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윌 헌팅>
영화 <굿 윌 헌팅>은 빈민가에 살고 있는 한 천재와 심리학 교수의 대립, 관계, 그리고 그로 인한 서로의 변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하는 사람의 자세 및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심리치료 접근 법 중 하나인 '게슈탈트 치료'의 관점에서 그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배우 '로빈 윌리암스'는 극 중 '숀 맥과이어(이하 숀)'라는 심리학자로 등장합니다. '윌 헌팅(이하 윌)'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 여러 심리치료센터에 가게 되지만 그 천재적 지능으로 인해 본의 아닌 도장깨기(?)를 하는 빌런입니다. 숀 역시 자신을 거쳐간 수많은 심리치료사 중 하나로서 만나게 되는데요. 자, 그럼 희대의 천재 윌과 운둔 고수 숀의 대결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볼까요?
‘게슈탈트’를 의미 그대로 나열한다면 ‘행동 동기로 지각된 욕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더 풀어 말하자면, ‘내가 지각하여 어떤 행동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욕구’로서 순수한 '욕구 그 자체’와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요.
음, 예를 들어 볼까요? 지금 나는 배가 고픕니다. 이때, 내가 느끼는 ‘배고픔’이 욕구 그 자체라고 한다면 게슈탈트는 ‘내가 지금 배고프니 냉장고에 붙어있는 중국집으로 전화를 걸어 자장면을 시켜야지.’까지의 좀 더 총체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
왜 굳이 ‘게슈탈트’라는 낯선 단어를 만들어서 이런 난해한 분류를 하는 것일까요. 지각되지 않은 욕구는 ―즉,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욕구는― 내가 겪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니 고로 해결할 수도 없다는 관점 때문이에요. 게슈탈트 치료는 이처럼 총체적 욕구를 알아차리도록 돕고 그에 대한 해소와 건강한 정신 흐름을 유도하는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알아차리는' 것이 뭐 얼마나 어렵길래 심리치료에서도 거론이 되는 걸까요. 간단한 질문으로 알 수 있어요.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니?”
대답이 쉽게 나오나요?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확신하시나요? 그렇게 해야 하니까 했던 것들을 마치 내가 원하던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예컨대 돈, 좋은 직장, 좋은 집 등 나 자신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것들이 과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일까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 게슈탈트 치료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이처럼 간단하고도 어렵습니다.
치료는 총 5단계로 진행이 됩니다. 정확히는 이 5개의 층을 해소해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죠.
피상층 > 공포층 > 교착층 > 내파층 > 폭발층
그러면 이 5단계가 세기의 천재 '윌 헌팅'과 심리학자 '숀 맥과이어'의 만남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리고 윌은 자신의 게슈탈트를 어떻게 깨닫게 되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윌은 보스턴 남쪽의 빈민 거주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윌과 그의 친구들은 일용직을 하고, 저녁에는 자주 어울려 다니며 술을 마시고는 합니다. 윌은 천재입니다. 그런데 흥청망청 친구들과 노는 것에 인생의 전반을 투자하고 있죠. 게다가 엄청나게 사고뭉치입니다. 싸움에 너무 쉽게 가담하며 일단 폭력이 시작되면 알 수 없는 분노로 인해 멈출 수가 없습니다. 폭력 사건으로 여러 번 재판을 받지만 항상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자신에 대한 변호도 천재적으로 하기 때문이죠. (만만치 않은 녀석이죠?)
피상층 : 주변을 피상적으로 대하는 단계
윌은 MIT 공대에서 교실 바닥 청소 일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복도에 있는 수학 문제를 아주 손쉽게 풀어냅니다. 놀랍게도 그 수학 문제는 노벨상을 수상한 교수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어려운 문제이며, MIT 공대 재학생 중 누구도 풀지 못한 문제였지요. 그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제럴드 램보(세계적인 수학자이자, MIT 공대의 교수)는 윌이 범상치 않은 천재―그런 천재 중에서도 더 뛰어난 천재―임을 직감하고 윌을 만나러 갑니다.
마침 경관 폭행죄로 더 이상 구속을 면할 수가 없게 된 윌은 램보 교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죠. 결국 보석금과 램보 교수의 보호 아래, 주 1회 정신 치료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하지만 천재적인 지능의 윌을 상대한다는 것은 심리치료사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죠. 그렇게 여러 전문가들을 KO패 시키던 그는 어느 날 램보 교수의 친구인 숀과 대면하게 됩니다.
윌은 숀과의 상담에서 역시 ―그가 앞서 상처를 주었던 수많은 정신 관련 학자들처럼― 자신의 천재성으로 상황을 제압하려 합니다. 둘은 의미 없는 설전을 벌이며 서로의 관계를 조금씩 형성해 나가는데요. 숀 역시 다른 상담사처럼 화가 나서 윌의 멱살을 잡는가 하면 상담 중간에 그를 쫓아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숀과 윌 사이의 형성되는 관계를 '피상층'이라고 합니다. 상담자는 상담자로서, 내담자는 내담자로서 서로의 역할과 관계를 뚜렷하게 만들어 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지요.
첫 상담에서 숀은 자신의 그림을 멋대로 해석하고 죽은 아내에 대해 막말을 하는 윌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상담 장소를 한적한 공원으로 정한 후 그곳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넌 천재야. 그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해. 그런데 넌 그림 한 장 달랑 보고는 내 인생을 다 안다는 듯 내 아픈 삶을 잔인하게 난도질했어. 너 고아지?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고 어떤 녀석인지 <올리버 트위스트>만 읽어보면 다 알 수 있을까? 그게 널 다 설명할 수 있어? 솔직히 난 알바 없어. 어차피 너한테 들은 게 없으니까. 책 따위에서 뭐라던 상관없어. 우선 네 스스로에 대해 말해야 돼. 자신이 누구인지 말이야. 그렇다면 나도 관심을 갖고 대해 주마. 하지만 하고 싶지 않지? 자신이 어떤 말을 할까 겁내고 있으니까. 네가 선택해 윌."
이후 윌은 숀에 대해 피상적이던 자신의 태도와 경계를 조금 허물며 상담에 참여하게 됩니다.
공포층: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단계
연못 상담 이후 숀은 상담 시간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숀의 강단 있는 침묵이 지속되면서, 결국 윌은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고, 둘의 본격적인 상담이 진행됩니다.
마음을 모두 열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윌은, 셰익스피어, 니체, 프로스트 등의 죽은 학자들을 나열합니다. 그는 주위의 누구에게도 마음을 다 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숀은 '그들과는 쌍방향의 대화를 할 수 없으니 교감도 할 수 없다. 네가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평생 교감할 수 있는 친구는 사귈 수 없다'라고 말하며, 윌이 현재 허울뿐인 인간관계를 맺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면서 슬쩍 질문을 던지지요.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그리고는 ―직업에 귀천이 없고 나는 이런 일이 좋다며― 이리저리 질문을 벗어나서 피상적인 설전을 유도하는 윌에게 '그렇다면 어째서 네가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청소부 일을 40분 거리나 되는 세계 최고의 MIT대학까지 가서 하고 있었으며, 왜 밤마다 복도 칠판 앞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세계에서 몇 명만이 풀 수 있는 문제를 풀었냐'며 조금 더 몰아붙입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묻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야-"
뜸 들이던 윌은 '양치기 소년'이라며 진심 없는 답변을 하고 맙니다. 누구나 그렇듯, 오랜 시간 외면하고 있던 자신과의 직면이 두려웠을까요. 숀은 그런 윌에게 당장 나가라고 합니다. 윌이 대답을 계속 피하는 한 상담이 진전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 숀을 향해 윌은 또다시 죽은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거론하며 공격적인 말들을 쏟아 붙습니다. 하지만 윌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가득하죠. 천재적인 뇌와 흠잡을 곳 없는 미사여구로 반박을 하지만, 결국 그것은 무언가와의 직면을 앞둔 어린아이의 불안한 외침일 뿐이었습니다. 숀은 그런 윌의 격앙된 질문들에 차분하게 대답하다가 다시 묻습니다.
"날 똑바로 보고 말해. 네가 하고 싶은 게 뭐냐고."
윌은 잠시 동안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다가 결국 상담실을 나갑니다.
영화 초반 부, 윌은 친구들과 하버드 대학생들이 대부분인 호프집을 갑니다. 그곳에서 한 학생이 자신의 친구를 무시하려 하자 윌은 자신의 천재적인 두뇌로 그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줍니다.
윌에게 '친구'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조차 모르고 그런 질문으로부터 도망치기 급급한 윌에게 있어서 친구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곧 자신인 것이지요. 윌은 친구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천재적인 두뇌와 잠재력이 있음에도 그들과 함께하는 일용직과 맥주를 인생의 낙으로 삼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요는 그런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윌이 그것을 원치 않음에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숀과의 상담에서 내쫓긴 다음 날, 윌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벤 애플렉)에게 "평생 이곳에 살면서 서로의 자식들과 야구장도 함께 가고 맥주 마시며 즐겁게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 윌에게 친구는 매우 훈훈(?)한 대답을 합니다.
"넌 내 친구니까 이런 말 한다고 오해하지 마. 네가 20년 후에도 여기 살면서 노무자로 일하고 우리 집에 와서 비디오나 때리고 있으면 널 죽여버릴 거야. 장난 아냐. 진짜 없애버릴 거야."
이어서 친구는 윌이 '자신들에게 없는 능력을 가졌다'고 말하지만, 윌은 '자신이 원하는 게 이 일(일용직)인데 왜 다들 이래라저래라 하냐'며 화를 냅니다. 하지만 매우 진지한 말투로 '지금이 좋다'며 거듭 말하는 윌에게 이 훈훈한 친구가 또 한 번 쐐기를 박습니다.
"아냐 아냐. 이 빌어먹을 자식아- 널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날 위해서라고- 50살이 되어도 나는 육체노동을 하고 있을 거야. 그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너는 지금 당첨된 복권을 깔고 앉아 너무 겁이 나서 돈으로 못 바꾸는 꼴이라고. 바보 같은 짓이지. 네게 있는 재주를 가질 수 있다면 난 무슨 짓이든 할 거야. 여기 모든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여기서 20년이나 곯는 것은 우리에 대한 모욕이야. 물론 매일 아침 너희 집에 들러 너를 깨우고, 같이 한껏 취하며 웃는 것도 좋아. 하지만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언제인지 알아? 내가 너희 집 골목에 들어서서 네 집 문을 두드려도 네가 없는 날이야. 안녕이라는 말도 작별의 말도 없이 네가 떠났을 때라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할 거야-"
친구의 말에 윌은 또 한 번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낍니다.
앞의 두 가지 계기를 통해 윌은 조금씩 자신의 게슈탈트, 즉 자신이 마주하기 두려워하고 있던 사실들, 그리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에 대하여 조금씩 다가서기 시작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피할 수 있는 합리적 공간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교착층 : 다른 말로 '막다른 골목'이라고도 하며, 내담자가 자신의 게슈탈트를 깨닫는 단계
어느 날 숀은 윌의 과거 자료와 상담 평가 기록을 들고 그를 맞이합니다. 윌이 무관심한 말투로 서류에 대해 떠듭니다. '애정결핍 뭐 이런 건가요?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뭐 그런 거?'라는 식이지요. 숀이 그런 윌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합니다.
"It's not your fault. (네 잘못이 아니야)"
윌은 고아였습니다.
어릴 적 3번의 입양과 강제 파양을 당했고, 3번 모두 양부모에 의해 끔찍한 학대와 고문을 받았습니다. 윌이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갖고 온 셈이지요. 때문에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MIT 공대의 청소부로 들어가 몰래 수학을 풀었던 것입니다. 영화 중반, 윌은 자신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애인에게 분노하며 학대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이어서 심한 말들을 한 뒤 그녀를 떠납니다. 윌에게 자신의 과거는 그런 것이었죠. 알려지면 버림받게 되는 것. 숨겨야 할 것. 자신의 약점. 자신의 잘못. 나의 잘못. 내가 못나서 겪게 된 것. 어쩌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은 윌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숀은 빈정대며 서류에 대해 아무 말이나 던지는 듯한 윌에게 "윌. 나도 아는 게 많지 않지만, 이 기록들... 모두 다 헛소리야."라며 다가섭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죠.
"It's not your fault. (네 잘못이 아니야)"
윌은 뭐 다아는 걸 얘기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알아요-'라고 대답하지만, 숀은 한 걸음 더 다가갑니다.
"It's not your fault. (네 잘못이 아니야)"
"안다고요-"
"아니. 넌 몰라. 네 잘못이 아니다. 윌"
윌은 당황한 듯 몸을 일으키며 다시 '알아요'라고 대답하지만 숀은 더 다가서며 다시 말합니다. 윌은 '알았어요'라고 고쳐 말하며 자리를 피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지만, 윌은 그를 막아서고 눈을 보며 말합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다."
"성질나게 하지 말아요..."
윌은 눈시울을 붉히며 이처럼 내뱉었지만 숀은 같은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윌은 숀을 강하게 밀치며 "선생님만이라도 나를 성질나게 하지 말아요!"라고 울먹이지만 숀은 또다시 다가서며 말합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었어, 윌."
결국 윌은 자신이 십수 년간 피하고 있던 어떤 사실과 직면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놓이게 됩니다. 너무도 치유받고 싶었던 그 '사실'이자 욕구는 내면 깊숙한 곳으로 억압된 채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숀은 윌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현재까지 지각되지 못하였던 윌의 욕구를 직면시켰습니다. 그가 게슈탈트를 깨우칠 수 있도록 도운 것이지요.
- 내파층 : 게슈탈트를 지각하며 내면에서 먼저 감정의 격앙이 일어나는 단계
- 폭발층 : 내면에서 커지던 감정이 외부로 표출되면서 해소되는 단계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숀 앞에서 결국 윌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냅니다.
어떤 말에도 손쉽게 대꾸하던 그가 아무런 말도 없이 흐느낍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 부인하던 과거, 지금의 내 모습,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 그 모든 게 한 순간에 지각되면서 그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감정들이 떠올랐나 봅니다. 숀도 윌을 안아줍니다. 윌은 그를 꽉 안은 채 한동안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웁니다. 숀은 말없이 그를 계속 안아주고 있습니다. 마치 울던 아기를 안아주는 엄마처럼.
윌은 <맥닐사>라는 세계적인 기업에 입사 약속을 한 뒤, 다시 숀을 찾아갑니다. 마지막 상담 시간이겠지요. 둘은 서로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회사를 선택한 것이 정말 원하는 것이냐는 숀의 질문에 "그런 것 같아요."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모습에서 윌의 변화된 모습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좋은 영향을 받은 것은 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숀 역시 윌을 치료하며 자신을 가두고 있던 생각들을 발견하게 되지요. 이후 윌과 숀은 자신에 대해 더 접근하기 위해 각자 새로운 여행을 떠납니다. 참고로 윌은 회사를 포기하고, 숀이 자신의 아내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떠나간 애인을 찾아 ―긴 세월을 살았던 보스턴 남부에서― 떠납니다. 자신의 집에 남겨 놓은 쪽지를 보고 숀은 혼잣말을 하죠.
"망할 녀석. 감히 내 흉내를 내다니!"
윌은 '이지화'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천재적인 두뇌를 자신의 방어를 위해서만 사용하였습니다. 이지화는 자신의 상황이나 문제를 이론적으로만 접근하려는 방어기제입니다. 실제로 영화 초반의 재판 및 상담 장면에서 윌은 상대방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의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죠. 정작 스스로가 무엇을 느끼고 경험하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윌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마치 파일을 압축하듯이 통째로 압축하여 보이지 않는 깊숙한 곳에 숨겨놓는 것이지요. 이렇게 숨겨놓은 감정들은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원인 모를 형태로 표출이 되기도 합니다. 그 대상은 가족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있죠. 가끔 너무 심해서 스스로를 놀라게도 합니다. 이런 일들을 하나의 해프닝으로만 생각하며 지나치는 건 아닐까요.
윌과 숀은 우리에게 '좀 더 솔직하라'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면의 깊은 곳 어딘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남몰래 훌쩍이는 녀석은 없는지, 스스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 녀석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관심이 아닌, 제일 잘 알고 제일 깊이 사랑해 줄 수 있는 나 자신으로부터의 관심 말이지요. 자 그럼, 좀 간지럽긴 하지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볼까요.
"넌 누구니. 그리고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니."
앞서 윌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 It's not your fault (네 잘못이 아니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이유는 아이들의 '자기중심적 시각'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폭행하거나 학대하면 부모의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인식의 능력이 부족하고 사고가 자기중심적이기에 자신의 결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말죠. 비단 윌에게 일어났던 학대만이 이에 해당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싸우는 모습을 볼 경우에도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더불어 폭행이 일어난다면 이 아이의 미래도 윌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윌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지 못하며, 마음을 울리는 친구에 대한 질문에 죽은 학자들만을 나열합니다. 어릴 적 학대로 인해 '자신은 문제가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생겼고, 타인에게 자신의 모습 전부를 보이기 두려워진 것이죠. 윌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마저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심한 말들을 한 뒤 먼저 떠나 버리기도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상기시킵니다. 자녀의 앞에서 아내 또는 남편과 심하게 다투거나 폭행하는 행위 등은 또 하나의 윌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사람들 속에서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보이지 못하고 답답함을 느끼다가, 집으로 귀가하여 양말을 벗어던진 뒤에나 편안한 숨을 내쉬는 삶. 우리 아이가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적어도) 아이 앞에서는 어른스러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윌은 천재입니다. 천재인데 왜 자신에 대해서는 냉정한 분석을 하지 못하였을까요. 똑똑한 두뇌는 오히려 가장 큰 함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똑똑한 사람일수록 심리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완벽한 합리화의 틀을 구성한 그(또는 그녀)의 틈을 비좁고 들어가 내면을 보는 일이 쉽지 않을뿐더러, 방대한 지식과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높게 두른 철벽 방어막 때문입니다.
숀 이전의 상담사들은 윌이 천재적인 두뇌로 그들을 조롱하자 상담을 포기하고 맙니다. 하지만 숀은 윌이 노련하고 능글맞게 지적하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다가갑니다. 이를 통해 상담자에게 필요한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꼭 전문적인 치료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치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말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간의 라포(관계) 형성일 것입니다. 숀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담자는 결코 내담자보다 잘나서 또는 우위에 있어서 그들을 상담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마음의 옷장을 열어 어지러이 쌓여 있는 옷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도록 돕는 것이 그 역할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