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고래 Jun 16. 2020

MBTI 성격유형? 믿지 마!


예능 프로 <놀면 뭐하니> 버들의 성격알아보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비 씨가 '에서도 메신저로 자주 의견을 공유하'의욕을 보이자 유재석 씨는 "나는 규칙이나 간섭에 묶이는 걸 싫어한다니까?", "누가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에 쉽게 상처 받으니까 주의해줘."라며 검사 결과를 재치 있게 인용죠.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내가 어떤 성격에 해당하는지 궁금지는 것 같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검사를 해보곤 주변의 누군가 궁금해져 검사를 추천니다. 각자의 결과를 공유하며 비교합니다.


이처럼 '성격유형'은 꽤 오랜 시간 나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주요한 척도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최근 식물이나 유명인사 등과 결합하는 등, 내 성격을 재밌게 알아볼 수 있는 심리테스트들도 유행하곤 했는데요. 


심리학이라는 재밌(어 보이지만 들어갈수록 고집만 세고 재미도 감동도 없)는 학문과 함께 흘러온 저로써는, 어떤 형태로든 중이 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들이 반갑습니다. 다만 심리학이란 게 어떻게 다루는 가에 따라 득과 실이 있는 것 같아요. 잘 이해하고 사용할 때 의미 있는 정보가 되는 셈이죠.


그래서 오늘은 최근 관심이 증가한 성격유형 검사의 빈틈을 다루며 그 균형을 좀 맞춰보려 합니다. 

성격유형 검사, 100% 신뢰해도 되는 걸까요?





내 성격 유형은 어떻게 결정될까


공인된 성격유형 검사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외에도 DISC, 애니어그램 등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이러한 검사들은 개인, 기업, 학교는 물론 정신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기관에서도 개인을 판단하는 척도로서 효과적으로 활용되곤 하죠.


검사를 통해 한 개인의 성격유형을 결정하는 방식은 대략 이렇습니다. 인간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각각 2차원으로 구성합니다. 예컨대 검사를 통해 '짜장면/짬뽕', '부먹/찍먹', '맥주/소주'와 같은 요소들을 어느 한쪽만 선택게 되는 것이죠.


선택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다양한 문항에 대한 답변을 통해 내가 좀 더 일관적으로 반응하는 쪽으로 결정이 됩니다.


빨간색보다는 검은색이 좋다, 매운맛보다는 단맛이 좋다, 국물 요리보다는 볶음 요리가 좋다, 셰프라는 말보다 요리사라는 말에 끌린다, 5분 안에 식사를 끝내는 편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

* 물론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일관성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걸러내기 위한 여러 문항들도 포함되곤 하죠.


결과는 점수로 산출됩니다. 이 점수의 크기에 따라 하나의 요소가 결정돼요. (산출하는 방식은 감사마다 다르지만) 0점이 구분 경계라고 했을 때, 결과 점수가 -100점이면 짜장면, 100점이면 짬뽕인 셈입니다. 마찬가지로 -1점이어도 짜장면, 1점이어도 짬뽕입니다. 99점과 1점도 똑같이 짬뽕 결과로 받게됩니다. (그래서 검사 결과를 보면 내가 특정 성격 차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점수와 함께 알려주곤 하죠. 짬뽕 56점.)


이렇게 한쪽으로 선택된 요소들의 조합이 곧 나의 검사 결과인 '유형' 정보가 됩니다. 예를 들어 '짜장면/찍먹/소주'가 저의 유형이 될 수 있어요. 검사 결과에는 대략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당신은 평소 짜장면을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못하며, 탕수육 소스를 붓고 있는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힘든 일을 겪으면 마음 맞는 사람들과 소주를 마시곤 합니다.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며 소주를 마실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어울리는 이성 형: 소스에 대한 가치관과 주종은 같지만 칼칼한 국물을 나눠줄 수 있'짬뽕/먹/소주' 타입!"


세상에, 어떻게 아셨죠..?


MBTI의 경우 이런 절차를 통해 선택된 성격 유형을 INFP(내향/직관/감정/인식)와 같은 알파벳으로 알려줍니다. 사실 INFP는 제 성격 유형인데 결정된 네 가지 차원을 이해하기 쉽게 퉁쳐서 얘기하면 다음과 같아요.


내향: 겉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속으로 생각하는 게 편하다
직관: 상상력이 풍부하고 나무보다는 숲을 본다.
감정: 친구와 싸우면 원인과 결과보다는 이해하고 화해하는 것에 집중한다.
인식: 청소기가 도착하면 설명서를 보지 않고 조립부터 시작한다.


참 좋은 성격이죠? (현실은, 사회성 없고 현실 감각도 없고 해결도 못하면서 일만 드럽게 많이 벌ㄹ..) 무튼 문항 수가 많아서 귀찮고 실제 결과 역시 기억하기 어려운 여러 숫자로 산출되지만 저는 매우 심플하게 그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INFP 또는 잔다르크형 성격.


이처럼 성격유형 검사의 가장 큰 장점 이해하기 쉽고 공유하기 간편하다는 것입니다.




간편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이유


MBTI 검사의 탄생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심리학자, 칼 융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순수한 내향성이나 외향성 같은 것은 없다. 그런 사람은 정신병원에 있을 것이다."


심리학자 마이클 윌못은 성격 검사들의 이론적 구조를 연구하는데요. 이러한 유형 기반 검사에 대해 "현대적이고 더 정확한 연구방법론에 따르면 이러한 유형 기반의 주장 대부분은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유형 기반 성격 프로파일이 별자리보다 더 과학적이지 않다고까지 말한 심리학자들도 있죠.


"당신은 성격은 고양입니다. 도도한데 멍청하며 사람을 잘 부립니다."


이분들이 이렇게까지 세게 하는 이유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성격의 '유형'이라는 덩어리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격은 상황, 맥락,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를 포함하여 많은 요인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의도와 달리 일생에 걸쳐 얼마든지 변할 수 있며, 특정 상황이나 경험에 따라 일시적으로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죠. 내가 검사를 받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서도 다른 성격 유형이 결과나올 수 있는 셈입니다.


, 성격은 하나의 유형에 고정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억하는 성격유형은 그것을 쉽게 구분하고 이해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단순화한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이런 얘기를 하며 제 무덤을 파는 이유는 성격유형 검사의 예측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격유형은 행동의 일관성을 나타내는 정보일 뿐 나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이 그 말 같다고요? 정체성과 성격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해가 좀 될지도 몰라요!




정체성이 성격에 미치는 영향


정체성은 '스스로를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하는가'를 의미하며, 성격에 비해 더 깊은 내면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 개인에 대한 정체성은 범위의 제한이 없으며 이야기나 서술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반면에 '성격'은 그 개인이 다양한 실제 상황에 일관성 있게 드러내는 행동들 미합니다. (그래서 성격 검사는 특정 상황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묻는 문항 등이 많죠.)


정체성과 성격의 전후 관계는 이렇습니다. 사람은 정체성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반복되는 행동의 합이 성격을 나타내는 정보가 됩니다. 즉, 성격 유형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사는 가에 따라 특정 시점이나 맥락 속의 성격결정되는 것이죠. 나를 특정한 성격 유형으로 결정한다면, 나의 정체성도 그곳에 머물게 되는 셈입니다.


정체성을 고정된 것이 아닌 유연한 형태로 유지할 필요가 있고 해. 방법은 간단합니다. 구체적인 어떤 것으로 만들 않는 것이죠. 실제로 스탠퍼드 심리학자 캐럴 듀크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에 대한 구체적인 관념을 가진 사람들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 어려웠다고 해요.


 그 얇은 관념을 깨뜨려!


반대로 지금의 나를 언제든 어디로든 변화할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면 실제로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단순히 사회적 성공이나 물리적 풍요로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내 삶이 장기적으로 원하는 형태를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해요.



인간은 스스로 완성형이라고 착각하는 진행형 작품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고정된 상태라는 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심플하고 커다란 이름표를 붙여두고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몰두하곤 하죠. 성격 유형은 이런 태도에 있어 매우 효과적인 장치입니다. 그럴듯하고, 나를 간편하게 설명하고, 더 좋거나 덜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내가 접했던 그 어떤 유형도 나를 대체할 정보는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그것을 중심부까지 꿀꺽 삼키지만 않는다면 당장 내일 바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 성격유형 안에 몸을 구겨 넣기보다는, 내가 바라는 나에 대해 생각하며 편안하게 흘러가 보세요. 필요한 은 취하고 필요 없는 건 멀리 두셔도 돼요. 중요했던 기억이라도 맘이 변한다면 놓아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 어디로든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오늘은 탕수육에 소스 잔뜩 부어서 짬뽕이랑 맥주 한 잔 해야겠습니다.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 참고 원문: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quantum-leaps/202005/dont-let-your-children-take-the-myers-briggs


매거진의 이전글 사과하지 말았어야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