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정신과 외래로 젊은 남자 환자가 방문하였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 제가요... 자꾸 고양이를 죽여요.."
"고양이를 죽이신다고요.... 네.. 괜찮으시다면 좀 더 자세히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지난 몇 달 동안 길고양이들을 죽였어요. 꽤 여러 마리를 죽였는데...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는 고양이를 죽이는 게 더 이상 쾌감이 들지 않고.. 이제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여자를 보면 강간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그렇군요.."
"그러다 며칠 전에는 밤에 사람이 지나가길래 충동을 못 이기고... 뒤에서 벽돌로 머리를 쳤어요. 퍽하는 소리가 나고 피가 튀기고 그 사람은 쓰러졌고.. 저는 도망쳤어요.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
"이게 잘못된 건 줄은 알겠는데 충동이 점점 강해지고 더 큰 희열을 원하는 거 같아요. 통제가 안돼요. 저 좀 제발 도와주세요."
이런 환자들은 사실 흔치 않다. 병원에 스스로 오기 전에 범죄자로 분류되어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날 내 앞에 나타난 그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함을 인정했고 도움을 청하였다. 이것은 정말 큰 용기이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인터넷 킬러 사냥'의 Luka Magnotto는 내게 십 년 전 그 환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금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와 위키피디아를 바탕으로 한 내용입니다.)
2010년 초, 젊은 백인 남성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고양이를 잔혹하게 고문하고 살해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여러 차례 올린다. 스스로 동물 애호가라 칭하는 페이스북 그룹 회원들이 그 영상에 분노하며 이 남성의 신상을 파악하려 대동 단결하면서 다큐는 시작한다. 회원들은 동영상을 프레임별로 분석하며 그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2년간 끈질기게 추적하고 결국 그가 캐나다에 사는 루카(Luka)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들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기 위해 경찰에 여러 차례 고발을 시도하고 현재 그가 어디에 머무르는지도 집요하게 추적해 나간다. 그들은 루카의 범죄가 고양이를 해치는데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의견도 개진하였지만, 루카는 경찰에 입건되거나 조사를 받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페이스북 회원들의 활동도 시들해질 즈음 또 다른 동영상이 업로드되었다.
2012년 5월, 영상 속의 루카는 한 남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한다. 동영상을 접한 페이스북 회원들이 즉시 신고하였으나, 며칠이 지나 시신이 발견되고 나서야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 사이 캐나다를 벗어나 프랑스까지 이동했던 루카는 이후 독일의 한 인터넷 카페에서 인터폴 웹사이트에 뜬 자신의 머그샷을 검색하던 중에 주민 신고로 검거된다.
루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루카의 어머니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다 결국 학업을 중단하였다. 16세에 독립하기 전까지는 집에서 매일 영화를 보고, 배우들을 동경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그는 여러 차례 얼굴 성형을 받기도 했지만 배우로서 일을 시작하지는 못했다. 루카의 아버지는 조현병 환자였으며 병 진단 이후 루카의 어머니와 이혼하여 루카는 할머니 손에 맡겨지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인 특징들을 근거로 한 유력한 진단들을 나열해보면 아래와 같다.
< 1 :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histrionic personality disorder), 자기애성 인격장애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
동물 애호가들은 인터넷으로 루카의 인적과 행적을 조사하면서 특이한 점 몇 가지를 발견하였다. 루카의 이름을 구글링 했을 때 그는 유명 모델이며 배우인 것처럼 보였다. 전 세계 여행지를 돌며 촬영한 듯한 그의 셀카와 동영상들이 웹 상에 게시되어 있었으며, 페이스북에는 루카의 열성팬들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팬페이지가 수십 개는 넘어 보였다. 그러나 결국 팬페이지들은 본인이 스스로 만든 것이고 전 세계를 돌며 찍은 사진들은 합성,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다. 그는 유명세와 언론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 거짓 스캔들을 조작해 퍼뜨리기도 했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루카에게 가장 중요하거나 어쩌면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얄팍하고 의미 없는 인간관계를 맺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집착하고 늘 관심의 중심에 있기를 바라는 그의 모습은 히스테리성 인격장애를 시사한다. 자신을 과장되게 포장하며 특별한 존재로 표현하는 것은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모습이기도 하다.
< 2 : 조현병 (schizophrenia) >
루카의 어머니는 루카의 범죄행위는 매니(Manny)라는 남성의 협박에 의한 것이고, 내 아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범죄를 저지르기 수년 전부터 매니가 루카를 협박하고 고문하고 있으며 매니가 시킨 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과 그의 가족을 해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사결과 매니는 가상의 인물로 밝혀졌다. 조현병 가족력이 있는 루카는 실제로 매니라는 가상의 인물의 환청과 환시에 시달렸을 수 있다. 매니는 루카 속에 잠재된 또 다른 인격일 수도 있으나 해리성 인격장애의 다른 특징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3 : 경계성 인격장애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 반사회성 인격장애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
그가 살인을 저지른 아파트의 벽 한쪽 면에는 "If you don't like the reflection. Don't look in the mirror. I don't care."라는 글귀를 써두었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본인만이 할 수 있겠지만, 글자 그대로 해석해 본다면 "거울 속에 비친 너의 모습이 싫다면 거울을 보지 마. 난 상관하지 않아." 정도가 되겠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음에서 오는 괴로움이 느껴진다. 또한 루카는 내내 영화 속 가상의 인물들의 모습을 재연하는 삶을 사는 듯 보였다. 아메리칸 싸이코, 카사블랑카, 캐치 미 이프 유 캔, 원초적 본능 등 영화 속의 장면들을 실제로 자기 삶 속에 구현하고 영화 주인공의 연기를 현실에서 실현했다. 죄책감 없이 즐기듯 행해진 가혹행위들은 반사회성 인격장애 성향을 시사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고,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며 살지 못했던 루카는 가상의 인격체들을 함입하듯 모방하고 참된 자아가 부재한 삶을 살았다. 자아상의 혼돈은 경계성 인격장애의 주요한 특징이다.
인격장애의 진단기준은 여러 다양한 증상들을 포함하므로 단순히 다큐멘터리에서 보인 모습만으로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 루카를 정신 감정한 법의 정신의학 의사들은 위에 열거된 정신질환들을 그가 모두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히스테리성, 경계성, 자기애성,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같은 범주에 속하는 정신질환으로 하나의 스펙트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경계성 인격장애만을 진단받은 환자도 어떤 스트레스나 특정 환경 속에서는 자기애성 또는 반사회성 인격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루카는 결국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처벌을 받았다.
다큐멘터리는 반복된 고양이 학대가 사람을 살해하는 강력 범죄로 발전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동물을 학대하는 행동 등으로 소아 청소년기에 품행장애(conduct disorder) 진단을 받은 경우, 성인이 되어서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그 진단이 발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사실에 근거해 한국 사회에서도 고양이나 개를 잔인하게 학대하는 사람들을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바바리맨이라 불리는 노출증 환자들을 방치할 경우 결국 강력 성범죄자로 발전한다는 연구들도 있어, 가벼운 성범죄라 해도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다.
그러나 고양이를 학대하는 모든 이가 살인자가 되지는 않으며, 모든 바바리맨이 강간살해범이 되지는 않는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예언자들의 힘을 빌어 강력범죄를 예방하고 용의자를 미리 처벌하는 사회를 그려냈다. 문제는 예언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미래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일말의 가능성을 존중할 것인지, 예언자 대다수의 의견을 따라 미리 처벌할 것인지. 어떤 사회가 더 나은 사회인지 영화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그 미래를 더 나은 것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크리스마스 캐롤의 스크루지 영감처럼 말이다.
나는 우리가 비록 미래를 보지 못하더라도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고양이 학대가 살인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십여 년 전 내 앞에 나타난 그 젊은 환자는 범죄를 저지르긴 했으나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도움을 받기를 선택했다.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의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은 사회의 지지와 타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미래를 바꾸는 힘이 본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현재를 나는 이제 알 길이 없지만, 십여 년 전 그때의 오늘보다 지금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