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아프니까 청춘
“좋을 때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 표현을 자꾸 뱉게 된다. 지나고 보니 대부분의 경험이 필요했고 좋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순간도,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었던 시간들도, 지나고 보니 망울망울 그 끝이 뭉툭하게 보이다가는 이내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그 기회를 쿨하게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관절에서 소리도 안 나고 갑자기 뛰어도 생각보다 오래 달릴 수 있었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하면 꽤 짓궂은 장난들도 그 자체로 웃음이 될 수 있었던 시간들. 하루는 어떤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멈추지 못하고 밤새 봤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거의 잠을 안 잤는데도 그 길로 나가서 친구를 만났다. 지금은 바깥 공기에 밤바람만 살짝 섞여도 눈꺼풀이 묵직해진다나.
이토록 그리운 시절이기에, 이따금 그 시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희로애락을 보며 말한다. 좋을 때라고. 혹자는 뭔가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것 같은 온화한 표정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뿌리는 부러움이다. 나는 서둘러 사용해버린 젊음을 아직 갖고 있는 자에게 털어놓는 게다.
좋을 때다:
① 그 시절이 그리워. 그래서 네가 부러워.
부럽다는 속내의 말은 듣는 이의 상황에 따라서도 달리 해석될 수 있다. 관절의 비명이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서, 지인의 창업을 돕기 위해 수개월간 알바생으로 지낸 적이 있다. 작은 카페였는데, 모든 시작이 그렇듯 이런저런 시도들로 부딪치고 깨지면서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늘기 시작하더니 하나둘 테이블이 메워졌다. 손익분기점을 처음 돌파했던 어느 날, 카페 사장이 주변 지인들을 초대했다. 카페의 성업을 축하하는 자리였고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이 와서 함께 기뻐해줬다.
그중 50대 남성이 있었는데, 행복감에 젖어 어쩔 줄 모르는 우리를 보며 좋을 때라고 하더라. 당시 20대였던 나는 그의 말에 담긴 그리움과 부러움의 의미를 알아챌 수 없었다. 그저 내가 만끽하는 이 행복한 경험이 곧 끝날 거라고 예견하는 것 같았다.
좋을 때다:
② 그 좋은 시간도 언젠간 끝날 거야.
장황하게 지난 일을 터놓은 이유는 이 말이 만드는 오해를 펼쳐 놓기 위해서다. 만약 당신보다 젊은 누군가가 좋은 일을 겪고 있을 때 이 말을 하면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그의 행복감에 ‘아마 머지않아 끝날 걸?’이라며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될 수 있다. 내포된 본연의 의미는 시간이 흘러 당신에 준하는 그리움이 생겨야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시간이 흐른 후 그 남성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대의 내가 그 말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앞의 사례처럼 누군가의 좋은 소식 뒤에 이 표현을 사용하는 건 그나마 양반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에게도 이 말을 하는 고수들이 있다. 그 고난과 역경들도 다 좋은 시절의 한 장면이 될 거라는 의미다. 글쎄, 과연 그렇게 들릴까.
좋을 때다:
③ 다들 겪은 일이야. 너도 당해봐.
다시 말하지만 아직 당신의 현재에 도달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좋을 때’라는 말은 본연의 의미를 전할 수 없다. 심지어 그 말을 뱉으며 떠올리는 내 시절의 고난들, 종류도 크기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며 각종 ‘뽀샵’과 영상 효과가 잔뜩 생겨버린 그 전설은 당신 앞에 있는 상대가 겪고 있는 고난과는 전혀 다르다.
축하가 필요한 상황엔 축하를, 위로가 필요한 상황엔 위로를. 쉽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하면 된다. 쉽다.
‘내가 네 나이가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천천히 다시 생각해보자. 돌아갈 수 없기에 값지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이 삶을 두고 돌아갈 수 있는가.
< 좋을 때다 >
파괴력: ★☆☆☆☆
지속성: ★☆☆☆☆
거리감: ★★★★☆
유의어: #그땐다그래 #아프니까청춘 #그때라도즐겨
연관어: #나때는 #언젠간알게될거야
대체어: #축하해 #대단하다 #응원할게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후회 방지 대화 사전>,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