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게 되면 이해받게 된다

HAWAII #11 우리는 모두 마니니 같은 존재들

by syn


카네오헤Kāneʻohe는 하와이 오아후 섬의 동쪽 연안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고대의 전설이 깃들기도 한 이 지역은 그 나름의 특색이 있어 여러 관광 명소가 있지만, 하와이에서 카네오헤를 간다는 말은 정작 그 도시를 방문한다기보다는 그 앞에 자리 잡은 카네오헤 베이(만)에 간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더 엄밀히 따지자면, 카네오헤 베이 중앙에 있는 샌드 바에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한 관광객 중 하나였다.


여덟 시가 되기 전에 호놀룰루의 호텔에서 출발한 밴은 여덟 시 반이 훌쩍 넘어서 선착장에 도착했다. 적도 부근이어서인지 아니면 가을이어서인지,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태양은 벌써 한참은 머리 위에 올라있었다. 그렇게 세일 보트를 타고 항해하기를 또 한 시간. 하와이의 자연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아름다운 경관이긴 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난 데다가 수영복을 입은 채로 호텔에서부터 계속 이동만 하자니 영 즐길 컨디션이 되지 않았다. 보트 양 옆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도 유달리 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차가운 바닷바람까지. 마침 구름이 많이 낀 날씨여서 바다의 출렁이는 물결도 아름답기보다는 거대한 수영장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잠깐씩 해가 비칠 때만 기운 내어 짧게 감탄하고 말 뿐이었다. 음, 유난히 반짝반짝하네. 예쁘긴 하네. 그 정도로만.


그러던 중, 묘하게도 세상이 밝아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구름이 걷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정말로 세상의 톤이 한 톤 씩 밝아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바다의 색이 밝아지고 있었다.


카네오헤 베이의 샌드 바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와이의 몰디브라고도 하고, 천국의 바다라고도 하는 카네오헤의 샌드 바는 일종의 모래섬으로, 카네오헤 베이의 한가운데에 있어 갑자기 수심이 얕아지는 구간을 말한다. 세상이 밝아지고 있다고 느꼈던 것도 수심이 얕아지면서 바닥의 모래사장이 비치기 시작해 시각적 착오를 느꼈던 것이다. 샌드 바의 바다는 아주 맑은 민트색이었는데, 바로 지척에 짙은 담청색의 바다가 있어 오히려 이 구역에만 하얀 물감을 탄 것처럼 보였다. 샌드 바 어귀에는 비치발리볼을 할 수 있는 네트가 있어 다른 패키지 팀이 공을 들고 노는 모습이 저 멀리 보였다. 우리도 저곳에 가려나? 가라앉은 기대감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세일보트가 멈추었다. 우리의 첫 액티비티는 스노클링이었다. 여행사에서 준비한 구명조끼와 오리발, 그리고 스노클링 장비를 갖춘 채 나갈 채비를 했다. 보트 옆에 철제 계단이 붙어있어 걸어가듯 내려갈 수 있었다. 구름은 완연히 걷혀 녹색 물결에 반짝이는 윤슬을 끊임없이 만들어냈고, 유리구슬 같은 바다 한가운데에는 백사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백사장 한가운데에 보트가, 내가 있었다.


묘한 떨림과 호기심으로 한 걸음 씩 바다로 내려갔다. 짧은 계단을 모두 내려가면 바로 백사장이었다. 물은 바닥에 있는 모래가 보일 정도로 맑고 얕았다. 거기에 첫 발을 담근 감각은 정말 차가웠다. 하지만 햇살이 충분히 따뜻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정도였고, 수심은 아무리 깊어도 성인 남성의 가슴께 높이 정도여서 수영을 대단히 잘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이 공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리발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걷는 게 오히려 불편해 바로 헤엄을 쳐야만 했다. 물살에 몸을 맡기고 헤엄을 치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고개가 바닷속으로 푹 들어갔다.


카네오헤 베이의 샌드 바에서 하는 스노클링은 하와이에서의 첫 액티비티면서 동시에 내 인생 첫 스노클링이기도 했다. 스노클링이 대단한 기술을 요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물속에 머리만 넣는 단순 행위 정도로만 생각했던 터라 나는 액티비티에 대한 아무런 상식도 정보도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미지 소스에서 흔히 보듯이 내게 스노클링이란 그저 '바다 구경'의 개념으로 추상적이게만 자리 잡아있었다. 숨은 대롱을 통해 쉬고, 시야는 고글을 통해 보는데 뭐가 더 필요하겠어?


호흡이나 안전 수칙 같은 것을 다 떠나서 (절대 떠나서는 안 되지만) 나는 아주 간단한 것을 간과했다. 그러니까, 물속에서 무엇을 보고 정확히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에 대한 것에 대해서 말이다.


바로 물고기에 대해서.


바닷속이 머리를 넣은 그 순간. 바로 하와이에서, 그리고 내 인생에서 자유로운 물고기를 만난 첫 순간이었다. 물속에서 처음 본 그 생물은 하얀 몸통에 약간 노르스름한 빛을 띠고 세로로 줄무늬가 있는, 펼친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물고기였다. 샌드 바에 들어와 겨우 몇 걸음 걷다가 머리를 물속에 담갔을 뿐인데 바로 물고기를 마주쳤기 때문에 나는 놀라서 물속에서 소리를 치고 말았다. 물론 스노클링 장비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울리는 비명은 아니었지만, 뒷머리가 삐쭉 서는 것 같았다.


고백하자면 나에게는 약간의 어류공포증이 있다. 공포증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인가 싶어 쉽게 터놓지는 않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금붕어나 화려한 열대어가 예뻐 보여서 키울 때도 정작 물고기와 눈을 마주치는 건 무서웠다. 특히 물고기를 만지는 게 무서워 어항 청소도 혼자서 하질 못했다. 어쩌다 횟집에서 물고기 머리가 플레이팅으로 덩그러니 놓여 있으면 눈을 쳐다보지 못해 회도 먹지 못했다. 내가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그럴 때마다 물고기 머리 위에 깻잎 한 장이 살포시 얹히곤 했다.

돌이켜보면 물고기뿐만 아니라 꽃게나 쪄진 대게의 죽은 눈알도 잘 못 봤으니 어쩌면 깜빡이지 않는 탁한 동공에서 전해오던 미지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어릴 적부터 물고기를, 그것도 살아있는 물고기를 잘 쳐다보지 못했다. 다만 어른이 될수록 그것들을 마주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래서 나 역시도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런 내가 이 먼 이국 땅에 와서 스노클링을 멋모르고 처음 해봤으니, 살아있는 물고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도 난생처음일 수밖에.


한 마리까지는 괜찮았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나의 먹먹한 비명에도 그 물고기는 어떠한 영향도 없이 유유히 제 갈 길을 갔다. 어라. 어쩌면 괜찮을지도 몰라. 놀란 속을 가다듬으며 그 물고기를 천천히 따라갔다. 바로 몇 발자국 만에 수십 마리의 물고기들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반사적으로 우뚝 멈춰 섰다. 멈춰 서자 아이러니하게도 더 잘 보였다. 저 멀리서부터 움직이는, 수십 마리가 아닌, 내 주변을 둘러싼, 이 바다를 가득 채운, 수백 마리의 물고기를.


물고기 공포증이나 조류 공포증 같은 건 왜 생기는 걸까? 어린 시절 트라우마 같은 건 기억나지 않고, 학습된 공포라기에는 물고기는 너무도 익숙한 존재가 아닌가. 아무래도 특징적인 형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 깜빡이지 않는 눈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물속을 너무도 자기들의 공간처럼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그러니까 나와 다르다는 공포. 팔도 다리도 없이 지느러미를 세차게 흔들며 물살을 유영하는, 장비 하나 없이 아가미로 숨 쉬는 존재들에 대한 본질적인 두려움. 한 마리라면 새끼 에일리언을 처음 만난 우주인처럼 가까이 들여다보거나 예뻐할 마음이라도 들 텐데, 심지어 떼를 지은 무리라니.


하와이라고 해서, 제 발로 들어간 스노클링이라고 해서, 삼치 고등어 조기가 아니라 열대어라고 해서 그들에 대한 공포심이 잦아들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무섭다고 해서 보트 위로 냉큼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여기(그러니까 하와이, 카네오헤, 샌드 바)까지 오는 데에 너무도 많은 공수가 들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생고생을 해서 하와이에 와놓고는, 한 시간을 걸려 카네오헤까지 왔으면서, 또 배를 타고 몇십 분을 달려 도착한 야트막한 바다에서 겨우 물고기 떼가 무서워서 10분도 안 되어 바다 위로 올라간다고? 그건 자본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마음을 크게 먹고 이 구역의 토박이들을 받아들이기로, 아니, 무서워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수많은 ‘그들’ 속으로.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에는 노출치료가 있다고들 한다. 눈을 깜빡이지 않는 그들이 무섭고, 앞으로 가는 것 같다가도 지느러미를 홱 돌려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게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사실만은 명확했다. 이들은 무해하다는 것. 나는 여전히 떼 지은 물고기를 보면 참지 못해 먹먹한 비명을 질렀지만, 이전보다는 덜 놀라고 덜 두려워할 수 있었다. 스노클링은 내게 있어 서로 다른 종 간의 낯섦과 공포심을 조금씩 덜어내는 시간이었다.


물고기란 말은 기묘하다. 소나 돼지를 땅고기라고 하지 않고, 닭과 오리를 하늘고기라고 하지 않는데, 물고기는 물-고기가 된다. 물에 사는 모든 지느러미 달린 것들을 다 먹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손쉽게 물속의 생명들에게 물-고기라는 이름을 붙인다. 입으로 숨 쉬지 않는, 아가미를 가진 존재에 대한 종적 무관심일까? 뭍에서는 절대적인 지배계층이 되는 최상위 포유류 포식자로서 다른 세상-물속 생명체에 대한 나태한 작명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나뿐만은 아닌지, 요즘에는 종평등적인 행동의 일환으로 언어 교정이 제안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고기'를 '물-살'이로 치환하자는 주장이다.


단순하고도 깜찍한 그 언어의 전환을, 나는 하와이의 바다에서 몸소 체감했다. 물속 존재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그리고 생명 유지에도 훨씬 유리한 그 바다 한가운데에서 내가 보트 위로 도망가지 않은 세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곳이 '그들'의 구역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낯설고, 무섭고, 징그럽다고 하기에는 이곳에 제 오리발로 저벅저벅, 아니 찰박찰박 걸어온 건 내 쪽이었다. 남의 구역에 와서 그 구역의 토박이들을 구경하는 것도 모자라 손가락질하며 무서워하기까지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곳의 토박이들은 (자기들 기준으로) 다르고 기묘하게 생긴 나를 두려워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하와이의 물살이들은 그렇게 수적으로 우세한데도 군말 없이 나를 받아들여주었다. 화려한 환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땅-고기로 취급하지는 않았다고 확신한다. 내가 그렇게 자주 깜짝깜짝 놀랐는데도 동료들과 함께 유유자적하게 내 주변을 헤엄쳤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들도 나를 동등한 생명체로 받아들이고 함께 있어주었던 것으로 믿는다. 그러니까, 나를 땅-살이로 봐주었던 것이라고.


한국으로 돌아와 내가 하와이에서 처음 만났던 물살이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 하얗고 노란, 다섯 줄의 줄무늬가 있는 물살이에 대해서. 그건 컨빅트 탱Convict Tang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호 주변에서 무리 지어 사는 아주 흔한 종이었다. 그리고 하와이 말로는 마니니Manini 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마니니Manini는 '작다, 사소하다'는 뜻으로, 얕은 바다에서 무리 지어 다니며 꽤 쉽게 볼 수 있는 어종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렇게 친근해서인지, 하와이의 어린이들이 물고기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이름도 바로 마니니.


하와이의 여행자가 스노클링을 하며 가장 먼저 발견한 물고기가 흔하디 흔한 컨빅트 탱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물고기를 두려워하는 내가 가장 먼저 만난 물살이가 작고 사소한, 하지만 가장 친근한 마니니라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순간, 카네오헤의 바다에 들어간 순간 바다가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는 모두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고. 우리는 서로가 '마니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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