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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un 06. 2017

부록: 내 마음속 면역체계

방어기제 이해하기


우리의 몸에는 면역체계가 있습니다. 외부의 감염이나 질병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죠. 그런데 마음속에도 일종의 면역시스템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으로 인해 자아가 위협받는다고 느껴지면 다양한 보호장치를 사용하여 온전한 상태를 유지시키는데요. 우리는 이 신박한 면역시스템을 '방어기제'라고 부릅니다. 예전에 비해 심리학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서 평소 관심이 있던 분이라면 아마 방어기제라는 말이 생소하진 않을 것입니다. 이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친구랑 말싸움할 때 사용하는 기법이 아닐까'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방어기제는 정신분석에서 등장한 이론입니다.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체계' 그리고 '삼원구조이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단어가 괜스레 어렵네요.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으니 맘 편히 따라오세요! ^^




인간의 의식체계


정신분석이론은 '프로이트'라는 심리학자에 의해 정립되었습니다. 때문에 이 학문의 중심 키워드인 '무의식' 역시 프로이트를 빼놓고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은 김연아, 수영은 박태환, 리듬체조는 손연재 선수가 떠오르는 것과 비슷하죠. 여담으로, 최초로 뭔가를 이룩하거나 개척한 이는 그 분야의 독보적인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기 마련인데 이 프로이트라는 아저씨는 좀 특이합니다. 심리학 전공이 아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학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심리학자들에겐 미움받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잊을 만하면 또 이렇게 나타나서는 마치 끼니를 챙기듯 자신의 존재를 알리곤 합니다. 그 이론의 합당성 여부를 떠나서, 그가 펼쳐 놓았던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의식은 3차원으로 분류되어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뇌가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한 번쯤 보신 그림이겠지만 그러한 의식 구조를 빙산에 비유했죠.


으스스


빙산의 수면 위 영역이 '의식', 수면 아래의 거대한 덩어리가 '무의식'인 셈입니다. 그리고 수면 바로 아래의 영역을 '전의식'쯤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의식은 현재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범위죠. 한편, 평소엔 의식하지 않지만 필요에 따라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영역, 즉 신경 쓰면 기억해낼 수 있는 부분이 전의식입니다. 어릴 적 사건, 수학 공식, 저번 주 식당 메뉴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무의식은 말 그대로 '의식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의식에 비해 월등히 큰 영역으로 구성돼있지만 정작 그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긴 어렵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대부분의 생각이나 행동은 의식 수준에서 일어납니다. 내가 어느 정도 납득을 해야 그 생각을 유지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니까요. 그런데 이따금씩 스스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나 행동을 하기도 하죠. 프로이트는 그 부분에 집중했습니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기제가 (그 덩어리만큼이나 큰) 무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죠.


때문에 무의식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대면하는 가에 따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정신문제와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의식 속에 봉인해 놓은 아픔이나 진실과 직면하여 외부(의식)로 드러났던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시도였어요. 그는 최면을 시작으로 ‘꿈의 해석(대상이 꾼 꿈을 해석)’, ‘자유 연상(자유롭게 어떤 말이든 연상시켜서 단서를 찾음)’등 다양한 치료법을 시도했으며 실제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뤘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물이다.


문제는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이 프로이트의 비과학적 접근법을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점인데요. 계몽주의와 유물론 등 합리성의 위대함이 강조되던 시대였습니다.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무의식을 중시하며 의식은 중요치 않은 듯한 인상을 주던 프로이트는 수많은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고, 그 비판의 흐름은 현재까지도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프로이트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의식의 위대함을 강조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은 의식을 통제하여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라는 주류의 흐름에 더해 ‘인간은 무의식도 통제할 수 있다.’라는 주장까지 한 셈이니까요.


그러면 프로이트가 그토록 심취했던 수면 아래의 영역, 무의식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삼원구조이론이란?


무의식은 '자아(ego), 초자아(superego), 원초아(id)' 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에고, 슈퍼에고, 이드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각각의 역할은 아래와 같습니다.


자아: 내면의 중심이자 관리자

원초아: 더도 덜도 없는 순수 본능

초자아: 내부의 일들을 외부의 흐름과 어울리도록 안내하는 역할


앞서 보여드렸던 빙산을 토대로 보면 아래와 같이 구분이 됩니다.


수면 위에서 원초아를 볼 일은 없을 듯!



원초아에서 언급된 본능이 흔히 생각하는 ‘욕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한 목표가 있다기보다는 순수하게 발생하는 모든 본능으로서, 개인의 일생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죠. 쉽게 말해서,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일관적으로, 마냥, 뭔가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마냥 원한다고 해서 다 되지는 않겠지요? (그렇다면야 좋겠지만...) 그래서 자아가 있습니다. 이 녀석이 참 기특합니다. 무한정 원하기만 하는 원초아를 나름의 방법으로 잘 타이르며 외부 조건과의 타협점을 찾습니다.


그렇다면 자아는 외부의 정보를 어떻게 사회적 또는 문화적 규범과 연결시킬까요? 그것을 정리해 주는 녀석이 바로 초자아입니다. 이 녀석은 항상 외부의 맥락이나 관계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기 때문에 그 바닥에서는 제법 잔뼈가 굵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초자아가 자아에게 충고합니다.  “지금 저 사람의 웃는 얼굴에 이유 없이 침을 뱉는다면 우린 저 사람과 멀어질 거야. 게다가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라는 옛말까지 무색해지지. 그뿐이 아냐.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볼 경우엔 이 집단에서 외톨이가 될 수도  있어.”라고 말이죠. (이처럼 세심한 조언자가 또 있을까요.) 


자아는 이러한 충고들을 수렴하여, ‘나는 이유 없이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는 않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자신의 정체성에 추가시킵니다. 동시에 원초아에게 가서 토닥이며 말합니다. “혹시 침이 뱉고 싶다면 나를 봐서라도 좀 참아줘. 네가 침을 뱉으면 우리 모두 문제를 겪게 되거든. 참을 수 있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원초아가 “만약 지금 이 욕구마저 무시한다면 넌 상당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할 거야.”라며 자아에게 경고하죠. 이처럼 자아는 내/외부의 조건, 즉 원초아와 초자아의 외침 사이에서 내면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끊임없이 완성시키는 지휘통제의 역할을 합니다.


당연하게도 위의 세 친구가 서로 원만히 타협을 할 때는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수면 위 의식의 세계에서 납득 가능한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이 일어나죠. 문제는 이들이 서로 잘 타협되지 않는 상황에 있습니다. 특히 원초아의 충고를 자아가 외면하거나 곡해할 때 조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일들은 벌어지는 형태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뉩니다. 이제 방어기제를 알아볼 차례입니다.




그래서 방어기제란?


방어기제의 사전적 정의는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은 말이 참 복잡한 것 같아요. 앞선 빙산의 예시에 이어서 풀어본다면, 수면 깊은 곳에는 다양한 욕구와 불안, 분노가 있습니다. 인간은 초자아의 친절한 데이터를 참고 삼아 나 자신, 즉 자아로 잘 정립하고는 하는데요. 그 정리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면역시스템이 가동됩니다. 무리한 정리로 자아가 균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 무의식적 방패가 '방어기제'입니다.


적절한 방어기제는 외부 조건과 나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여 적응을 돕습니다. 하지만 과도하거나 좋지 않은 방어기제는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자신을 속이고 현실을 왜곡시키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적응에 어려운 지점들을 만들죠.


자, 그러면 저 깊은 바닷속엔 어떤 종류의 방어기제가 있을까요?


들어갈 준비들 해..




방어기제의 종류


방어기제의 종류는 일상의 적응에 미치는 영향에 기반하여 '건강하지 못한 방어기제'와 '건강한 방어기제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방어기제는 그 종류가 꽤나 많지만, 삶에서 좀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의미 있는 (혹은 재미있는) 현상 위주로 정리했습니다. 좀 어렵다고 느껴지면 굵게 표시한 요약 설명만 보시면 됩니다.



■ 건강하지 못한(신경증적) 방어기제


억압(repression)

: 내면에서 원하는 것들을 억누름.

+ 고통스럽고 불안한 생각 또는 기억을 의식에 두지 않고 무의식에 가두어 두는 과정.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무의식적/자동적으로 일어나므로 (의식과 의지를 수반하는) ‘억제’와 다름.

++ 영화 속 인물: <타이타닉> 로즈  [보기]

부정(denial)

: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을 거부함.

+ 특정한 일이나 생각,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 보거나 들으려 하지 않고 지각한 것을 왜곡하거나 회피하는 경우, 지각은 온전히 했으나 인지하는 과정에 공상이 들어가 현실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음. 성숙한 사람도 견디기 힘든 상황에 대해서는 부정이 나타나기도 함.

+ 예시: 자신의 병을 부인하는 불치병 환자. 전쟁에서 전사한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

++ 영화 속 인물: <인셉션> 코브 [보기]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 내면과 반대로 행동함.

+ 대상에 대한 금지된 (혹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충동을 가두기 위해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 무의식적 욕구 충동을 억압만으로 극복할 수 없을 때 그것과 정반대의 욕구를 만들어냄으로써 대항하는 현상.

+ 예시: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의 고무줄 끊기.

++ 영화 속 인물: <응답하라 1988> 김정팔 [보기]

전치(displacement)

: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감정이나 갈등을 보다 덜 위협적인 대상이나 사람에게 향하게 하는 현상.

++ 영화 속 인물: <주유소 습격사건> 4인방 [보기]


합리화(rationalization)

: 현실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

+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 자책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것. 원하는 행동을 하지 못했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 자아를 보호함. 무의식적인 과정이므로 거짓말이나 변명 등 의식적인 행동과는 다름.

++ 영화 속 인물: <달콤한 인생> 김선우 [보기]


이지화(intellectualization)

: 자신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접근 

+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나 기억에 대해 감정을 분리하고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현상. 힘든 사건이나 기억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슬퍼하거나 화내지 않고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며 해석하고 해결책을 찾아냄. 특히 회사원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방어기제.

+ 예시: "내가 오늘 차인 이유는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풍토 그리고 흙수저가 바뀔 수 없는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 게다가 오늘 내가 입고 간 옷은 베스트 룩이 아니기 때문에 차일 확률을 증가시켰지. 고로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외모의 수준을 높이거나 그 사회 풍토를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찾아야 하고 특히 나의 금전적인 역량을 개선... 크흡!"

++ 영화 속 인물: <굿 윌 헌팅> 윌 헌팅 [보기]

투사(projection)

: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던짐

+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나 본능, 개인적인 성향, 특히 죄의식이나 열등감 등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아닌 타인이나 외부 환경의 원인으로 돌리는 현상. 가령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타인에게 투사하여 오히려 상대가 나를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함.

+ 예시: "돈 못 벌면 밥 먹을 자격도 없냐!?"

++ 영화 속 인물: <건축학개론>의 승민 [보기]


퇴행

: 유아적 행동을 함

+ 자신이 없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에 도전하거나 행동해야 할 때, 또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반복될 때 어린 시절의 생각이나 판단으로 돌아감으로써 불안을 해소하는 현상. 주로 내면의 문제보다는 외부의 압박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음.

+ 예시: 동생이 태어나자 첫째가 바지에 소변을 보는 등 더 어릴 적의 행동을 하는 것

++ 영화 속 인물: <라디오스타>의 최곤 [보기]


동일시(identification)

: 주요 인물을 닮아가는 것.

+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을 닮게 되면서 혹은 따라 하면서 자존감을 높이는 현상. 그 대상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던 부정적 대상인 경우가 많으며 그 대상과 자신을 동일하게 만들어 두려움을 극복함. 가령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이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이 대표적인 현상임.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율성을 획득한다면 긍정적이고 발달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음.

++ 영화 속 인물: <대부>의 마이클 [보기]



■ 건강한 방어기제

억제(Superssion)

: 분노와 욕구의 원인을 이해하고 통제

+ 의식과 의지를 수반하는 통제 과정이므로 무의식적 과정인 '억압'과는 구별됨.

++ 영화 속 인물: <타이타닉> 잭 도슨  [보기]


유머(Humor)

: 고통이나 불안을 웃음으로 승화

++ 영화 속 인물

+++ <마션> 마크 와트니 [보기]

+++ <월드워 z> 제리 [보기]

+++ <스쿨 오브 락> 듀이[보기]

+++ <인생은 아름다워> 귀도 [보기]


승화(sublimation)

: 반사회적인 충동을 사회가 허용하는 방향으로 전환
+ 예시: 예술, 전쟁 지원, 격투기

+ 영화 속 인물: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보기]



방어기제를 건강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누는 것이 꼭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몸이 마치 가래를 올려내기 위해 기침을 하는 것처럼, 수면 아래의 덩어리가 움직이는 현상을 꼭 병리적으로만 볼 수는 없겠지요. 어떤 방어기제든 그 현상 자체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기침이 나온다고 아무한테나 뱉어내면 불편을 줄 수 있겠죠. 지속적이고 심한 기침은 폐렴 등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방어기제 역시 주된 역할은 나의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는 방패이며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일상에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지나치게 남용하면 오히려 나를 가두는 단단한 벽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 참고문헌

- 한국심리학회 (2014). 심리학 용어사전.

- 이우경, 이원혜 (2012). 심리 평가의 최신 흐름. 서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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