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내게 라벤더 꽃이 촘촘히 매달린 줄기 몇 개와 다양한 빛깔을 품은 잎사귀 몇 개를 엮어와서 내민 환자가 있었다.
미스 리?... 아니 닥터 리? 만나서 반가워요.
가끔씩 환자들로부터 들꽃을 선물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미 여러 번 만나 가까워진 환자들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에게 어떤 의사가 되어줄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짜고짜 꽃부터 내미는 환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치료를 받았으며, 현재는 관해 상태에 이르렀다고 했다.
암 이전에 이미 조울증을 진단받았고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중이었다.
현재는 조울증 증상이 심하지 않고 기세를 잃은 증상들에 삶을 조율해가며 사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드물긴 해도 약 없이 중년과 노년을 보내는 운 좋은 이들이 가끔 있다.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삶에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이 왔을 때 다시금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정기적으로 정신과 의사를 방문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아도 좋은 경우들이다.
암 재발의 위험 속에서도 조울증 증상은 안정적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기분 안정제도 서서히 줄여나가다가 중단했다. 그때그때의 증상에 맞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약들을 조심스럽게 조절하기도 하고, 아예 모든 약을 끊은 상태에서 지켜보기도 하면서 그녀를 살펴왔다.
그녀는 내 안위를 묻는 몇 안 되는 환자들 중 한 명이었다.
진료를 끝마치기 전에 나는 늘 환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더 궁금한 것이나, 오늘 제가 환자분을 위해 더 해드릴 것이 있나요?"
그녀는 내게
"아니요. 닥터 리가 편안하게 잘 지내는 것 그거면 돼요."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진료를 몇 달간 멈추어야 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우리가 각자의 삶을 잘 돌보고 건강하게 지내다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건네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얼마간이 지났고 다시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배달되었다.
내 환자들 중에 사망한 이가 있으니 환자 케이스를 클로져하는 수속을 밟아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녀였다.
암이 재발한 것이었을까.
나는 다급하게 차트를 열어보았다.
'반려 개와 함께 집 앞에 산책을 나갔다가 큰 차에 치여 개와 함께 즉사함.'
신체의 병도 마음의 병도 삶으로 받아들이고 안정적으로 살아왔던 그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 60세 생일을 보내고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일어난 일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허망했다.
애지중지 돌보던 소중한 무언가를 한 순간에 상실한 기분이었다.
죽음이 이토록 가까이 있었을 줄이야.
그녀가 내게 건네었던 라일락 줄기 다발은 진료실 책상 위 작고 투명한 화병에 여전히 꽂혀있다.
색이 바래고 예전의 생기와 화려함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꽃은 여전히 꽃이다.
나와의 첫 만남을 상상하며 묶어두었을 꽃줄기에 담긴 그녀의 마음도 여전히 나와 함께 머물고 있다.
그녀는 사라졌지만, 나는 그녀를 잊지 않았다.
새로운 환자들을 만나며 다시 그녀를 만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또 그녀를 만난다.
"닥터 리,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고 있지요? 닥터 리가 잘 지내는 것, 그거면 돼요."
그 어딘가에서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꽃줄기를 엮고 있을 그녀를 떠올리며 나는 오늘을 산다.
그렇게 그녀를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