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12년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고 있다.
삶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해서 죽음에 대한 공부까지 마친 뒤 전문의/세부전문의라는 타이틀을 한국에서 두 번, 미국에서 두 번씩 받았지만.
삶은 아직 알기 어렵고 죽음은 더 알기 어려운 데다가,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어려움을 더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환자들과 만나 삶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생각을 섞으며, 그들로부터 배우고, 강의를 다니고, 책을 읽고, 학회를 가며, 다른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서 오는 그 많은 보석 같은 깨우침과 내적 성장을 아무 기록 없이 공중분해시키기 아깝다는 생각이 수백 번은 들었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12년의 숙성과정을 거쳐 이제야 손 끝으로 옮겨갔다.
가급적 나를 익명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과
어차피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얘기할 거, 툭 터놓고 나의 삶도 오픈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결국은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거라고 나와 시간의 힘을 믿어본다.
새벽형 인간이 아닌 터라, 가장 내게 글쓰기 좋을만한 시간은 오후 4시 반 ~ 6시 사이.
마지막 외래 환자와 퇴근시간 사이에 글을 써보고자 한다.
여행의 끝이 어떨지 모르는 백팩킹 초보자의 마음으로 이렇게 첫걸음을 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