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을 주면 찰떡을 달라고
박 부장이 씩씩거리며 무언가 얘기하다가 분에 못 이겨 직원들을 야무지게 볶는다. 그 말미에 기침하듯 한마디 보탠다.
“아니, 내 말이 어려워?”
그는 왜 저렇게 말했을까? 왜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누군가에게 생각을 전달한다는 건 예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유창한 연사처럼 하려던 말의 목적지를 알고 필요한 지점을 꾹꾹 짚으면서 가고 싶지만, 현실에선 떠오르는 것부터 말해버린 후 덕지덕지 살을 붙이게 된다. 내용은 간단한데 사족으로 9할을 채울 때도 있다. 그나마도 말의 앞뒤가 같으면 다행이다. 시작은 ‘아’로 했는데 끝이 ‘어’를 향해 가고 있는 걸 알아챌 때면 귓전에 열감이 찾아오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 듣고 있는 사람들의 미간에 그늘이 드리울 때쯤,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생각이 찾아온다. 내가 뭔가 잘못 말하고 있는 건가.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표현을 익혀두면 말솜씨의 문제는 더 이상 당신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말이 어려워?:
① 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정도 말은 알아듣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너는 내 말에 집중을 안 했거나, 수준이 낮아서 이해를 못하고 있어.
이 표현은 대화의 화자와 청자 간 미묘한 불협화음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최적의 형태로 정보를 전달했고, 그것을 흡수하지 못한 건 그의 문제가 되는 셈이다. 다시 잘 설명하려고 노력할 필요성도 사라지니, 앞 단원의 ‘이해했어?’에 비해 여러모로 경제적이기도 하다.
간혹 자신의 설명이 미흡한 건 아닌지 묻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뉘앙스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다. 질문에 포함된 ‘내 말’이라는 단어로 인해 나의 노고와 상대방의 태도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이해 수준에 대한 책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부분을 변경해야 하는데 그건 전체적인 구조가 바뀌는 거니까 여기서부터 잘해야 하는 건데, 여기는 아까 거기랑 연결이 되니까 신경을 써서 해야 하는 건데, 사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이 부분을 음….”
“아… 넵.”
“흠, 아, 이 부분을 위계화해서 저기, 그, 데이터베이스에 포함을 시켜야 하는데, 아 다시 다시. 그러니까 이 부분을 변경을 해야 돼요. 그러면 저기 처음부터 있는 정보에 영향을 주는 거고, 그렇다는 건, 음, 제 말이 어려워요?”
“네…?”
이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선배가 있다. 말이 길어지면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시작하거나 고쳐 말하는 걸 반복하다가 불현듯 어렵냐고 묻는 것이다. 누구 때문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순간 얼굴은 성이 나 있다. 위 예문처럼 그가 후배 직원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 바로 그렇다.
그래도 그 선배는 착한 사람이었다. 상대방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 표현을 아주 간편한 방아쇠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말에 담는 의미는 선배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내 말이 어려워?
② 왜? 못 받아들이겠어? 그냥 받아들여.
내 주장의 뒷받침이 미약하거나 상대가 그것을 수용할 생각이 없어 보일 때 이 표현으로 경제적인 해결을 하는 것이다. 발아래로 줄넘기 줄 넘기듯 가볍게 반복.
“내 말이 어려워?”
“네? 아닙니다.”
“그런데 왜 퇴근을 하려고 해. 내가 아직 있잖아. 내 말이 어려워?”
“아, 그게 제가 오전에 말씀드렸듯이 오늘 그….”
“아니, 내 말이 어렵냐고.”
“네…? 아닙니다.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이해는 했는데요. 제가 오늘 부모님….”
“은정 씨, 내 말이 어려워??”
“아닙니다. 네, 이해했습니다.”
“일해~? 알았지?”
“넵.”
숙련된 사용자는 이래도 짜증나고 저래도 귀찮을 때 상위호환 표현을 활용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일명
개떡찰떡 권법.
“김대리, 저기 선반에 파일 좀 갖고 와.”
“네. 아… 파일이 빨간색 말씀하시는 건지….”
“아 그거, 거기 그거 갖고 와.”
“아 네네. 그, 여기 파일이 세 개가 있는데, 다 갖고 갈까요?”
“하, 내 말이 어려워? 갖고 와 그냥!”
“아 넵, 세 개 모두 갖고 가겠습니다.”
“답답하네! 파란 거 파란 거!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 어디서 저런 게 들어왔어.”
“아 넵…!”
사실 개떡같이 말하면 개떡같이 들린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듣는 입장에서 여간 약이 오르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난 후 ‘찰떡은 개나 주라’며 달려드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땐 후회해도 늦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각을 적는 것만으로도 관련 스트레스가 줄어든다고 한다. 생각을 정리하면서 나에게 불편했던 부분들도 차곡차곡 직면하는 의미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머릿속에서 막연하게 생각을 뭉쳐 굴릴 때 일어나던 정신적 선회에서 벗어나 그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할 말에 대해 간단한 키워드만이라도 미리 적어둔다면 내 말이 어렵냐고 묻게 될 확률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전하려던 내용이 고삐를 풀고 막다른 길로 달려갈 때가 있다고 느껴진다면 ‘나’라는 주체를 빼고 어려운 점에 대한 유무만 확인하는 게 적절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 내 말이 어려워? >
파괴력: ★★☆☆☆
지속성: ★☆☆☆☆
뇌정지: ★★★★☆
유의어: #그래안그래나만그래? #이게어려워?
연관어: #다들알다시피 #상식적으로
대체어: #어려운부분있어? #다시설명해줄까?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후회 방지 대화 사전>,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