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생각은 포기한다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피곤해서 조용히 오고 싶었는데 음악 소리가 커서 조절해달라고 했다. 줄이는 시늉만 하더니 음악을 끄고 라디오를 켠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누굴 죽여야 하니 살려야 하니 하면서 자신의 정치색을 과감히 드러내고는 “그렇지 않아요?”라면서 자꾸 동의를 구한다. 차에 찌든 담배 냄새 때문에 가뜩이나 속이 울렁거렸는데 쉬지 않고 걸어대는 말소리를 듣고 있자니 갑갑하고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던 차에 낯선 길목으로 들어선다. 늘 다니던 길이기에 그것이 더 돌아가는 선택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따져 물었고 기사는 당당했다. 신고하려면 하라고, 자신은 가야 하니 영업 방해하지 말라고. 결국 평소보다 더 많은 택시비를 지불하고 보내야 했다.
“뭐 그런 택시기사가 다 있죠. 진짜.”
다음 날 동료 직원에게 내가 겪었던 거지 같은 일을 토로했다. 사건 당시에 상대에게 뱉지 못했던 말까지 더해 쏟아낸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내 말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정말 안 좋은 택시기사를 만난 것 같다며 운이 없었다는 듯 말했다. 빈정이 상해 좀 더 세게 입장을 드러냈다.
“택시기사가 다 거기서 거기죠 뭐. 비매너 운전에… 손님도 골라 태우지 않나. 예의도 없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후, 그의 아버지가 택시기사라는 것을 알았다.
성격, 혈액형, 정치성향, 인생관, 업무 스타일, 연애 방식 등 이곳과 저곳, 저쪽과 이쪽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은 참 많다. 뭔가를 구분 짓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차이를 알 수 있고 차이를 알아야 그 차이들로 구성된 전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책임감’이라는 개념의 구분이 없었다면 조별과제를 혼자 완수한 사람에게 우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당신 호구야.
따라서 어떤 집단이나 현상에 대해 관찰하고 해석하는 것, 나만의 시각을 갖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수 없다. 그 시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도 마찬가지.
다만 ‘거기서 거기’라는 말에는 다른 태도가 가미되어 있다.
다 거기서 거기:
① 대략 이 정도 생각으로 퉁칠 거야. 더 따져보기 귀찮으니 설득할 생각일랑 말 것.
이 표현의 역할은 특정 집단에 대한 내 생각을 공유하기보다는 그 집단에 대한 더 이상의 생각을 포기했다고 선언하는 것에 가깝다. 사소하게는 소개팅 때 입을 옷에 대한 선택부터 인생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까지, 이 표현을 즐기는 이에게 얻을 수 있는 답변은 없다. 오히려 이견을 더하는 것 자체가 링 밖으로 나가버린 선수에게 도전하는 느낌을 줄 뿐이다. 사활을 건 승부를 할 게 아닌 이상 굳이 그런 이를 붙잡고 스파링 자세를 취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말을 뱉어내려면 사실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특정 집단에 여지라고는 없는 낙인을 씌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 상대의 뒷목을 굳게 만드는 추가 효과가 있다.
다 거기서 거기:
② 당신을 비롯한 주변인이 이 집단에 해당하는지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그 집단에는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는 상대가 속할 수 있고, 그의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도 속할지도 모른다. 특정 성별이든, 종교든, 직업이든, 심지어 누가 봐도 말이 안 통할 것 같아 보이는 집단 조차 내 말을 듣고 있는 사람에겐 평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을 뱉으려거든 그 후폭풍쯤은 신경 쓰지 않는 대인배가 돼야 한다.
“김대리 일 진짜 못하지 않아요?”
“그러게요. 좀 답답하긴 해요.”
“김대리 OO대학교 졸업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맞아요.”
“하여간 OO대학교 출신 중에 정상을 못 봤다니까?”
‘(내 동생 그 대학 나왔는데….)’
1. “에휴, 내가 여직원 뽑지 말자고 했지.”
2. “남자가 이런 거 하나 못해요?”
3. “넌 못생겼는데 왜 성격도 그 모양이야?”
4. “연예인이나 쫓아다니니까 네 인생이 그 모양이지.”
5. “내가 검은색 대형 세단 끄는 사람 치고 정상을 못 봤다.”
‘다 거기서 거기’는 특정 집단에 대한 태도를 담고 있는 말이다. “◯◯이 다 그렇지 뭐.”와 결이 같다. 따라서 그 판단을 기준으로 특정인을 꼬집으면 그 독성의 풍미가 더 살아난다. 독을 맞은 상대는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와 불쾌감을 참아야겠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 표현은 그 영향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대인배의 면모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 영향이 실존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당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를 욕보일 수 있고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돌아온다.
“하여간 OO대학교 나온 인간 중에 정상을 못 봤다니까?”
‘(내 동생 그 대학 나왔는데….)’
“자, 그래서 네 동생 분은 언제 소개시켜 주실 거예요? ㅎ”
따지고 보면 내가 겪었던 대부분의 택시기사들은 그날 같지 않았다. 목적지를 묻곤 조용히 이동하며, 지불이 끝나면 인사를 한다. 깔끔하다. 그럼에도 당시의 경험이 택시기사 전반의 모습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부정적인 경험이 기억에 더 잘 남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악용하는 사례도 매우 많다. 이를테면 ‘묻지마 폭력 사건의 범인. 하루에 세 시간 이상 폭력성 게임 즐겨…’와 같은 기사 제목처럼 말이다. 그 한 줄의 문장으로 인해 건강하게 게임을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폭력’과 연합된다.
어떤 현상이나 집단에 대한 말을 풀어낼 때는 “내 경험으로는”으로 범위를 좁혀보는 게 어떨까. 직접 보고 겪은 일들 위주로 말을 뱉다 보면 그토록 쉽게 일으키던 ‘일반화의 오류’가 퍽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만약 나쁜 택시 사건을 겪은 다음 날 ‘거기서 거기’라는 말 대신 이 표현을 택했다면, 동료 직원은 자신의 아버지 얘길 꺼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대화로 기억되었을지도.
< 다 거기서 거기 >
파괴력: ★★☆☆☆
지속성: ★☆☆☆☆
습관성: ★★★★☆
유의어: #딱보면알지 #다똑같아 #안봐도비디오
연관어: #지나가는사람들한테다물어봐
반의어: #내경험으로는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후회 방지 대화 사전>,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