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고래 Mar 08. 2021

널 위해 하는 말

그게 곧 날 위하는 길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며 내 기분을 묶어두었던 선배는, 이런 말로 긴긴 충고의 대미를 장식했다.


“널 위해 하는 말이야.”


당시엔 한 가지 생각만 머리를 맴돌았다. 뭐지? 불과 5초 전까지 뙤약볕에 말린 모기떼 같은 얘기들을 쏟아내더니 그게 나를 위한 것인지 왜 자신이 정하는 걸까.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 아닌가.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충고가 한 개인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삶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 한 번 이상은 충고를 실천하는 누군가는 그랬다. 충고를 고깝게 듣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반기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당신의 진리들은 입안에서만 충치로 남게 되는 셈이라고. 그러니 같잖은 배려는 버리고 충고를 하라고.


이 같은 충고 마니아에게 있어 ‘널 위해’라는 말은 상대의 판단을 묶어두고 내 얘기의 정당성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포석이다.    


널 위해 하는 말이야:
1. 너에게 이로운 내용이야. 아닐 가능성은 없어.
2. 널 위하는 내 마음도 알아줘야 돼. 그러니 잠자코 내 충고를 새겨들어.    


당신의 충고는 옳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설령 옳다고 해도 그것이 상대에겐 이롭지 않을 수 있다. 충고가 입을 떠나 상대의 귓전에 도달한 순간부터 그것을 취할지는 오롯이 그의 몫인 셈이다.


하지만 '널 위해'라는 말을 가미하면 상대는 그 얘기를 무조건 이롭게, 혹은 고깝게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로에 놓이게 된다. 정상적인 판단의 기회를 잃게 되는 셈이다. 상대를 위하든 그렇지 않았든 이 말의 효력은 그렇다.    



예문

“사회 초기에는 힘든 시간들이 오히려 득이 돼. 그러니 불평할 시간에 더 흡수해. 내가 시키는 것만 잘해도 어디 가서 일 잘한다는 소리 들을걸? 그러니 시키는 것만 잘해. 다 너희들을 위해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주로 멋모르는 초짜들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때 활용되곤 한다. 화자에게 일종의 권력이 있을 땐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담기도 한다.


에헤이~ 속고만 살았나! 나 좋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니까!?


나와 다른 선택을 했던 누군가의 삶이 빛나기 시작했고, 그래서 아랫배가 살살 아플 때도 이 표현이 활용되곤 한다. 충고 내용엔 ‘당신의 선택은 그다지 좋지 않다.’라는 식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더 나은 선택도 있지는 않을지,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그것은 우려의 형태로 전달되지만, 실제 효과는 상대의 발전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앞서 다뤘던 “기분 나쁘게 듣지 마.”와 함께 사용하면 금상첨화. 상대의 정상적인 판단과 감정 모두 선수칠 수 있다.


“네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심화과정

나 스스로 이 말이 정말 상대를 위한 것이라는 최면에 걸려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주의사항

어디에나 눈치 빠른 사람들이 있다. 이는 나이나 계급의 높이와 상관없다. 그들은 ‘널 위한다.’라며 담 넘어오는 구렁이를 그냥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의 얄팍한 충고가 그 민낯을 드러낸 후에는 어떤 말로도 상대를 설득할 수 없다.    



참고

굳이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거나 상대에게 생각할 계기를 만들고 싶다면 “진심으로 얘기하는 건데.”가 더 안전한 표현이다.    




< 널 위해 하는 말 >

파괴력: ★☆☆☆☆
지속성: ★★★☆☆
뻔뻔함: ★★★★★

유의어: #네생각해서하는말 #나좋자고하는말이아니야
연관어: #기분나쁘게듣지마 #이말까진안하려고했는데 #그때가제일좋을 때
대체어: #진심으로하는얘기야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후회 방지 대화 사전>,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 닮았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