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낭만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통령궁, 대성당, 플로라네스 헤네리카, 레콜레타 국립묘지, 엘 아테네오

by 마미의 세상

정열적인 춤 탱고와 축구가 떠오르는 아르헨티나는 1810 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지방과 도시 세력의 갈등으로 내전을 겪다가 1871년이 되어서야 헌법을 개정하고 안정을 찾게 되었다. 당시 인구 조사를 해보니 겨우 260만 명. 땅덩어리가 남한의 26배나 되고 비옥하고 광물도 많고 석유와 옥석도 많았지만 그를 관리할 사람이 부족했다. 그래서 50년 동안 100만 명을 데려오자는 목표를 세우고 이민을 받다 보니 60년 동안 거의 세배나 늘어나게 되었다.


"좋은 공기"라는 뜻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억척스럽게 일구어 놓은 도시로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남미에서 상파울루에 이어 두 번째로 커져버린 도시는 부화가 걸리고 말았다. 대대적으로 길을 뚫다 보니, 폭 150 미터에 32차선이나 되는 길은 횡단보도를 4개나 건너야 할 정도로 넓어졌다. 주거지역이었던 곳에 이런 도로를 만들다 보니 수많은 건물을 부숴내야 했다. 눈물이랑 원성이 들려야 했지만 사람들은 환의의 눈물을 흘렸는데 바로 땅값을 아주 후하게 쳐주었단다.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남미의 파리"라 하는 것은 이때 프랑스를 모방했기 때문이다.


5월 혁명 때 독립선언을 한 곳을 "5월 광장"이라 하고 이를 중심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조성되었다. 독립 100 주년을 맞이해 세운 기념비 중앙에는 1810 년 5월 25일이라는 날짜가 크게 새겨져 있다. 시내의 건물들은 주로 이탈리아 남쪽 오스만의 영향을 받은 돔스타일이나 19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스타일 또는 식민지 스타일 등이 섞여 있다. 건물 꼭대기에 시계탑이 있는 건물도 있다. 이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시작하자 경쟁하듯 건물 위에 시계탑을 설치하려는 바람에 한 때는 20개가 넘는 시계탑이 있었으나 도시계획으로 대부분 없어졌고 남아있는 건물도 잘린 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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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의 자유당과 하얀색의 연합당의 조화로운 정치를 기원하며 두 당의 색을 혼합하여 분홍색으로 빛나는 Casa Rosada는 대통령 궁이다. 로코코 양식으로 정면에 큰 발코니가 있는데 노동계급의 대변자였던 에바페론이 발코니에서 연설을 했던 곳이다.

원래 왼쪽에는 대통령궁이, 오른쪽에는 중앙우체국이 있었는데 1862년 대통령궁이 너무 초라하다 하여 가운데 아치를 넣으며 확장하였다. 그런데 좌우가 비대칭으로 된 것은 도시 계획할 때 길을 만드느라 대통령 궁도 예외 없이 잘랐다 한다.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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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할 때 흔히 보이는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었는데 이곳의 오벨리스크는 그들이 만든 것이다. 그들은 문화를 털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손으로 만드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또, 유럽의 오벨리스크에는 문양도 새기고 십자가도 새겨져 있지만 이들은 그 어떤 종교적인 의미보다 간단하고 과학적으로 만들어야 안전하고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1924년에 67미터의 철근 콘크리트를 올리는데 단 42일이 걸렸고 102년이 되는 올해까지 단 한 번의 보수 공사도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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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도 보이지 않는 웅장한 대리석 건물은 대성당이다. 100여 년 동안 4명의 건축가에 의해 완성했는데 마지막 외관을 담당하던 건축가는 프랑스 형제로 당시의 교황을 끔찍하게 싫어했단다. 보통 어느 나라에선가 대성당을 지으면 신앙심에 보답하고 널리 전파해 달라는 뜻으로 교황이 지원금을 준다. 이에 당시 교황이 외관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하자 형제는 신전의 스타일을 클래식 스타일로 하는 바람에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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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이라는 뜻이고 오른쪽은 "모든 것을 이어받은 자들이 축복받았다."라는 라틴어다. 대성당에 공용언어인 라틴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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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대주교와 로마 군주회의 권력을 표시하는 문장


나시오네스 우니다스 광장에서 법학부 건물을 지나면 세계에서 가장 큰 꽃 조형물이 있는 플로라리스 헤네리카가 나온다. 이는 건축가 Eduardo Catalano가 디자인한 작품으로 18톤가량의 스테인리스 스틸과 알루미늄을 사용해 만들었는데 낮에는 피고 밤에는 접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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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1073732.jpg 분홍색 건물은 전에 수도원으로 쓰던 곳이다. 대 이민으로 도시가 복잡해지자 프란치스코 소속 수도사들은 이곳을 시에 기부하고 시에서 5시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L1073735.jpg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는 타이틀을 두고 싸우고 있다는 카페는 전에는 남미 최초의 자동차 동호회가 있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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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고무나무가 약 700 그루 정도 있는데 수도사들이 처음 심은 이 나무에서 증식된 것이며 수령을 약 250년에서 3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라틴어로 "평화 속에 잠들어 있다"라고 쓰여있는 레콜레타 국립묘지다. 1924년부터 공동묘지가 없다가 처음으로 생긴 곳이다. 당시 부자들은 성당에 묻혔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 한가운데에 묻혔는데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위생 등 문제가 많았다. 그때 대 이민이 일어났고, 수도사들도 빠지면서 이곳은 부촌이 되었다.


부자들의 앞마당에 있는 후진 묘지를 없애고자 후손이 없는 묘를 다른 곳으로 보내다 보니 국립묘지 안은 사유지가 되었고 그저 이름만 국립묘지로 남게 되었다. 100여 년 전에 이미 꽉 차버렸는데 7 년 전에 경매가 한 번 나왔는데 약 17억 정도였다니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도 없다. 관광차 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이는 독특한 묘지의 형태와 유명인사들의 묘지를 찾기 위해서다. 33세의 나이로 죽은 에바페론의 묘소도 있는데 그녀의 무덤 앞에는 늘 생화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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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페론은 194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인 후안 페론의 부인이다. 빈민층의 딸로 태어나 온갖 역경을 딛고 ‘퍼스트레이디'가 된 그녀의 인생은 자체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 남편과 함께 노동자와 서민들을 위해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내놓아 '국민들의 성녀'로 존경을 받기도 했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정권유지를 위해 베풀었던 선심성 정책으로 나라 경제를 피폐해져,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유명하게 된 것은 "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노래와 뮤지컬 그리고 영화로 그녀의 이야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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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아테네오를 비롯한 734개(인구당 가장 많음)나 되는 서점을 가져 "가장 많은 서점을 가진 도시"로 2011년 유네스코에 의해 책의 도시로 선정되었다. 엘 아테네오는 원래 오페라 극장이었으나 차츰 오페라가 사라지고 영화가 열풍을 일으키면서 영화관으로 활용되다가 2000년에 서점으로 오픈했다. 무대와 천정화가 그대로 남아있고 VIP 관객석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무대가 있던 자리는 카페가 되어 커피나 식사를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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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중심에는 갈레리아스 파시피코 백화점이 있다. 100 년이 넘는 역사의 웅장함과 함께 화려함을 맛볼 수 있는 백화점에는 세계적인 명품을 판매하는 고급 상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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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둘러보니 도시의 화려함보다는 그들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