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밑을 걷다 보면 발견하는 건

HAWAII #12 잊을 수 없는 어떤 찰나가 있다

by syn

씨 워커Sea Walker.

나를 카네오헤 베이까지 가게 한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씨워커는 단어 그대로 바닷속을 걸을 수 있는 해양 액티비티로, 비록 바다 밑에서 숨을 쉬기 위해 헬멧을 써야 하지만 그 정도는 당연하다 못해 오히려 액티비티를 완성하는 장치 같아 보이기도 했다. 동그랗고 커다란 헬멧을 쓰고 바다 아래에서 열대어들에 둘러싸여 웃고 있는 홍보 사진은 나의 환상에 단단히 쐐기를 박았다. 낭만, 이라고.

바다에서 직립 보행할 수 있다니. 공기로 숨을 쉴 수 없고 중력이 방해되는 공간을 뚜벅뚜벅 걸을 수 있다니. 달 위를 걷는 것만큼이나 특별한 경험이 아닐까. 우주인 같은 헬멧 모양마저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직접 그 헬멧을 쓰기 전까지는, 그랬다.


씨워커는 바다 밑을 수직으로 걸어야 하기 때문에 카네오헤 베이의 샌드 바처럼 수심이 2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서는 진행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와 Y는 샌드 바에서의 스노클링을 마무리한 뒤, 작은 보트를 타고 조금 떨어진 선착장에 이동했다. 씨워킹을 위해 좀 더 수심이 깊은 곳에 배치된 작은 간이선착장이었다. 그곳에서는 씨워커를 체험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다른 팀이 있었는데, 카네오헤에서 하는 액티비티는 액티비티 별로 크게 로테이션이 되는 방식이면서 또한 씨워커 액티비티 안에서도 작게 로테이션이 되는 방식 같았다. 씨워커 액티비티 자체에 할애하는 시간은 크게 길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조금만 기다리고도 금방 바다 아래로 내려갈 채비를 할 수 있었다.


씨워커를 하기 위해서는 단 세 가지만 명심하면 됐다. 첫째, 헬멧을 쓸 것. 둘째, 헬멧을 쓴 채로 수직으로 바다에 내려갈 것. 셋째, 수면 위로 올라올 때까지 수직 자세를 유지할 것. 이족보행을 하는 동물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말이어서 뭐가 어려울까 싶었지만, 헬멧의 무게가 40kg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안 순간 곧바로 생각이 달라졌다. 그러니까 초등학생 어린이를 어깨에 얹힌 채 고개를 숙이거나 뒤로 넘어가는 짓 따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수면에서 내려갈 때나,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더더욱. 헬멧이 너무 무거운 나머지 수면에서 내려가면서 뒤로 고꾸라지는 경우도 있다는 가이드의 경고는 걱정을 곱절로 불려주었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 가면 바가지를 뒤집어서 수면 아래로 꾸욱 누르던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났다. 그 바가지는 가라앉을 듯하다가도 부력을 이기지 못하고 퐁 튀어올라 뒤집어진 채 물 위를 동동 떠다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재미있으면서도 억지로 바가지를 목욕탕 물아래 깊이깊이 넣기 위해 애쓰곤 했었는데. 그 기억에 40kg짜리 헬멧이 겹쳐졌다. 그것도 내가 당장 써야 하는.


낯선 여행지의 장점이라면 평소라면 갖지 못할 무모함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나는 갖은 걱정을 하면서도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여행지 버프 하나로 기어코 바다로 향했다. 해저로 내려가기 직전, 수직의 철제 사다리에 올라서있으니 현지 원주민 가이드 한 명이 내 머리에 헬멧을 얹어주었다. 전에 없던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게 느껴졌다. 40kg는 생각보다 꽤나 무거웠다. 안전하게 쓰인 것을 확인한 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수면 아래로 움직였다. 나는 목욕탕의 바가지를 머릿속에서 떨쳐내려 애쓰며 천천히 발을 내렸다. 앞으로 쓰러지거나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무진장 신경 쓰면서. 다행히 40kg 나 되는 바가지, 아니 헬멧은 뒤집어지지 않았고 어떤 기압 차이도 없이 안전한 공기를 끊임없이 내보내주었다. 우리는 무사히 바다 밑에 도착했고, 바다 아래에 준비된 긴 철제 손잡이를 잡고선 나란히 발걸음을 옮겼다.


겨우 헬멧 하나로 물속에서 숨을 쉰다는 공포심도 잠깐이었다. 어느 정도 걷기 시작하니 조금씩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불안하긴 했지만 경직되었던 몸도 약간은 자유롭게 주변을 둘러볼 여유까지 생겼다.

바다 아래는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수영장 물처럼 투명할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상상한 그 어떤 모습보다도 탁했다. 맑고 선명한 바닷속 사진들은 다 과장이었던 걸까? 수면에서 불과 5M 정도의 깊이니 그다지 어둡지도 않은데도 멀리까지 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물고기들의 헤엄 때문인지 우리의 헬멧에서 나오는 공기방울 때문인지 걸을 때마다 시야에 모래가 섞이는 것 같았다. 묘했다. 카네오헤의 바다색은 한국바다의 짙은 군청색이나 담청색이 아니라 밝은 민트색에 가까워서 어떤 의미에서는 거대한 어항 또는 수족관 안에 들어온 느낌이기도 했다. 바닥이 약간 형광빛이 도는 밝은 파란색으로 칠해진, 그야말로 횟집 수족관. 이게 뭐람.


가이드를 따라 도착한 곳은 열대어가 잔뜩 모여있는 곳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가능한 스노클링과 달리 씨워킹은 정면으로, 또 위와 아래로 다양한 각도에서 물고기(아니 물살이)들을 바라볼 수 있어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다만 바닷물이 맑지 않았던 데다 물고기 역시 샌드 바에서 만난 것들에 비해 더 큼직하고 짙어서인지 뭔가 오묘했다. 고르고 고른 횟집의 쇼윈도 안에 들어간 기분이랄까, 거품이 끊임없이 나는 어항 속의 미니어처가 된 기분이랄까. 사방팔방을 물고기에 둘러싸인 상황은, 아무래도 멋지고 아름답다는 감상보다는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은 기이한 감각에 가까웠다.

현지 가이드가 빵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것을 꺼내 흔들기 시작하자 그 주변으로 물고기가 빠르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닥터피시를 아주 크게 확대해서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40kg의 헬멧과 동아줄 같은 철제 손잡이를 꽉 붙든 탓에 도망갈 수도, 눈을 돌릴 수도 없이 코앞에서 마주해야 하는 거대한 닥터피시 떼들. 나는 기어코 헬멧을 쓴 상태에서도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제발 그 물고기 밥을 이제 그만 숨겨주길 바라면서.


열대어 무리들 사이에서 인간이란 참 보잘것없고 (물속에서 숨도 못 쉬는 그야말로)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때쯤, 다양하고 셀 수 없는 물고기들 사이에서 이방인은 오히려 인간 쪽이라는 사실에 지쳐갈 때쯤이었다. 현지 가이드가 저 멀리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뭔가를 보라는 표시였다. 하지만 하와이 사람들은 바닷속의 시야도 남다른 건지, 처음으로 바닷속을 둘러보는 나로서는 주변을 배회하는 물고기를 제외하면 대체 뭐가 뭔지 파악하기조차 힘들었다. 나는 헬멧을 벅벅 닦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그리고 주변의 물고기를 애써 모른 채하며 가이드의 손끝에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너머 큼직한 산호초 위에 고요한 움직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물고기보다 훨씬 느리고 또 품위 있는, 그리고 인간과 조금 더 닮아있는. 다리로 사족보행을 하는 무언가. 바다거북이었다.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바다거북은 미국에서 연방법과 하와이 주법으로 보호받는 동물이다. 그래서 자연에서 야생의 거북이를 발견하더라도 먹이를 주거나 만질 수 없을뿐더러 최소 3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가이드는 거북이를 발견한 순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은 채 우리에게 잠시간 그들을 지켜볼 시간을 주었다.


바다거북은 하와이 말로 호누Honu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하와이에서도 거북이는 장수와 보호를 상징하는데, 호누는 그에 더해 느리면서도 평온한 휴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이름에 걸맞은 느긋한 움직임이 뿌연 하늘색 바닷물 너머로 희미하게 느껴졌다. 해저를 걷는 바다거북은 너무 느긋한 나머지 마치 이 넓은 바다에 혼자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이, 방해되는 것이나 신경 쓰이는 것 하나 없다는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나 역시 주변의 어떤 물고기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느리고 흐린 거북이만이 내 앞에 있었다. 마치 광각렌즈를 통해 거북이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 거북이 바로 위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보였다. 바닷속은 여전히 흐렸지만 똑같이 느리고 정적인 움직임이어서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바다거북이었다. 새로 나타난 바다거북은 수면을 향해 느리게 다리를 휘젓고 있었는데 비록 느릴지언정 한 치의 주저함 없는 동작이었다. 그 등껍질에 수면에서 내려오는 햇살이 반사되어 옅게 비치고 있었다. 산호초 위의 바다거북, 그리고 그 위를 헤엄쳐가는 바다거북. 고요한 바닷속, 물결을 파고드는 은은한 햇살. 형용할 수 없는 모습에 벅찬 감탄이 터져 나왔다. 느긋하고 평온하고, 그만큼 우아한 거북이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영원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던 거북이는 금세 흐린 바다 너머로 헤엄쳐서 사라졌다. 점점 멀어지는 거북이를 아쉬워하며 시선을 돌렸을 때, 산호초 위를 걸어 다니던 거북이도 어느덧 보이지 않았다.


두렵지만 또 그래서 기어코 해야 했던 씨워커도 순식간에 끝이 났다. 사다리를 올라오면서 동시에 벗겨진 헬멧은 언제 그렇게 무서웠느냐는 듯 아쉬움이 되었다. Y와 나는 다시 세일 보트로 돌아와 마지막 액티비티인 바나나 보트까지 무사히 체험했다. 바다 위의 바나나 보트는 모두가 아는 만큼의 재미였는데, 그렇기에 딱 그만큼 신나는 놀이였다.


반나절의 해양 액티비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나뿐만 아니라 모든 참여자들이 녹초가 되어 밴에 올랐다. 오는 길과 동일하게 적막으로 가득한 귀갓길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해도 나는 다들 새로운 낭만을 하나씩은 품고 있었으리라 확신한다. 에메랄드빛의 맑은 바다와 형형색색의 물살이들, 그리고 바다 위가 아닌 바다 아래의 경관, 익숙하고 스릴 있는 체험까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도 그날의 바다를 마음 한구석에 품은 이유는 반짝이는 수면의 윤슬도, 화려하고 낯선 열대어들 때문도 아니다. 아무리 물결치는 파도가 있든, 아무리 날쌘 물고기가 있든,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평온함.


하와이에서 거북이를 만나는 일은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모래사장 위에서 쉬는 거북이가 아닌 바닷속에서 움직이는 거북이를 만나는 것은 꽤나 귀한 경험이며, 무리 짓지 않고 단독으로 살아가는 거북이를 그것도 두 마리나 동시에 만난 것은 아주 특별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확률을 떠나서 거북이는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져, 야생에서 자연스레 거북이를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 행운이나 축복을 의미한다고 하니 어떤 의미로든 낭만적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일까? 내가 그날 그 바다 밑에서 발견한 것은 두려움을 이겨낸 용기도, 바닷속 생명에 대한 애정도 아니었던 것 같다. 정작 내가 발견한 것은 아주 찰나에 불과하다. 호흡도 움직임도 시간도 멈춰 버리고 마는 잠깐. 하지만 그렇기에 영원한 것만 같은 순간. 느리고 유유자적하면서도 우아한, 살아가면서 평생 간직하게 될 어떤 행운의 조각.


하와이의 바다 아래에서 발견한 그 찰나를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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