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아냐고? 딱 봤으니까.
“화났다, 화났어.”
“제가요?”
“딱 보면 알아요. 화 좀 날 수도 있지~. 괜찮아요.”
딱 보았다니, 도대체 어딜 어떻게 딱 보고 알았다는 것일까. 마치 또라이 불변의 법칙처럼 ‘심리학자 불변의 법칙’도 존재한다. 이 전문가들 역시 특정 그룹에 한 명 이상 존재하는데, 자신만의 노하우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변의 상대가 어떤 형태의 사람인지 재빠르게 구분한다. 참 쉽다.
“요즘 좀 무기력하네요. 새로 지원하게 된 업무도 너무 많고. 밤에 잠도 안 오고….”
“수영씨 우울증 초기 증상이네.”
“네? 아... 우울해서 그런 거였나.”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무겁지 않아?”
“어? 네. 어떻게 아셨어요? (당연한 얘기를….)”
“딱 보면 알지. 내가 우울증 걸린 사람 많이 봤거든.”
판단도 쉽게 하지만 대화하는 패턴은 더 간단하다. 상대에 대해 귀신 같이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며 묻지도 않은 것들에 대해 답변을 한다. 특히 심리학, 사주팔자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수록 진단은 빠르고 날카롭다.
‘딱 보면 알아.’는 일종의 화두와도 같아서 그 말의 꼬리를 물다가는 더 큰 수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 이게 우울증 초기 증상이에요? 막 우울한 느낌은 아닌데.”
“수영 씨가 먼 미래보다는 당장 주어진 상황에만 신경 쓰는 성향이라 모를 수도 있어. 꽤 오래됐지?”
“꽤 된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제가 그런 성향이에요?”
“딱 보면 안다니까. 좋은 성향이야. 그런데 우울증은 조심해야 돼.”
타인의 과거나 현재에 대해 딱! 보고 맞추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누구나 과거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경험 한번쯤 있을 것이고, 현재의 상태에 대해서도 보이는 것 위주로 떠들다 보면 소위 때려 맞는 게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뻔뻔함만 받쳐준다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분야 최고봉인 ‘점쟁이 레벨’에 도달한 이들은 누군가의 미래에 대한 예언도 서슴지 않는다.
“김 대리님 팀장 진급한다며?”
“그렇다더라.”
“근데~흠… 김 대리님은 관리자 성향은 아니야.”
“그래? 나는 잘하실 것 같은데.”
“네버! 높이 갈 수 있는 스타일이 아냐. 결단력도 없고, 좀 센 언니 느낌도 없고.”
“재무팀 박 부장님도 센 느낌은 아닌데….”
“그치. 그래서 아마 오래 못 버틸 거야. 딱 보면 알아.”
“….”
고백하건대 나 역시 타인을 관찰한 후 나만의 카테고리에 박제하는 버릇이 있었다. 꽤 적중률이 높다고 생각했고, 이는 그들과의 대화에서도 높은 이점으로 작용했다. 분류가 빠른 만큼 상대의 입장에서 대화를 풀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사람을 관찰하는 게 즐거웠던지라 심리학 주변을 기웃거렸다. 사람을 크게 잘게 분리하는 게 심리학이었다. 전공이 결정됐다.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는 말이 있는데, 심리학에서는 다르다. 조금 각색하자면, 대학교까지는 어린이고 대학원부터 학생의 신분이 생긴다. 그전까지 배운 것이 글자라면 문장을 구성하는 건 대학원에서 진행하는 탓이다. 배운 것들을 토대로 의미 있는 문장을 만들고 그것을 철저히 증명하는 시간을 겪는다.
대학원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십수 년간 연구를 해온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는데, 그곳에 재미있는 패턴이 하나 있다. 초보 연구자일수록 당시의 나처럼 관찰하는 시선이 드러나고 판단 결과도 쉽게 꺼내 보였다. ‘딱 보면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오래된 연구자들은 말을 아꼈다. 특히나 사람에 대한 평가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는데, 긴 시간의 연구를 통해 자신의 확고한 판단이 박살나는 사건을 수없이 겪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가 알던 정답을 꺼냈다가 부끄러운 순간을 자주 만났다. 결국 그곳에서의 시간을 통해 얻게 된 진리는 하나다. 딱 보고 아는 건 쉽지만, 제대로 아는 건 어렵다.
“내 앞에서 거짓말할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거짓말했다간 나의 섬세한 탐지기에 딱 걸릴 거라는 의미다. 이들은 ‘완벽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거짓말을 탐지하는 데에 능하다.’는 연구결과를 알고 있을까.
마찬가지로, 딱 보면 안다는 말도 결국 낯선 현상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드러낸다. 딱 보고 딱 거기까지만 판단했던 시간들, 그렇게 가볍고 익숙한 구분으로 세상을 보려는 자신을 대변하는 것이다. 상대의 구체적인 상황은 기존의 분류 체계를 깨뜨리는 정보가 될 뿐. 나는 점점 더 그 작은 틀에서 나오기 어려워진다.
→ 딱 봐서 알 수 있는 건 딱 보이는 것들뿐이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 딱 보면 알아 >
파괴력: ★★★☆☆
지속성: ★★★☆☆
예지력: ☆☆☆☆☆
유의어: #내눈은못속여 #너같은애들이
연관어: #내가뭐랬어 #아니면말고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후회 방지 대화 사전>,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