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카 여행에서 만나는 후지산

유메노 오하시(꿈의 대교), 오부치 사사바, 슈젠지 온천마을

by 마미의 세상

그동안 해외여행은 주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왔다. 외국어도 능숙하지 않거니와 구글지도를 펴고 여행지와 교통 숙식할 곳 등을 찾아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패키지여행에서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현지 가이드로부터 듣는 해설이다. 이러한 편리함 때문에 여행의 자유로움은 포기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편하게 보고 느끼고 쉴 수 있는 여행을 해왔다.


얼마 전, 딸이 사위와 함께 시즈오카로 렌터카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데 같이 가면 어떻냐고 물었다. 무조건 "오케이!"를 외쳤다. 시즈오카 공항에 내려서 렌터카부터 찾고 시내에 있는 시즈테츠 호텔로 향했다. 소도시라고는 들었지만 오후 7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공항에서 시내로 내려가는 길은 암흑처럼 어두웠지만 딸부부는 둘이서 몇 번인가 일본에 왔다더니 운전대가 반대인 도로에서도 능숙하게 운전하며 리드했다.


드디어 시내에 도착했다. 꼼꼼하게도 호텔 근처의 주차장 중 주차비가 싼 곳까지 검색해서 차를 대고는 '야끼니꾸 집'으로 갔다. 단체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도 있었지만 식당을 찾아 헤매는 불편함 속에 자연스럽게 시내투어도 할 수 있었다.


야키니꾸 집은 우리의 포장마차 같았다. 고기가 감질나게 나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것저것 시켜 먹다 보니 칼칼한 찌개가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찾은 곳은 '이치란 라멘집'이다. 일본에서도 유명하다지만 마치 독서실처럼 앞과 옆이 막힌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상상하던 라면 맛이 아닌 것도 낯설기만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서둘러 호텔을 나왔다. 시즈오카 여행은 주로 후지산을 보러 가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는 심플하게 삼각뿔로 생긴 후지산을 보며 시큰둥했었다. 별 멋도 없고 높기만 한 후지산에 일본인들은 왜 그토록 열광하는지 의구심만 들었다.


처음 도착한 곳은 후지산이 잘 보이는 '유메노 오하시(꿈의 대교)'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 보니 도시의 건물들은 낮아지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더 넓어졌다. 그 앞에 시야를 꽉 채우며 모습을 드러내는 후지산은 아직도 중턱까지 하얀 눈을 덮어쓰고 있다. 순간 후지산에 빨려 들어가는 듯했지만 높은 산은 편안했고 마치 우리의 방패막이라도 되는 듯 포근했다. 주변에는 산을 가리는 그 무엇도 없었고 후지산을 향해 놓인 다리는 마치 후지산 정상을 뚫고 달려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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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한 팀을 보내고는 바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여러 컷 사진도 찍고 다리 위에도 올라가 구경을 하고 내려왔을 때는 어느새 10여 미터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천천히 다리를 내려오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는지 모른다. 후지산은 그때마다 환하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다리 위에서 후지산을 보며 어떤 꿈을 꾸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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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퍼질 무렵 도착한 곳은 '오부치사사바'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고 곧게 솟은 나무들이 문지기처럼 우리를 맞이했다. S자를 그리며 차밭에 오르는 길에는 햇볕 한 줄기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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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차 생산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녹차밭은 언덕을 따라 단정하게 초록물결을 이루고 있다. 조금 더 늦게 왔더라면 녹차의 푸르름이 선명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했지만 그때쯤에는 후지산을 덮은 눈이 더 녹아 설경은 줄어들 것이다. 차 밭 위에 고요하게 솟아있는 후지산은 꽤 높을 텐데 위압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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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밭 사잇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묘한 평온함이 몰려왔다. 연신 사진을 찍다 보니 카메라 셔터 소리마저 조심스러웠다. 다시 나타나는 후지산. 이곳 또한 산을 가릴만한 그 무엇도 없었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왠지 서서히 후지산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래서 일본 사람들이 후지산을 영산으로 여기며 의지하나 보다.

특히 녹차밭이 배경인 '오부치 사사바'는 사진 스폿이기도 하고 바쁜 일상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쉬고 싶을 때 찾을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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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즈반도의 작은 온천마을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반갑다. 그림 같은 풍경 속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수선사(슈젠지) '라는 천년의 시간을 간직했다는 절이다. 일본 절 특유의 지붕과 소박한 경내 풍경, 종 모양을 한 창문 특히 작은 돌상에 빨간 옷을 떠준 모습이 띡 일본 절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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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남쪽이라 따뜻하다고 생각해 두꺼운 패딩을 벗고 왔더니 생각만큼 따뜻하지는 않았다. 내내 몸을 움츠리고 다녔는데 족욕탕에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봄꽃이 붉게 핀 것을 보니 한껏 움츠렸던 어깨가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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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보며 따뜻한 물에 발을 담글 수 있게 족욕탕이 마련되어 있다. 물이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지만 잠시나마 발의 피로를 풀 수 있어서 좋다. 절을 지나 계곡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붉은 다리 하나가 나타난다.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한다는 '가쓰라기 바시'다. 대나무 숲을 지나 만나는 작은 골목길에는 오래된 료칸이나 작은 상점도 있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서 먹으며 사브작사브작 걷다 보면 오랜 세월이 느껴지며 정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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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적지를 향해 다시 달렸다. 운전대가 반대인 데도 구글지도를 보며 척척 잘도 찾아간다고 했는데 몸에 밴 습관은 참 무섭다. 잘 가다가도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하고 나면 영락없이 우측통행을 하는 바람에 몇 번이나 놀랐는지 모른다. 소도시라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런데 왜 일본에는 좌회전이나 우회전 신호가 없는지 모르겠다. 특히 우회전할 때는 눈치를 보며 차가 없을 때 가야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렌터카 여행에 대한 꿈은 접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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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돌다가 하코네 신사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계단을 내려오니 잔잔한 호수가 나타났다. '아시노 호수'로 3.000 년 전에 하코네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특이하게 절 앞뿐만 아니라 호수 앞에도

토리이가 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호수로 들어와 산사로 향했기 때문이라는데 '평화의 토리이'라 하는 것은 1952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잔잔한 호수를 배경으로 신성함과 평화의 상징인 빨간 토리이는 인증숏을 남기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덕분에 사진 한 장 찍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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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을 보는 방법 중 또 하나는 맞은편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코마가타케까지는 케이블카가 있어 편하게 오를 수 있다. 막차를 놓칠세라 열심히 뛰기는 했는데 올려다보니 구름이 가득했다. 구름 한 점 없던 아침의 하늘과는 너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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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서 출발한 케이블카는 약 7분 만에 코마가타케 정상(해발 약 1,356 미터)으로 오르고 있었는데 구름 사이로 까꿍 하며 나타나는 후지산이 얄미웠다. 산 정상은 넓은 초원처럼 트여 있어 가슴속까지 시원했다.

바로 산 아래에는 푸른 물을 가득 담은 아시노 호수가, 저 멀리에는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이, 또 산 정상에는 '하코네 모토쓰미야'라는 신사가 있다. 사람들은 신과 조금이라도 가까이하려는 마음에 좀 더 높은 곳에 그들의 기도처를 만든 것 같다. 신사를 향해 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다가도 후지산을 바라보면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안갯속에 반쯤 숨었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해서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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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1074769.jpg 신사의 종소리가 울리면 어떤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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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우뚝 선 신사와 호수 그리고 후지산이 어우러진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