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년 한 해를 되돌아보며….

by 서진호

브런치 친구들,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무엇을 했나? 디버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제 단순히 ‘개발자’라는 직함 하나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개발자의 사고방식은 제 사고의 중요한 기반이지만, 2025년의 기술 환경은 잘 만드는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단계로 분명히 이동하였습니다.


GPU, AI, 클라우드, 에이전트는 더 이상 각각 독립된 기술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구조로 엮여 있으며, 그 구조는 단순한 성능 경쟁을 넘어 누가 연산 자원을 통제하고 어떤 조건으로 이를 배분하는 가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모델의 규모가 커질수록 자본 집약도는 높아졌고, 네트워크, 전력, 메모리와 같은 인프라는 병목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기술 선택지는 점점 소수의 플랫폼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요한 것은 코드의 완성도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판을 설계하고 주도권을 쥐고 있는가 였습니다.


이로 인해 저에게 던져지는 질문 또한 달라졌습니다. 이 기술은 누구의 손에 있는가, 개별 제품이 아니라 전체 구조는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조합은 기업을 넘어 산업과 국가 간의 권력 균형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하는 질문들입니다. 이러한 물음은 전통적인 의미의 개발자 역할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동시에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결코 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기술은 더 이상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 전략의 언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기술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질서를 읽고 해석하는 쪽에 서게 되었습니다. AI 인프라를 둘러싼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고, 복잡한 기술을 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고자 하였습니다. 2025년은 제 기술적 성취를 단순히 확장한 해라기보다, 제가 서 있는 위치를 보다 분명히 인식하게 된 해였으며, 그 과정 자체가 다시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작년 한 해를 관통한 가장 강렬한 키워드는 단연 GPU와 AI 인프라였습니다. H100, H200, B200, GB200과 같은 이름들이 연일 시장을 채웠지만, 숫자와 성능 지표만으로는 이 흐름을 온전히 설명하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는 점점 스펙이 아니라 그 이면의 구조를 보게 되었습니다. 왜 MoE 아키텍처는 연산 능력보다 네트워크를 먼저 압박하는지, 왜 추론 성능은 계산(Compute)이 아니라 메모리 병목에서 무너지는지, 그리고 왜 경쟁의 기준은 더 이상 ‘누가 더 빠른가’가 아니라 ‘누가 전체 스택을 소유하는가’로 이동하고 있는 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GPU 전쟁의 성격 자체를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경쟁의 본질은 칩 단위의 성능 비교가 아니라, 연산, 메모리, 네트워크,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고 운영할 수 있는 능력에 있습니다. 개별 부품의 우수성보다, 그것들을 어떻게 묶고 관리하며 표준으로 만들어가는지가 승부를 가르는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NVIDIA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분명해졌습니다. NVIDIA는 더 이상 단순한 ‘칩 회사’로만 규정되기 어렵습니다. GPU, InfiniBand, CUDA, NCCL 그리고 최근에 합병한 Slurm 과 Groq LPU 시스템과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GPU를 중심으로 AI 시대의 사실상 표준 실행 환경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결국 2025년의 GPU 전쟁은 하드웨어 성능 경쟁이 아니라, 누가 AI 시대의 실행 질서를 장악하느냐를 둘러싼 싸움이었습니다. 모델은 거대해지고, 데이터는 분산되었으며, 추론은 실시간에 가까워졌습니다. 그 결과 연산 자체보다 메모리, 네트워크, 스케줄링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2025년 중반을 지나며 저의 관심은 점차 멀티에이전트 구조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의 변화라기보다, AGI를 바라보는 관점의 이동에 가까웠습니다. 오랫동안 AGI는 하나의 초거대 모델,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는 단일한 지능으로 상상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모델이 커질수록 복잡성은 급격히 증가하였고, 효율과 통제의 문제는 오히려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그 대신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역할이 분화된 에이전트들의 구조였습니다. 각 에이전트는 제한된 능력을 가지지만, 메모리를 공유하고 작업을 위임하며 규칙에 따라 상호작용합니다. 이들은 협력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하며, 때로는 명시적인 교환을 통해 목표를 달성합니다. 지능은 하나의 모델에 집중되지 않고, 시스템 전체에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바라보며 저는 AGI를 하나의 뇌가 아니라, 역할과 기억, 권한이 분산된 주체들이 규칙 아래 연결되고 조정되는 하나의 경제에 가까운 개념으로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케스트레이션, 메모리 계층, 그리고 에이전트 간 상호작용은 더 이상 부차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델 성능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인프라가 되었습니다. 2025년 이후의 AGI 논의는 모델의 크기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저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코드를 가장 빠르게 작성하는 사람도, 슬라이드를 가장 화려하게 만드는 사람도 아닙니다. 대신 기술과 비즈니스, 그리고 전략을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하는 역할에 집중해 왔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콘텐츠로 이어졌습니다. 블로그와 기고문, 유튜브 동영상, 그리고 이미지 한 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정리해 왔습니다. 그래서 채널의 이름도 ‘시나브로의 테크산책’로 정했습니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가 아니라, 천천히 곱씹으며 이해할 수 있는 기술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역시 작년에 이어, 기술과 비즈니스, 그리고 전략을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하는 글을 계속 써 나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을 모아 상반기 내에 'AI 경영' 서적을 내려고 현재 준비중 입니다. 출판하게 되면 다시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끝으로, 이 글들이 누군가에게는 생각의 출발점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복잡한 기술을 이해하는 데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재미있고 유익한 산책이 되기를 기대하며, 내년 이 맘쯤, 다시 한 해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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