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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Sep 20. 2023

다른 존재로 사는 시간

영화가 삶에 미치는 영향


영화관에 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상영관이 불이 꺼지면서 조금 전까지 주변에 존재했던 것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고민도, 불안도, 심지어 그곳을 가득 매운 관람객들마저,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취를 감춘다. 커다란 화면 속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응시하는 나만 남는다.


그곳에서 나는 거대한 각오를 담은 사랑을 하고, 누군가의 복수를 위해 적진에 위장 침투를 한다. 무인도에서 수개월을 살기도, 어떤 자극도 없는 광활한 우주 너머를 바라보기도 한다. 죽음을 앞둔 아비를 천진난만하게 바라보는 아이가 된다. 그렇게 숭고한 희생 너머에서 눈물을 흘린다. 역경을 딛고 짜릿한 성공을 끌어안는 이를 보며, 나 역시 그 순간을 겪는 것처럼 고양된 느낌을 받는다.


수많은 영화 속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살았다. 그 경험들은 지금의 내 모습 어딘가로 남아있지 않을까.




영화의 이 같은 영향력에 대해 실험을 한 사람들이 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영화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역경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흥미로운 주제다. 어떤 연구인지 살펴봤다.


연구의 대상이 된 영화는 '삶의 의미와 자아실현을 통해 행복을 성취하는 인물을 묘사하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제리 맥과이어, 행복을 찾아서, 시스터 액트' 등이 떠오른다.) 연구를 위해 1985년 이후 시청자 평점이 높은 영화 중 A, B 그룹의 목적에 맞는 20편이 선정되었다.


A 그룹의 영화는 시청자의 평가가 '감동적인, 의미 있는, 가슴 아픈' 등의 단어로 표현되는 영화였으며, '호텔 르완다, 업, 쉰들러 리스트, 쇼생크 탈출' 등이 있었다(잘 선정되었군). B 그룹은 위와 같은 단어가 일관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영화였다. "라따뚜이, 펄프 픽션, 파이트 클럽"등이 있었다.


A, B 그룹에 배정된 연구 참가자들은 영화를 시정한 후에 '영화에 대해 느낀 점, 영화가 스스로의 가치관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이 시간이 삶의 경험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 연구 참가자는 1,098명으로 18세에서 94세까지 다양했고, A, B 두 그룹 중 하나에 무작위로 선정되어 각 그룹의 영화 목록 중 하나를 랜덤하게 배정받았다.


그 결과, A 그룹의 영화를 본 참가자가 B 그룹에 비해 '삶의 역경을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또한 '인간은 다양한 상황이나 어려움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더 높다'고 평가했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동기를 더 많이 느끼기도 했다. 실험을 위해 제한한 변수들은 있겠지만, 이 모든 차이는 한 편의 영화로 발생한 것이다.


연구진은 말했다. 기쁨과 즐거움은 물론, 슬픔과 상실까지도 우리 삶의 일부이며, 이런 다양한 요소의 공존 그 자체가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한다고. 영화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감정과 사고를 다룬다. 이를 다양한 장면과 삶을 통해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즉 인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약 두 시간의 이야기로 알게 하는 것, 그것으로 공감과 깨달음을 불러일으키는 게 영화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이 과정을 통해 누군가의 삶은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렇게 나에게 의미 있는 영화를 만나게 되는 것, 다시 만날 것으로 기대하고 사는 것 또한 삶의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최근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리더의 미션을 수행하면서 모든 팀원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경험은 메마른 황무지에 나를 던져 놓는다. 뙤약볕에 영혼의 수분이 모두 증발하고 바스락 거리는 형체만 남았다. 이름 석자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영화 한 편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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