.




5. 고백할 수 있을까


종강 날이 되었다. 그녀의 집 앞에서 선물을 들고 기다렸다. 날이 차가웠지만 춥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나타났다. 재욱 선배와 함께. 그녀는 취해 있었다. 나도 모르 게 벽 뒤로 숨었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발이 바닥에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그녀도 결국 재욱 선배를 택한 것이다. 나 같은 놈이 껴들 공간은 없었다.


택시를 탔다. 정릉은 강북이라 안 간단다. 택시기사가 비열하게 웃는다. 초라하다. 당장 정릉으로 가자며 고함을 쳤다. 차 문짝을 부여잡고 눈물을 삼킨다.

 




6. 왜 다시 찾아온 걸까


15년 만에 그녀가 나를 다시 찾아왔다. 나에게 그렇게 큰 상처를 주고도 뻔뻔하게 나타나서는 집을 지어 달란다. 여전히 아름답다. 난 더 이상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 그녀가 기억나지 않는 척했다. 그녀가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금 풀린다. 


남편이 의사란다. "강남에 사는 사모님이 제주도에 집을 짓는 다니~ 남편이 돈을 잘 버나 봐. 투기야 뭐야." 입으로 나오는 말을 그대로 내보낸다. 마음이 좀 더 풀린다. 화내며 자리를 박찬 그녀를 쫓아 나선다.





7. 그녀에게 난 뭐였을까


집을 완공했다. 그녀와 마지막 맥주캔을 기울였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깊어졌다. 더 이상 생각의 꼬리를 무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자리를 털었다. 문 앞에 남은 짐을 옮겨주려다 그녀의 물건을 발견했다. 내가 주려던 선물이다. 도대체 왜, 그게 그곳에 있는 것일까. 그녀는 왜 날 찾아왔을까. 이제 와서 굳이 왜.





승민이 바라본 것은 무엇일까.


승민은 지고지순하게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온종일 그녀를 떠올리고 같이 있는 순간들을 피부로 느끼며 행복해했죠. 그러나 정작 그녀를 바라보지는 못했습니다. 재욱 선배 덕에 남루해진 자신이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관계가 친밀해질수록 오히려 의아해하며 자신의 연애 스승(?)인 납득이에게 그 이유를 묻죠. 답은 항상 엉뚱하게 흘러갑니다. 승민은 서연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랐을뿐더러, 얘길 듣고도 믿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언젠가 걷어찼던 대문을 부여잡고 서글픈 눈물을 흘립니다.





뭐 눈엔 뭐가 보인다.


뭐 눈엔 뭐가 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누구나 내부의 생각을 바탕으로 외부 현상과 상호작용을 합니다. 그럼에도 '투사'가 방어기제로 개념화된 이유는 그 수준에 따라 내/외부의 적절한 조율자가 될 수도, 혹은 날 괴롭히는 습관적 사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뭐가' 보이는 것과 '뭐만' 보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요.


누구에게나 '승민의 대문'과 같은 상대적 현실이 있습니. 그 현실을 감내하다 보면 이따금 작고 못난 내가 찾아는데, 이를 막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죠. 인생이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이 현실은 기가 막히게 좋은 결과를 주거나 속 시원하게 위로해주지 못할 때가 더 많기 때문이에요. 내 앞에 다가온 못난이는 점점 더 선명하고 거대해져 그 너머에 대한 대부분의 시야를 차단하고 맙니다.


그런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 못난이의 역할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녀석이 웬만한 못난 짓은 다 흡수해주니 나는 그 뒤에 몸을 숨길 수가 있는 셈이죠. 이처럼 투사는 내면을 보호하고 일종의 안도감을 주기 위한 무의식적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못난 녀석까지 너무 억지로 예뻐하려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자존감은 나의 모든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만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해요. 못난 모습 그대로 두되, 시야를 가리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옆으로 옮겨보면 어떨까요. 상대방이 나를, 내가 상대방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말이죠.


결국 타인 역시 자신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내 모양이 아무리 훌륭해도 누군가에겐 비려 보일 수 있고, 반대로 남루해도 누군가에겐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겠죠. 굳이 못난 내 모습에 집중하며 그들의 판단을 뺏어갈 필요가 있을까요. 만약 승민이 못난 자신에게 몰두하던 시간을 서연에게 옮겼다면, 대문 걷어찰 일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마치며


깊은 관계에서의 투사를 다룬 영화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관계를 시작도 못하는 건축학개론을 다룬 이유는 우리가 승민의 실패는 그렇게도 안타깝고 슬프게 바라보면서 정작 소중한 상대방에게는 쉽게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을 성공적으로 지나왔는데도.


바로 오늘, 맘에 안 드는 짓만 골라하는 애인에게, 바빠서 연락 못했던 절친에게, 늘 있어서 있는 줄 몰랐던 부모님께, 한 마디 해보면 어떨까요. 나에게 오느라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당신이란 사람의 모양이 참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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