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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린다고 말했다

by 왕고래


내릴 역에 도착했다.


열차에 사람이 유독 많다. 보통은 사람이 많아도 출구까지의 길이 있었는데,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심지어 내가 서있던 위치는 긴 좌석의 거의 가운데쯤이어서 문까지 가려면 꽤 먼 길을 뚫고 가야 했다. 고민하던 차에 문이 열렸다. 본래 사람이 많이 내리는 환승역인데 그날따라 내리는 이가 없었고, 눈앞의 그들은 통 속의 이쑤시개처럼 촘촘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문이 열렸으니 곧 닫힐 것이다. 입을 열었다.


"내릴게요. 실례합니다.”


그러자 이쑤시개들 사이로 좁다란 비밀 통로가 생겼고, 나는 오래된 숙변처럼 어렵사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예전이었으면 못 내리고 지나쳤을 것이다. 발을 잘게 동동거리다가 이내 긴 숨을 뱉으며 닫히는 문을 바라보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나 버스도 마찬가지다. 뭉친 사람을 뚫고 나가지 못했다.


당연히 이미 꽉 찬 지하철에도 밀고 들어가 타지 못했다. 버스 기사님이 내릴 역을 지나쳐도 문 앞에 그대로 서 있었던 적도 많고, 벨을 너무 미리 눌러 전 정거장에서 문이 열리면 마치 그곳이 원래 목적지인양 내린 적도 있다.



이제 이런 일들은 많이 줄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성격을 바꿨냐고 물어본다면,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그저 이런 성향으로 인한 불편을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동들을 찾아냈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의 경우, 나의 작은 행동은 내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뚫고 내리는’ 행동보다는 더 작고 쉬운 것이었으며, 크게 말하지 않아도 앞사람이 내 말을 듣고 반응하게 된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그들은 조금씩 움직이면서 더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파동을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더불어 말을 뱉음으로써 나에게도 밀고 나가는 행동의 계기가 생긴다. 내린다고 선언했으니 자연스레 그러기 위한 행동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열차에서 빠져나온 후 잠시 열려있는 문을 보았다. 통 속에는 촘촘한 그들이 있다. 누군가는 얼굴이고 누군가는 뒤통수인데, 내릴 역에 성공적으로 내린 나를 딱히 축하하는 것 같진 않았다. 어쩌면 표정이 없는 것 같기도. 얼굴과 뒤통수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저곳에서 내리지 못하고 몇 정거장을 더 갔던 내가 있다. 나는 예전보다 어른에 다가섰다.


다음에도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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