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세 번은 동네에 있는 산을 오른다.
높지 않은 산이라서 사색하기에는 정말 좋은 장소이다.
꽃이 피는 봄길에는 내 발길을 가로막으며 살랑살랑 다가오는 흰나비가 반갑고.
여름에는 푸릇푸릇한 연둣빛 나무들이 얼마나 싱그러운지 모른다.
가을에는 초록초록 했던 잎의 색깔이 연갈색으로 바뀌고
겨울에는 눈 위를 걸을 때 사각사각 발소리가 마음의 안정을 준다.
모든 계절에 산을 오르면 변화되는 모습이 신기하고 좋지만
나는 그중 5월의 산에 가는 걸 가장 좋아한다.
5월 중순이 되면 아카시아 꽃이 흐트러지게 피어있다.
어린 시절에 올랐던 동네 뒷산의 모습, 그날의 바람, 향기,
같이 있었던 사람들,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으며 걷다 보면
어린 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림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카시아 핀 산길을 걸을 때면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언니들과 동네 뒷산에 올라가 아카시아 꽃도 따먹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잎사귀를 누가 먼저 뜯나 놀이도 하고
진 사람은 어김없이 딱 밤을 맞곤 했다.
너무 많이 맞아서 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했나? 하하
줄기로는 머리카락을 꼬아 서로에게 파마도 해주었다.
아카시아 줄기파마가 나름 효과가 있어
약간의 웨이브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집에 오면 엄마에게 파마해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어스름해진 저녁, 집에 갈 생각도 안 하고
깔깔깔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피어났다.
라테에는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고
심심하다고 느끼지 않았었다.
지금은 조금만 할 일이 없어도 심심하다고 느끼거나,
아니면 너무 할 일들이 많아서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다.
젊을 때에는 심심할 틈 없이 바쁘게 지냈다면
40대 후반인 지금은 심심함이 좋아진다.
어릴 때처럼 자연과 함께하는 심심할 틈 없는 생활이 그리워진다.
바쁠수록 뇌를 쉬게 해 주자.
그러면 마음도 고요해지고 타인이 밉거나 분노가 줄여들지도 모른다.
심심함도 즐겨보고 멍 때리기 연습도 해보자.
나도, 당신도..
아카시아 꽃이 피는 시기는 잠깐이지만 나의 기억을 평생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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