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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May 04. 2020

사과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과할 필요 없는 6가지 상황

"일단 사과부터 하고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예의를 갖추면 상대방도 그럴 것이라 생각해서다. 그러나 잦은 사과에 사람들은 더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자주 잘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사과를 했더니 상대는 용서 여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과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태도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지만 정작 사과를 하는 내 기분은 망치기도 합니다. 선의에서 비롯된 그것을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이용할 때 말이죠.


그럴 땐 사과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할지, 했던 사과를 철회할지, 혹은 몰라주는 상대와 갈등을 일으킬지 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이 모든 감정적 숙제는 사과를 건넨 사람의 몫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사과가 '호구들의 습관'이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어요.


글쎄요. 사과 자체를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 호의가 리가 되는 상황들 때문에 굳이 내 인격을 낮출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사과가 변색되는 상황들을 안다면 선의로 인해 마음 다치는 경험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사과할 필요 없는 상황 6가지를 소개합니다. 어떤 상황들이 있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내용이 좀 길어요. 심호흡하시고~ 출발!)



사과할 필요 없는 6가지 상황




1. 사적인 질문


"결혼하셨어요?"
"아니요."

"왜요...?"
"아... 그게, 일단 돈을 좀 모으고 28살이 되면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반드시 "미안하다"라는 말을 꺼내야만 사과가 아니라고 합니다. 어딘가 잘못한 듯한 태도도 그에 포함되죠.


 사례에서 '왜요?' 삶에 대한 나의 선택과 태도  매우 사적인 질문며, 때에 따라 결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럼에도 불구하고 설명하는 행위는 내 선택에 대해 사과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갖는다고 합니다. 사과하게 되는 이유는 내 선택과 삶이 사회적인 규범을 따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내 삶에서의 선택은 전적으로 나의 것이며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그런 설명을 하고 있을 때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살펴보세요. 불쾌감이 든다면 답변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물론 상대방에게도 큰 실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당신의 짧은 대답을 이해할 것입니다. 계속 캐묻는 사람에겐 이런 주제에 대한 거리를 벌리는 것도 방법.


"결혼하셨어요?"
"아니요."

"왜요...?"
"그러게요."

"아니, 진짜 왜요? 어째서."
"'아니요'로 충분히 대답한 것 같아요."




2. 꿈


선배: 밥은 먹고 다니냐?
후배: 네, 뭐... 어떻게 저떻게 챙겨 먹고 있어요.

선배: 에휴. 내가 살게. 많이 먹어라. 너 이 생활 얼마나 됐지? 계속해야겠어?
후배: 1년 정도 됐어요. 더 해보려고요... 이런 모습 보여서 죄송하네요.


꿈을 좇다 보면 형편이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불확실한 목표를 위해 어려운 형편을 감내하는 것이 그리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잘 갖춰진 체계 속에서 안정적으로 특정 궤도에 오른 사람들은 더 그렇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 입을 통해 묘사되는 내 현실은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내 입장과 비전을 고수하며 논쟁하기보다는 사과를 통해 이 주제의 대화를 끝내고자 합니다. 말 그대로 난 아직 꿈을 향해가는 중이며 그에게 보일만한 게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필요가 없을 때 사과를 하는 건 일종의 아첨과도 같다고 합니다. 당신은 그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주제를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상대는 오히려 당신의 확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논쟁할 만큼 이 선택을 못 믿는다'라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죠.


루도비코 부오나로티(Ludovico Buonarroti)라는 남자는 1400년대의 상류층이자 정부 관료였습니다. 그의 아들은 조금 달랐어요. 당시 하층민의 기술로 여겨졌던 진흙과 도구들에 관심을 가졌죠. 루도비코는 "내 아이 중 누구도 먹고살기 위해 손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들을 멸시하고 다그쳤습니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아들은 시간이 흐른 후 의미 없는 돌덩이를 다비드 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미켈란젤로입니다. 나 자신이 되는 것, 꿈을 갖는 것, 사회적인 통념에 비판적인 관점을 갖는 것에 있어서 누군가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3. 지식


뭔가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른다는 게 드러났을 때, 사실 민망하죠.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 사과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하는, 소위 상식의 범위는 저마다 다르며 이는 꽤나 관계 맥락적으로 결정된다고 합니다. 예컨대 평소엔 관심도 없었던 역사, 지리, 문화, 경제, 정치, 국제정서 등의 이야기도 그것을 상식으로 여기는 사람 앞에 서면 '아,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하게 되 때문이죠.


내가 특정 맥락의 상식을 모르는 것 그만큼의 관심 범주가 아니었입니다. 그것으로 나를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밉보이지 않기 위해 아는 척하는 사람일 률이 높다고 합니다.


"예전엔 외국어를 잘 못했었다.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아왔고, 나 역시 같은 상황에 있어서인지 못하는 것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 것처럼 느꼈다. 그런데 외국어를 잘하게 된 지금 입장에서 되돌아봤을 때, 다른 언어를 배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언어를 배우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따라서 그들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뭔가 실수했을 때, 나는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과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나아지려고 노력한 것에 대해 사과할 필요는 없다."




4. 부탁


사과는 예의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뭔가 부탁할 때 '죄송하지만'으로 출발하는 문장이 쓰이곤 하죠.


"죄송하지만 회의 내용을 좀 공유해주시겠어요?"


하지만 이 문장에서 사용하는 '죄송하지만'은 사과라기보다는 양해를 구하려는 관용적 표현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의미를 오해하고 지속적인 사과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효과데요. 필요한 사과는 부탁을 들어주 상대방의 선의를 마치 처럼 느끼들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부탁을 들어주는 이에게 할 말은 '미안해'가 아닌 '고마워'입니다.


"도와줘서 고마워."



5. 타인의 기대감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사과는 충돌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 감정도 상해버린다면 하지 않는 것 또한 방법이며 이런 선택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상대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 것에 대해 빚진 듯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기대는 내가 꿔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엄마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지?"

카페에서 한 엄마가 아이를 달래며 말했다. 놀랍게도 이 말에서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런 말을 자주 듣는 아이들은 엄마의 기대감을 채우기 위해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방을 치운다. 스스로의 동기를 알아채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며, 그 긴 시간 동안 마치 누군가에게 빚을 진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빚진 것이 없다.



6. 타인의 잘못


누군가 실수를 했고 상황의 모호함으로 인해 그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을 때, (실제로 잘못이 있어서가 아닌) 뭔가 해야 한다고 느끼던 사람이 먼저 사과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띵동 배달 왔습니다.)
주문자: "좀 많이 늦으셨네요."
배달원: "아 네, 골목이 좀 어렵게 되어 있어서 헤맸어요."

주문자: "허허, 죄송합니다."
배달원: "네...?"


이런 경우의 사과는 진심이 아닙니다. 내가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이는 상대방에게 사과할 필요성을 만드 수동공격적 방어(Passive-Aggressive Defense)의 수단이라고 합니다. '자, 내가 먼저 했으니 너도 해'라고 어필하는 것이죠. 상대가 알아채고 사과를 해야만 완성될 수 있는 셈입니다.


"미안합니다. (할 말 없으세요?)"


이런 태도에 대해 심리학에서는 내가 잘못한 게 없음에도 먼저 사과도록 만드는 장치나 시점이 무엇인지 찾아보길 권합니다. 가령, '문제 발생 + 책임소재 불분명 + 모든 사람들의 침묵'이라는 변수들이 있는 경우 내가 잘못에 대한 지분이나 확신이 없음에도 무심코 하게 되는 게 아닌지 따져보는 것이죠. 이후 동일한 맥락이 발생했을 때는 사과가 아닌 의견을 꺼낼 수 있습니다.


<사례 1>
멋진 선배가 있었다. 어느 날 문제가 생겼는데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상황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는 당시 상황에서의 가장 선임으로써 "제 잘못입니다. 시정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상사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다. 변명이나 군더더기 없이 상황을 해결하려고 힘썼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이후로도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사과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이는 패착이었다. 오히려 그가 지속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례 2>
평소 나는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사실 미안하지 않다. 도대체 좁은 통로나 문간에 왜 서있는 거야!!


"좀 비켜주실래요!?" / "아, 네!"


마치며 - 결국 중요한 것은


공감이 좀 되셨나요?

저 역시 습관적으로 사과를 하는 편이라서 내 얘기 같은 상황도 있는가 하면, 이런 사과도 하는구나,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진심 같아요. 진심이 결여된 사과는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것.


무심결에 습관적으로 했던 사과는 없었는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일단 뱉은 적은 없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셨길 바랍니다. 오늘부터는 사과다운 사과만 하자고요!  :)


'그래, 결심했어!'




왕고래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소심합니다. 사람에 대한 글을 씁니다. <소심해서 좋다>, <심리로 봉다방>을 썼습니다. 어릴 적, 꿈을 적는 공간에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참고: https://brightside.me/inspiration-psychology/10-times-when-you-dont-need-to-apologize-even-if-you-really-want-to-796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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