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아들이 아니구만.

환영받지 못한 딸

by 연두빛초록

딸로 태어난 것이 죄가 아니거늘

91년, 나의 탄생은 그리 축복받지 못했다.


91년의 추운 겨울, 우리엄마의 새벽녘내내 길게 이어진 진통 끝에 나는

2.7kg의 건강한 첫째딸로 태어났다.


그 옛날에는 성별을 미리 판단할 수가 없었던건지

둘째 아들의 첫째아이의 탄생을 보러오셨던 친 할아버지는

내가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소식에

작은 며느리에게 '고생했다. 수고많았다. 많이 힘들테니 푹 쉬어라.'같은

덕담은 커녕, 얼굴도 보지 않고 발걸음을 뒤로 했다.


그 뒤로, 내가 더 많이 자라 말문이 트이면서

온갖 애교를 부리며 춤을추고, 노래를부르고, 반짝이는 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할아버지~ 사랑해요~ 보고싶어요~'라는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

할아버지는 나를 그리 반겨주지 않았다.

단지 내 성별이 '여자'였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었을 때 나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거부당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어린 나이에는 나의 탄생이 가족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김지영씨도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하는 삶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10년뒤에 태어난 나도 똑같은 대접을 받아야 했다니, 우리나라가 참 후진적이었다는 생각이든다.




아들 선호사상은 아직도 뿌리깊게 박혀있다.


우리 시어머니는 어느날엔가, 아이를 낳을거면 무조건 '아들', 그래도 '아들'을 고집하셨다.

아들낳고싶냐, 딸낳고싶냐 라고 물으시는 말에 우리 신랑은 눈치없게도 씨익 웃으며

'그래도 예쁜 딸이 좋지~' 라고 해버렸다. (말은 안했지만 저게 무슨 큰일날 소리인가 생각했던 나도 우습다.)

내가 태어나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는 '아들'을 그렇게나 중요시한다.


우리집엔 아직도 당연히 아들이 없다.

아직도 아들아들 하시는 할아버지께서는, 큰집의 둘째아들의 호적을 우리집으로 옮겨서

아들을 가지고, 유산도 사업도 물려줘야한다고까지 말씀하신다.

심지어 그 둘째아들놈은 그러면 좋겠다라고 까지 말하는데

아주 우리 딸 둘은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다.


그나마 요즘 젊은 부부들은, 예쁜 딸을 선호하는 추세이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이 땅의 많은 딸들이, 성별에 상관없이 탄생부터 인생 전반에서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