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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 Apr 14. 2016

10. Show Me Your Soul: 오페라 배틀

밤이 물드는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의 환상 즉흥곡..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는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의 골목골목은 노르스레한 가로등 불빛이 어우러져 낮과는 전혀 다른 마법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시차로 인한 약간의 피로감이 망막에 뽀샤시 필터라도 씌운 것인지, 바르셀로나의 밤공기에는 기분을 좋게 하는 몽환 가루라도 흩뿌려져 있는 건지.. 마치 이상한 나라를 헤매는 모자장수라도 된 듯 농몽하다.




나는 미국 버몬트 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아주 작은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지병으로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의 손길, 그리고 내 유년시절의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있는 가게를 도저히 처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잠시 현상만 유지할 생각으로 가게 문을 열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여자에게서 아이가 생겼다는 얘길 들었고, 그 여자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여덟 달 후 아이가 태어났고, 아버지의 베이커리는 어느덧 나의 오롯한 삶이 되었다.


매일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은 그 낡고 오래된 작은 가게에서 이루어진다. 아버지가 그러하셨듯이 밀가루를 반죽하고, 발효시키고, 구워내는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 가족과 베이커리 이외에는 다른 것들이 내 삶에 끼어들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어머니는 날 낳으시고는 아버지를 떠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홀로 핏덩이였던 나를 키우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하셨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그 노력과 정성이 보이지 않았고,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늘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나만 뭐든 부족한 것만 같아 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16살에는 지긋지긋한 촌구석에서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고 가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나 하나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 같았고, 오로지 나의 고통만 눈에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난생처음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그 눈물이 보기 싫어 억지로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지만, 학교생활에 도저히 적응을 할 수 없었다. 모두가 나를 무시하는 것만 같았고, 나는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부임하신 음악 선생님을 만났다. 참 고운 분이셨다. 음악시간에 구석에 앉아 마지못해 입만 뻥긋거리던 시늉을 하던 나를 수업이 끝난 후에 불러 세우시고는 말씀하셨다. 나를 위해 노래 한 소절만 불러봐 주지 않겠냐고. 나는 오그라드는 부끄러움 반,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반항심 반으로 끝까지 노래를 부르지 않겠노라고 버텼다.


하지만 음악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끈질기게 나를 설득하셨다. 성악을 전공하고 사랑하는 입장에서, 나의 길고 다부진 목과 성대에서 나오는 소리의 톤이 바리톤에 아주 적합할 음성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시며 딱 한 번만 노래를 들어볼 수 있겠냐고 거의 매일 간곡하게 부탁하셨다.


그리고 한 달 후,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사실 변성기가 찾아오고부터 내 목소리가 너무 낮고 울림이 심한 굵은 음성으로 바뀌는 바람에 또래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하기가 싫었다. 놀림을 당할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내 노래를 듣고 나신 음악 선생님께서는 숨은 원석을 찾아냈다며 끊임없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칭찬을 해주셨다. 그리고 매주 한두 번씩 선생님과의 성악 레슨이 시작되었다. 일단 한 달간 발성 훈련에 몰입한 후, 멜로디가 익숙한 대중적인 가곡들, 그리고 오페라 아리아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반 가량 틈틈이 연습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 선생님께서는 내가 정말 기대 이상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조심스럽게 이탈리아에 있는 국립 음악원에 지원해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을 것 같으니 본격적으로 유학을 준비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아찔한 제안을 하셨다. 순간 온몸에서 심장박동이 느껴질 정도로 격하게 두근거렸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벅찬 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아버지가 협심증으로 쓰러지셔서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하직하셨다.


그 이후로 내 삶은 아버지가 평생을 보내신 작은 베이커리에 묻히게 되었다. 갓 좋아하기 시작한 노래마저도..




와이프와 딸아이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세 가족이 함께 열흘 간의 스페인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빵이라도 제대로 구울 수 있게 되거든 가자는 핑계로 아내와의 신혼여행도 기약 없이 미뤄야 했기에, 13년을 꾹 참고 기다려준 와이프에게 미안한 마음에서라도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첫 가족여행인 셈. 이렇게 오랫동안 가게 문을 닫게 된 건 정말 아버지 가게를 이어받기로 결심한 그때 이후 처음이다. 이제 막 12살 된 딸이나, 서른 중반에 접어든 와이프나 두 달 전부터 잔뜩 들떠있기는 마찬가지다.


바르셀로나 공항 3시 도착. 공항버스로 시내까지 30분.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온 시간은 4시 반. 첫 번째 목적지인 레알 광장으로 향한다. 광장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 앉아 상그리아를 한 잔 하며 느긋하게 앉아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광장에서 공연하는 거리의 아티스트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다. 와이프와 딸은 지도를 펼쳐놓고 다음 이동 경로를 열심히 탐구하고 있다. 둘이서 두 달간 열심히 가이드북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열흘간의 일정을 빈틈없이 짜 두었기에, 이 한 몸 다 바쳐 즐겁게 따라주는 것이 내 임무. 막중한 임무에 벌써 몸이 노곤해진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광장의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한다. 말랑해진 몸을 일으켜 와이프와 딸아이의 뒤를 쫓아 고딕지구로 걸음을 옮긴다. 처음 와본 곳이지만, 이미 와본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오른쪽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어디에선가 기타 반주와 함께 여자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보통이 넘는 기교로 소화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그 소리를 따라간다. 골목을 꺾어 들어가자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나이가 지긋한 스패니쉬 기타 장인의 반주로 울림통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거리의 프리마돈나가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감상에 빠진다. 나도 멈춰 선다.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나를 홀린다. '지옥의 복수심은 내 가슴속에 끓어오르고(Der Hölle Rache Kockt in Meinem Herzen), ' 내 마음속에서도 알 수 없는 뭔가가 뭉근히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아리아가 막바지 절정으로 치닫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낸다.


거리의 프리마돈나가 잠시 반주자와 뭔가를 얘기하더니 다음 곡을 준비한다. 그리고 푸치니의 라보엠 2막에 나오는 '뮤제타의 왈츠'로 잘 알려진 '내가 혼자 거리를 걸어가면(Quando m'en vo' soletta)'이라는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한다. 익숙한 멜로디에 아득한 곳에 숨겨져 있던 심장의 떨림이 크레센도 에다니만도(crescendo ed animando)로 점점 크고 활기차게 고조되어 나의 고막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한다. 소용돌이처럼 밀려드는 과거의 꿈이 쓰나미처럼 터져나와 나를 압도한다. 묻어두었던 설렘의 편린들이 찌릿찌릿 심장을 건드리고, 난 잊은 줄로만 알었던 그 오랜 꿈을 좇으며 지긋이 눈을 감는다.


황홀한 목소리의 소유자인 그 거리의 프리마돈나가 한 소절을 끝내고 잠시 숨을 고른다. 어느덧 이 골목이 내게 주어진 무대처럼 느껴지고, 순간 과거의 추억에 한껏 젖은 내 성대가 가로등 불빛을 핀 조명 삼아 울림을 시작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13년 가까이 잊고 있었던 그 멜로디를 따라 내 몸이 반응하고 있다.


기타 장인과 거리의 프리마돈나는 나의 즉흥적인 도발에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유려한 기교로 응대한다. 그리고는 내게 손을 뻗어 다음 소절을 유도한다. 그렇게 서로 한 소절씩을 주고받기 시작하고, 어느덧 그녀와 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까지 느껴진다. 그 짜릿함에 도취된 나는 구름 위에 올라 선 기분이다.


이어서 거리의 프리마돈나는 베르디의 리골레토 3막에 나오는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 ' 대중적인 이탈리아 칸초네 민요인 '오 나의 태양(O Sole Mio)' 까지 무려 세 곡의 절반씩을 나에게 허락하고, 기교는 갈수록 농염해진다. 나 또한 그녀의 배려에 제대로 보답하고자 혼신을 다해 본다.


'오 나의 태양'의 마지막 소절의 마지막 숨까지 뱉어내고 숨을 돌린다. 주위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소리에 잠시 외출했던 정신이 돌아온다. 저 앞에 흐뭇한 미소를 띠고 서있는 거리의 프리마돈나가 내게 손짓한다. 다가가서 악수를 청하며 갑자기 껴들어 미안하다고 하자, 오히려 멋진 공연 하게 해줘 고맙다고 하고는 기타 장인을 소개한다. 간이의자에 앉아 연주하던 기타 장인이 일어나 훌륭한 공연이었다고 고마운 말을 해준다.


인사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와이프와 딸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는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고 속삭이며 양쪽에서 내 팔짱을 끼고는 다음 골목으로 나를 인도한다.


세상을 다 가진 이 기분, 참 좋다.





[에필로그]

즉흥 오페라 배틀이 펼쳐지던 고딕지구의 밤.. (Barcelona, Spain - Nov. 2015)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성악가들 중에 조수미 친구들이 있다 할 정도로 실력이 메이저급 못지않은 제야의 고수들이 많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첫날 이런 즉흥 오페라 배틀을 볼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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