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버리세요.

고독과 동행

by 혜령

가방은 적을수록 좋다.

자주 이사를 다녔다.

생각해 보면 자주 시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엔 자주 떠난다.

늘 돌아오는 마음을 만나기 위한 것일까.

하나씩 두고 온다.

마음이건 물건이건 그곳에 두고 조금씩 가볍게 돌아온다.

아마도 다시 갈 수 있을 거라는 핑계를 만들어 두는 모양이다.

여행이 반복될수록 작아지는 짐가방의 무게에 이런저런 생각을 걸쳐둔다.

짐 싸는 요령이 늘었나.

이제 딱히 필요한 물건들이 줄었나.

아니면 가볍게 다니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것을 실전에서 느낀 것일까.

이사를 하면서도 얼마나 많이 버릴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된다.



강아지도 딱 한번 키워보고 끝이다. 사연이 너무 긴 이별은 두렵다. 추억이 깊어지면 이별이 더 힘들고 아프다.

하루 하나씩 버리기.

인연이건 물건이건 가지치기를 하는 모양이다.

무엇인가를 얻겠다고 가는 여행도 있지만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떠나는 여행도 있다.

어쩌면 버리고 싶은 무엇이 있어서 여행을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여행 중에 만나는 나는 일상에서는 보지 못하는 높이와 넓이를 가지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낯선 환경에서 처음 경험은 판단의 방식과 생각으로 해결해 나가는 날들이 어색하지 않다.


때로는 인종차별이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지만 그런 불쾌한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친절과 배려를 보여준다.


여행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동행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동행과의 감정적인 매듭이 꼬이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수개월 준비한 일정을 앞에 두고도 평생 한번 만나는 가대하고 화려한 정상에서도 더 이상 의미는 흐려지고 흑백의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고독은 최고의 동행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동행에게 감정의 매듭을 맡겨두지 않을 정도로 독립적인 자신을 유지해야 한다.

감정을 차갑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동행과의 감정이 다소 어려워지더라도 알맹이는 품고 버티지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고수하는 것과 같다.

내 감정을 지키고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감정을 인지하더라도 물러서서 관망하는 시간을 갖자.

때로는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의 감정은 장부에 적어두고 우선은 여행을 살려내야 한다.

결산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마디 만들기라고 말하고 싶다. 버린다고 기억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악몽이건 추억이건 대나무의 마디처럼 한 공간이 닫히고 단단한 둘레를 얻고 그 힘으로 다음칸을 향해 성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