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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겠어?

네 안에 답 있다

by 왕고래


“제가 잘하고 있는 걸까요?”


새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상사에게 물었다. 프로젝트가 클라이맥스로 향하며 뜨거운 엔진을 재차 가열시키고 있었고, 나는 이것이 제대로 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칭찬 욕구가 꿈틀거린 것도 사실이다. 그는 뭔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순간 멍해졌다. 긍정적인 의미를 두른 말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실제로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하여 따뜻한 저녁을 대접해준 건 감사했다. 그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이 아닌 것도 알겠다. 하지만 그 상황을 통해 유추하는 건 질문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고로 내 질문을 그대로 돌려주는 건 나에게 의미 있는 답변이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단순히 '잘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 질문한 게 아니었다. 만약 잘된 부분이 있다면 그에 대한 업무적 효능감을 확보하여 더 발전시키고 싶었다. 프로젝트의 현상황이 과거의 그것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면에서 넘치거나 부족한지도 파악하여 보완하고 싶었다. 더 묻지는 않았다. 그의 답변에서 이 질문의 주제를 지속하고 싶지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질문의 사전적 정의는 ‘알고자 하는 바를 얻기 위한 물음’이다. 당연하게도 알고자 하려는 의도에는 ‘내가 모르기 때문에’라는 전제가 내포된다. 따라서 질문을 그대로 되돌리는 식의 답변에서는 질문자가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그럼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왜 그랬겠어?’라는 식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질문자가 천천히 다시 생각하면 스스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해서다. 과연 그렇게 들릴까.


왜 그랬겠어?:
① 이 정도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지.
② 내가 그런 것까지 설명해야 돼?


이런 표현은 그 대화가 결론적으로 답변을 찾게 되는 것과는 별개의 의미를 전한다. 질문 자체의 가치가 낮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어서다. 어떤 의도로 질문을 되돌려줬든, 상대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를 먼저 체감할 것이고, 그것을 질문해야 했던 자신의 무능함을 돌아보게 된다.



예문

"팀장님, 프로젝트 문서에서 계약서가 빠져있는데 괜찮을까요?"

"왜 그렇겠어요?"

"네? 아... 넵,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


이 표현은 가까운 사이보다는 회사, 특히 경직된 조직에서 사용될 때 그 효력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뱉는 입장에선 단 몇 마디로 질문도 해결하고 슬쩍 화풀이도 하니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심화과정

"팀장님, 프로젝트 문서에서 계약서가 빠져있는데 괜찮을까요?"

"괜찮으니까 빠져있겠죠?"

"아 넵, 혹시 따로 관리해야 해서일까요...?"

"(한숨 쉬며) 당연히 그렇겠죠~?"

"아, 넵...!"


상대가 미리 판단하지 못한 것을 꼬집는 과정에서도 이 표현이 사용되곤 한다. 물론 질문 자체에 답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당신이 스트레스와 불안 속에서 시험공부를 해본 적이 있다면 “지문에 답이 다 있다”는 말이 얼마나 약을 올리는지 잘 알 것이다.


바로 그 지문에서 답이 안 보이는 거라고...!



주의사항 I

질문이 경직된 관계는 그 자체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소한 질문으로 해결되었을 문제가 수면 아래로 흘러가다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가서 '왜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판단하냐'고 남 탓해봐야 소용없다. 오히려 그 원망은 상대방이 저마다의 크고 작은 폭탄을 더 깊숙한 곳에 숨기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 뿐이다. 백날 '뭐든 질문하라'고 선언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으랴. 질문 자체가 편치 않은데.



주의사항 II

당신의 머리에 있는 것을 답변으로 돌려주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것을 상대방의 언어로 전환하는 과정이 까다롭거나 귀찮기 때문이다. 따라서 '왜 그랬겠냐'는 말에는 당신에서 비롯된 그 어떤 힌트도 없다. 만약 그런 식의 말을 들은 이들 중 스스로 답을 깨닫는 이가 있더라도 당신이 뭔가 계기를 제공한 것처럼 으스대거나 '거봐, 생각할 수 있잖아'라는 식으로 목에 힘주지 않길 바란다. 당신이 건넨 건 질문에 대한 거절뿐이다. 그것으로 쌓을 수 있는 덕은 없다.



참고

나이를 먹을수록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하려는 태도가 생긴다. 잘못하다간 엉성한 말들만 늘어놓다가 내가 가진 밑천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왜 그랬겠어?:
③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네가 한 번 답해봐.


그래서인지 오래도록 다뤄온 상황과 익숙해진 용어들로 얘기하는 게 편하다. 난해한 질문을 거르게 되고, 어느덧 묻지 않은 것들만을 얘기한다. 마침내 불통의 아이콘이 완성되는 셈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의 질문에 의미 있는 답변과 혜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새로운 지식과 문화에 대한 수용을 아끼지 않길 바란다. 많이 알아야 좋은 답변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태도가 몸에 배어있을 때 비로소 누군가의 질문을 위협이 아닌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값진 답변을 위해 그 질문부터 제대로 파악하려는, 첫 번째 태도가 완성되는 셈이다.



< 왜 그랬겠어? >

파괴력: ★★☆☆☆
지속성: ★★★☆☆
회피성: ★★★★☆

유의어: #그랬으니이랬겠지? #몰라서물어? #당연한거아냐?
연관어: #네가몰라서그래 #뭔소리야? #생각이있니없니
대체어: #그이유는 #내가알기로는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후회 방지 대화 사전>,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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