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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Aug 09. 2022

여자 혼자 4박5일 다낭 호이안 자유여행

혼자서도 충분히 재미져요

아.. 더 이상 못참아


7월 초 어느 금요일.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매일 같이 의미 없는 항공권 검색만 반복하던 나는 그냥, 홧김에 '결제'를 눌러버리고 만다.


매달, 아니 한달에 두번도 출장이다 여행이다 해외를 나돌던 내가 서울 땅에 감금당한지 어언 2년 반. 과장 조금 보태 역마살이 내 숨통을 조이고 있나 싶게 미쳐버릴 즈음이었다. 어디든 가야했다.

다낭 미케비치

목적지는 다낭이다. 사실 엄마랑 같이 가기로 했었기에 다낭으로 골랐다. 일본, 홍콩, 대만이 막혔고 유럽이나 미국은 너무나 비싸진 이 시점에 만만한게 베트남 아님 태국인데, 방콕은 엄마와 여러차례 가본터라 "그래 다낭 고!" 했던거다. 할건 별로 없는 도시지만 리조트에서 호캉스하며 매일 마사지 받고 맛난 쌀국수나 실컷 먹고 오자며.


그런데 띠로리.. 발권하자마자 치솟는 확진자수에 학원을 하는 엄마가 '난 못가겠어' 선언하시고, 나홀로 여행이 되었단 이 말씀이다. 혼자면 어때?  놀 자신 너무 있슴다.


Day 1


라운지 카드 있음 뭐하나.. 마티나 줄이 백만명인걸

인천공항 오랜만!

다들 30-40만원대, 더 싸게는 20만원대에도 왕복 항공권을 구했다던데 나는 58만원이나 줬다^^ 그것도 아시아나도 아냐 에어서울이야..^^ 3주 전 예약한 금액인데 바로 전주에 검색해보니 45만원까지 내렸더라. 여러분 항공권 미리 사지 마세요..

포박하이 쌀국수 7만동(3800원 정도)

다낭공항에 내려 그랩을 잡고 바로 한시장으로 갔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캐리어를 든 채로 '포박하이'라는 쌀국수 맛집으로 직행. 솔직히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배를 채운 것으로 만족. 근처 금은방에서 $250를 베트남 동으로 바꿨다. $100에 240만동이었나. 단위 적응 정말 안되는 베트남 돈 단위(재벌 된 느낌 나름 좋음).

공간이 예뻤던 '더 가든 1975' 스파샵

다들 가족 연인 단위로 온다는 베트남 다낭에서 나홀로 5일간 뭘 할지 고민을 해보았더랬다. 자 갈거니 다낭 리조트는 오바인 것 같아 호이안의 작은 부티크 호텔로 거처를 정고 아예 호이안에 박혀 살아보기로 했다.


다낭-호이안을 이동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스파샵을 이용하면 무료다(그랩 부르면 2만원 정도 드는듯). 내가 예약한 곳은 '더 가든 1975'라는 고급 스파샵이다. 2인이 90분 이상의 마사지를 받으면 무료로 픽업을 온다. 다낭도깨비라는 카페에서 동행을 구했고, 마사지는 쏘쏘. 어린 관리사분이었는데 정성스럽긴 했지만 시원하진 않았다. (다음날 갔던 미노스파(Myno Spa)가 찐이어씀..)

저녁 6시쯤이 되어서야 호텔 체크인. 올드타운에서 도보로 20분, 차로 5-10분 떨어진 '아니오 부티크 호텔(Anio Boutique Hotel)'로 골랐다. 

아니오 부티크 호텔, 디럭스 이그제큐티브룸
샤워실에 침대 넣어도 될듯ㅋㅋㅋㅋ

3박에 25만원 정도 했는데 신축이라 깔끔하고 넓고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베트남 휴가철이라 현지인이 많아 수영장이며 조식당이며 매우 시끄러웠고(a.k.a 도떼기시장), 올드타운에서 그랩이 안잡혀(진짜 안잡힘) 걸어와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밤에 너무 으슥했다게 단점.

하지만 수영장은 정말이지.. 진짜 예뻤다. 풀도 다양하고 깊어서 운동으로 수영하기에도 좋고 인증샷 찍기에도 너무 좋다. 본격 수영은 내일부터 하기로 하고 을 먹으러 가본다. 쌀국수는 왜 이리 금방 꺼지는거야(벳남 사람들 마른 이유가 있었..)

올드타운에 내리자마자 알았다. 코로나에 걸리든 폐병에 걸리든 둘 중 하나겠군(실제로 와서 엄청난 목감기에 걸림). 엄청난 인파만큼이나 엄청난 오토바이들이 쏟아져 나왔고 정말이지 매연 때문에라도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런 비엣남 감성 소듕해

그럼에도 포기 못하는 현지 감성. 거리에 나와야만, 내 발로 직접 꽤 오래 거닐어야 담아낼 수 있는 느낌들이 있다. 그래서 해외에 나오면 무작정 걷는다. 보물 같은 순간을 얻어내기 위해서.

베트남 첫날에 타이푸드 먹기 잼

원래 가고 싶은 맛집들이 있었는데 신기하게 길에 하나도 안보이던 한국인들이 그 맛집들에만 꽉꽉 차있었다.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절대 밥을 줄서서 먹는 스타일은 아니라, 그냥 근처에서 구글 평점 좋타이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Thai Kitchen'이라는 곳인데 나말고 대부분 서양인이었고, 매우 친절했으며, 팟타이와 쏨땀이 일품이었다.

장관이었던 소원배들. 돈 많이 벌고 건강하게 해주세요.

듣던대로 투본강의 소원배들은 장관이었. 관광객 눈먼 돈을 노리는 상술임을 알면서도 꼭 한번은 넘어가 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직접 타는 것보다 이렇게 보는게 더 예뻤지만!



Day 2

"젠장 왜 6시 반에 일어나고 난리야.."


그렇다. 기껏 휴가 가서, 그것도 전날 새벽 1시 넘어 잤으면서 6시 반에 기상하는 사람 저요. 정확히 한국 시간으로 출근할 시간...이라는게 넘나 소름이고요. 9년차 일개미의 바디알람은 이토록 정확합니다 여러분.

베트남 대가족들의 고성이 난무하는 조식당에 낑겨 앉아 겨우 한 그릇을 비우고는 얼른 방으로 올라와 누웠다. 일부러 발코니 문 약간 열어둔다. 짹짹짹 아침 새소리와 활기찬 베트남어가 함께 섞여 올라온다.

  

'아, 평화로워-'


여행에서 '정말 여행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러니까 '여행 와서 너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사소한 것들일 때가 많다. 여행 전부터 열심히 계획한 것들이 아닌 그저 일상적인 것들. 사실 서울에서도 맘 먹으면 할 수 있는 것들. 그저 햇살 좋은 아침, 창문을 열고 침대 시트에 얼굴을 맞댔을 뿐인걸.

전지적 침대 시점

하지만 마음이 다르다. 마음은 중요하다. 행위 자체는 같아도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르면 180도 다른 것이 된다. 여행이 아니면 이토록 고삐 풀린 마음이 될 수 없다. 서울에서의 내 마음은 항상 여러개의 줄에 묶여 있다. 하나를 풀면 다른 하나가 묶이고 때로는 두개도 세개도 묶여서 긴장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 풀려있다. 여권에 도장이 찍히는 순간 다 풀어버린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고삐를 풀어버리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아니 있어야 한다. 그게 여행이든 뭐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빈둥대다 보니 금방 배가 고파졌다. 아침 양이 적긴 했어.. 더구나 6시반에 먹었잖아? 바로 근처에 끝내주게 내 스타일인 카페가 있길래 얼른 가보았더니 말해 뭐해 취향 저격.

'Rosie's Cafe'라는 곳인데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여러차례 방문했다. 홈메이트 오트밀, 그래놀라, 비건 팬케이크, 샐러드 등 건강하고 예쁜 음식을 판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힐링되는 먹을거리가 몸에도 건강히 흡수되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그래놀라와 비건 팬케익. 특히 팬케익이 호떡마냥 쫄깃한게 너무 맛있었다.

해가 뜨거운 한낮에는 페디큐어와 마사지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디는 '수남네일'에서 받았는데 한국에서 4-5만원인 게 여기는 25만동이니 1만 3-4천원? 싸긴 확실히 싸다.


두번째 스파샵은 '미노스파(Myno)'로 갔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나의 관리사님이 발을 씻길 대야를 들고 등장하실 때부터 알았다. 이 분은 찐이겠구나. 아우라가 달랐다. 그 풍채부터 인자한 미소, 두툼한 손까지. 세게 해달라고, 특히 목 어깨 세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타이 마사지와 아로마로 구석구석 잘 풀어주셨다. 결국 다다음날 한번 더감 :)

수영 아주 조금하고 피자 많이 먹기

베트남 대가족들이 사라진 틈을 타 수영수영. 야무지게 물안경에 귀마개까지 새로 사가지고 갔는데 자유형 50m도 못가고 헉헉대는거 실화..? 코로나 집콕으로 체력이 거지가 되었다. 오면 바로 열운 할거라고 다짐했는데 홍수남.

마침 가져간 옷이 찰떡이었다(예전 베트남 출장때마다 입던 자라원피스)

저녁에는 카페에서 구한 동행들을 만나 올드타운으로 가서 기어코 소원배를 타고야 말았다. 바가지는 바가지대로 썼고 약속했던 20분이 아니라 10분 만에 내리라고 난리치는 바람에 사진도 엉망이었지만 한바탕 웃었으니 그걸로 됐다(그러나 추천하진 않는다). 소원배보단 야시장 쪽 풍등 많은 집에서 10,000동에 이런 사진을 찍어주는데 이걸 더 추천한다! 단돈 500원에 이런 인생샷이라니 :)

언니 음반 내주세요

하염없이 올드타운을 거닐다 보물 같은 곳을 발견해 한참 노래를 들었다. 'Dive Bar'라는 곳인데 매력적인 보이스에 홀리듯 들어가 문 닫는 10시가 다 되어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가장 보물 같은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여기. 


고즈넉한 호이안 올드타운 거리에 울려퍼지던 Frank Sinatra의 <I love you baby>. 분명 흔하게 들었던 노래였는데 그날따라 끈적한 중저음의 허스키 보이스가 나에게 아주 달달하게 물어보았다.

"I love you baby and if it's quite all right?"


Day 3


낮엔 여느때처럼 쌀국수와 코코넛 커피를 마시고, 두시간에 3만원도 안하는 마사지 호사를 누리고, 호텔 침대에서 좌로 뒹굴 우로 뒹굴 하다가, 5시가 되어서야 안방비치로 가는 그랩을 불렀다.

코로나 안걸려 온게 신기할 정도의 인파
엽서처럼 나와서 만족
한국인 1위 맛집 라플라주

역시 관광객 1등 맛집은 비싸고 양이 적고 맛이 없었으나 예쁘게 꾸며놓긴 해서 잠시 쉬어가긴 좋았다. 맨발로 젖은 모래를 꾹꾹 밟으며 베트남 사람들의 물놀이를 구경했다. 모래사장에 앉아 어패류를 많이 먹던데 진정 탈이 안나는걸까?

동행 언니와 오늘의 중요한 일정인 '메모리즈쇼'를 관람하러 갔다. 쇼 자체도 참 볼만했는데 공연장 전체가 테마파크라 구경할게 꽤 많았다. 사진 찍을 스팟들도 많아서 아오자이를 입고 오면 딱이겠다 싶었던.

쇼는 베트남 역사를 다양한 씬으로 보여주는데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들의 하늘하늘한 춤사위가 정말 장관이었다. 나도 한시장에서 아오자이 하나 맞춰 입어볼걸!


Day 4


그래도 다낭에 5일이나 왔는데 미케비치 앞에서 하룻밤 자야하지 않겠나 싶어 마지막 날은 다낭에 숙소를 잡았다. 그랩을 부를까 하다 미노스파에 편도 드랍 비용을 물어보니 25만동이라길래 콜! 마지막 마사지를 받고 'TMS 호텔 다낭 비치'로 이동했다.

오메.. 근데 생각보다 이 호텔이 너무 좋은거다.. '프리미어 스위트 오션뷰'로 예약했고 6층 객실 받았는데 정말 눈앞에 미케비치가 펼쳐지는게 장관..

객실도 엄청 넓고 침대는 굴러다녀도 될 정도로 크고 테라스까지 있어서 1박 13만원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리조트 못 간 한을 여기서 풀고 갑니다 흑흑

저녁에는 특별한 투어가 있었다. 바로 에어비앤비 체험으로 예약한 '1인 여행자를 위한 식도락 투어'. 베트남 현지 친구가 오토바이로 뒷골목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찐맛집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31라 사실 현지 물가 치고는 비싸서 고민을 좀 했는데 안했으면 큰일날뻔 했다.

내가 어디가서 이런걸 먹어보겠냐고오... 결국 이름은 못외웠지만 특히 왼쪽의 저것이 굉장히 맛있었다. 타피오카와 새우로 만든건데 쫄깃하고 짭짤한게 맥주 안주로 딱이다!

여기 사람들이 아침으로 먹는다는 쌀국수도 먹었다. Mi Quang 이라는건데 Mi는 국수, Quang은 다낭이 속한 province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지역 국수인건데 쌀국수라고 하면 그 뜨겁고 국물 많은 핫팟을 생각했던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친구가 말하기를 "여기선 그 뜨거운 pho는 아플때나 원기회복이 필요할 때 먹어"라고. 쩐지. 호텔 앞 현지식당에서 맨날 나만 쌀국수 먹더라. 땀 뻘뻘 흘려가며.

반쎄오 먹는 법도 자세히 배우고, 당장 한국으로 수입해오고 싶은 옥수수 우유도 먹었다. 아직도 매일 생각남 이거...

노상에 앉아 잭푸룻과 코코넛 과육이 들어간 달콤한 디저트 수프도 먹었다. 진짜 여기 사람들처럼 오토바이에서 내려 헬멧을 걸쳐두고 작디 작은 길바닥 의자에 앉아 열대 과일을 씹고 있자니, 정말이지 현지인이 된 것 같았다. 베트남어의 활기찬 선율도 조금이나마 따라할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여행자의 신분으로 이 정도 흉내낸 것만으로도 뜻깊었다. Thank you Huy!


길 위에서 만나요!

내가 유튜버로 활동했던 여행 회사를 그만두며 팬들에게 했던 인사였다. 나는 이곳에 합류하기 이전에도 여행을 했고, 떠나더라도 또 여행자로 남을테니, 우리 언젠가 길에서 만나자고.


데 떠나지 못한 시간이 너무 길어지다보니 '여행자로서의 나의 정체성'에 자신감을 약간 잃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가는 여행을, 그것도 가족여행의 메카인 다낭을, 혼자 가도 정녕 괜찮을까? 나 여행 스킬 줄어든거 아냐? 나이 들어서 예전보다 감흥 없는거 아냐? 한국에서의 일상처럼 무기력해지면 안되는데. 재미없게 놀다오면 진짜 슬플거 같은데.


하지만 완벽한 기우였다. 다녀와서 감기로 앓아누울지언정 현지에서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잘도 쏘다녔고, 잘먹고 잘자고 많이 웃었다. 2년 반동안 나의 많은 부분이 변했지만 여행할 때 가장 즐거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걸 확인하고, 안도했다. 인생에서 뭐 하나 확실한 즐거움은 있어야 하는거니까. 언젠가 너무 힘이 들 때, 틀림없이 구원투수가 되어 줄.





다음엔 어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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