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고래 Mar 01. 2021

누구 닮았어

그런 말을 들을 만해


살면서 들었던 닮은꼴이 세 명 있다. 한 명은 개그맨, 한 명은 영화배우, 한 명은 정치인이다. 중간에 배우가 껴 있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옆에 있는 개그맨과 거의 같은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여하튼 들었을 때 손뼉 치며 좋아할 만큼 윤기 나는 사람들은 아니다. 당사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감정은 둘로 나뉜다. 첫째는 즐거움. 나로 인해 밝아지는 주변 분위기, 그렇게 누군가에게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는 점에서 내 기분도 어느 정도 고양된다. 다른 하나는 불쾌감이다. 두 감정은 결국 웃음을 주느냐 웃음거리가 되느냐의 차이인데, 그 경계를 능숙하게 오가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가령 닮았다는 말은 즐겁게 웃어넘겼는데 1절로 끝내지 못하고 집요하게 이유를 설명하거나(결론은 그냥 못생겼다는 거잖아...) 낯선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내 닮은꼴을 소재로 분위기를 전환시킬 때는 두 번째 감정이 더 크게 찾아오곤 한다.


둘 중 어떤 감정이든 당시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웃는 얼굴을 앞세우곤 한다. 상대는 내 속마음을 알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딴에는 나의 닮은꼴을 찾아낸 게 뿌듯해서인지 적당한 시점에 멈추지 못하고 어색한 공기가 흐를 때까지 우려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닮았다는 말은 단순히 ‘생김새가 낫다/못하다’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구 닮았어:
① 당신은 그것을 닮았다는 말을 듣기에 마땅하다.


이 표현에는 상대방이 그 대상과 비교되는 일이 문제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예컨대 누군가의 닮은꼴로 히틀러나 골룸, 연쇄 살인마가 떠오른다면 입 밖으로 꺼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비교 자체가 상대에 대한 모욕이란 걸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언급을 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닮은꼴로 대조되기에 무리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기준은 말을 뱉는 사람이 정한다.


따라서 ‘닮았다’라는 말은 그 대상이 멋있거나 예쁘다고 늘 듣기 좋은 게 아니다(들어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를테면 장동건의 눈을 떠올리며 닮았다 하더라도 평소 자신의 부리부리한 코가 싫었던 상대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김고은의 단아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닮았다는 의미에 상대는 평소 불만이었던 외꺼풀을 떠올릴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썩 닮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하면 이 사람이 내 얼굴을 두고 아무 말이나 하나 싶어 성의 없음을 느낄 것이요, 닮았다 한들 내가 그들보다 빼어나긴 쉽지 않으니 보급형 장동건, 10미터 앞 김고은 정도의 언짢은 수식만 얻을 것이 아닌가. 심지어 닮은꼴이 불미스러운 일에라도 휘말리면 은근히 내 일처럼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예문

“진수 씨 말이야. 말린 피망 닮은 것 같지 않아요?”

(주변 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어? 진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이 표현은 당사자보다 주변 사람들이 대화의 주체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누군가의 동의를 구하는 톤의 말들이 같이 사용되곤 한다. 이에 능숙한 자들은 닮은꼴로 사람이 아닌 특정 상태의 사물을 활용하는 창의력을 보여준다.


“네? 제가요…? 어떤 부분이요?”

“그냥 딱 보면 닮았어. ㅋㅋ”


닮은 이유에 대해 공유하지 않는 것도 꽤나 큰 파괴력을 갖는다.





심화과정

“지현 씨랑 진수 씨는 참 많이 닮은 것 같아.”


지근거리에 있는 두 대상을 닮았다고 하면 일타쌍피의 효과가 있다. 이는 막연히 먼 곳에 있는 연예인이나 특정 사물에 비교됐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들게 한다. 아마 두 사람은 서로의 심경을 드러내는 것이 조심스러워, “아, 그래요?, 정말?, 그런가?” 정도의 중의적인 표현을 하며 상황을 해소하려 할 것이다. 호탕한 성격이라면 “뭐야, 왜 기분 나빠하는데?”라며 웃어 넘기기도 할 것이며, 어떤 점이 닮았느냐며 따로 물어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공통점은 이들 모두 가슴속 어딘가에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뭐? 내가 말린 피망 녀석이랑 닮았다고?



참고

닮았다는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이든, 그 경험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일종의 위협감을 느낄 수 있다. 비교되는 대상 때문이 아니라 ‘닮았다’라는 말 자체의 함의 때문이다.


누구 닮았어:
② 당신은 고유하지 않다.


완전히 같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그렇게 남과 구분되는 고유함을 ‘정체성’이라고 부른다. 정체성은 ‘스스로를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며, 그 범위에 제한이 없다. 자신을 고유한 존재로 구분하는 근본이 된다.


정체성은 흔히 알고 있는 ‘성격유형’과 다르다. 성격유형은 ‘다양한 상황에서 일관성 있게 드러내는 행동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후 관계는 이렇다. 내가 스스로 정의한 정체성에 따라 특정 상황에서의 행동을 선택하고, 그런 행동들의 합을 통해 타인이 내 성격을 이해한다. 성격은 고유한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 일반화한 정보일 뿐이다.


누군가를 닮았다는 말도 일반화의 과정이다. 눈, 코, 입, 얼굴형, 분위기 등 화자가 좀 더 왜곡하여 바라보는 관점에서 그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화된 기준을 통해 다른 존재와 비교당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개인의 정체성을 침범당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엄친아와 세포 단위로 비교당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쉽다).



도플갱어를 마주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속설도 이에 해당한다. 완벽히 같은 존재를 마주친다면 자신만의 고유성을 확신할 수 없어져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마치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과 유사하다.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일 뿐.


그러니 누군가에게 닮았다는 말을 하려거든 그 사람의 가장 소중한 존재, 때에 따라서는 가족보다 더 귀한 사람에 대해 내 일반화된 기준을 들이대는 시도라는 걸 잊지 말자.



< 누구 닮았어 >

파괴력: ★★☆☆☆
지속성: ★★☆☆☆
습관성: ★★☆☆☆

유의어: #그런말자주듣지않아요? #어디서자주본얼굴인데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