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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Dec 29. 2021

나의 소중한 오이친구에게

너와 함께면 어디든, 무엇이든

내가 가장 사랑하던 나의 친구 지수는 오이를 닮은 아이였다.

동글동글 통통하던 나와는 달리 길고 가늘고 여리여리한 어린이였다.

내 눈에 지수는 언제나 여성스럽고 귀엽고 예쁜, 동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아이였다.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도 사택안에서 함께 학교를 다니다 만났던 기억이다.


지수와 함께할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분명히 같은 나이, 같은 학년인데 어찌나 어른스럽게 느껴졌는지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날들이 많았다.

모든 행동에 망설임이 없었고, 우리엄마 말에 따르면 말을 어물어물 먹어대는 나와는 달리

아주 똑부러지게 말도 잘하는 친구였다.


우리는 같은 사택에 살고, 같은 학교를 다니며 동네 피아노학원도 함께 다녔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엔 처음으로 피아노 대회도 함께 나갔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할 수 있을정도로 소나티네를 외우고 또 외우고 몸이 외울 때 까지 연습했다.

대회 당일에는 화려한 드레스도 입고 난생 처음으로 진한 화장도 했었는데,

검은색 노랑색이 뒤섞인 드레스를 입고서 얌전한 단발을 엄마의 머리뽕으로 볼륨을 한가득 넣고 새빨간 입술을 두텁게 칠한 나와는 달리

순백의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공주님처럼 뒤로 늘어뜨린 모습은 마치 천사같아 부러움이 가득했다.

그 시절 함께찍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통통한 내 모습에 어딘가 숨고싶어지지만 이렇게 예쁜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지수는 언제나 예쁜 옷을 입고서 통통거리며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특히나 짧은 치마바지가 예쁘게 잘 어울렸다.

내생각엔 아마도 짧은 치마를 입히자니 하도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발차기를 해대는 통에

어머니께서 결국 치마바지를 입히신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지수는 그 치마바지를 입고서는 길고 가느다란 다리를 머리끝까지 차올리며 유연성과 파워를 자랑했다.

한번은 사택 빌라 집에서 내려가는 계단길에 하도 발차기를 해대기에

나는 "너 그러다가 발라당 넘어져서 크게 다친다. 얼굴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하고 엄마처럼 잔소리를 했지만

지수는 천연덕스럽게 넘어지면 데굴데굴 굴러서 빨리 내려가면 된다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뭐.. 더이상 할말이 없어서 그만두기로 했다.


한 번은 지수와 함께 우리아빠 회사 사무실 나들이도 다녀왔다.

나는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호피무늬 원피스를 입고, 지수는 시크하게 까만 자켓을 걸치고서

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에 그 시절 유행하는 두꺼운 머리띠를 쓰고 옥색 서류함이 놓여진 사무실에서 찰칵 사진을 찍었다.

그리 재미질 것도 없는 사무실 나들이었지만 지수와 함께여서 즐거웠는지 사진속의 나는 온갖 희한한 포즈를 행복한얼굴로 취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주 서로의 집에 놀러를 가곤했다.

지수네 가면 신기한 음식들을 처음 먹어볼 수 있었다.

바로 닭똥집이었다.

"닭똥집이라캣나?  닭 똥이 들어있는 주머니 아이가? 그걸 우예 묵노?"하고 묻는 내게

"일단 무 봐라. 진짜 쫄깃쫄깃하고 알캉알캉한게 맛있데이."하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능숙하게 후라이팬에 볶아주었다.

따뜻하게 볶아진 닭똥집에 매콤달콤한 소스를 찍어먹자니 천국이 따로없었다.

진짜 똥이 들어있던 주머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지만, 너무 맛있어서 깨끗하게 세척했으리라 믿고 그러거나 말거나 맛있게 먹었다.

하루는 우리끼리 참치김치 김밥도 싸먹었다.

대나무 김발을 펼쳐놓고 어수룩하니 밥을 한가득 펴 바르고는 참치를 푸짐하게 올리고 단무지와 계란지단, 시금치, 묵은지 등 갖가지 재료를 푸짐하게 얹고

야무지게 돌돌 말아서 고소한 참기름을 반짝반짝 윤이나게 바르고 화룡점정으로 깨까지 흩뿌렸다.

그런데, 지수가 김밥을 자를 생각은 않고 그대로 은박지에 싸더니 두줄을 들고 쪼르르 거실 TV앞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_? 뭐하려는 걸까?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내 앞에서 지수는 은박지 1/3을 돌돌 까더니 그대로 엄청 큰 김밥을 입에 넣고 왕 베어물었다.

눈을 감고 행복하다는 얼굴로 김밥을 음미하더니 "니도 무라"하면서 김밥 한줄을 건넸다.

"원래 김밥은 안짜르고 이래 통으로 먹는기 맛있다 모르나?" 하는 말에 나도 크게 한입 왕 베어물었다.

엄마가 얇게 잘라주는 김밥은 어딘가 아쉬웠는데, 한 입 가득 베어문 김밥의 만족감이 그렇게 클 줄이야...

엄청난 맛의 비밀은 아주머니의 김장김치가 최고의 비법이었다.

어떤 날엔 부추 비빔밥을 먹었다.

정말 말 그대로 밥과 부추만 들어간 비빔밥이었다. 계란 후라이도 하나 없이 무슨 맛이겠나 싶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집에선 언제나 고추장을 넣은 비빔밥만 먹어보았는데 쌈장을 넣어 비비기에 이건 또 무슨 조합인가 싶어 어벙벙 해있었다.

지수는 엄청나게 숙련된 솜씨로 부추를 씻어 탈탈 털고 칼로 숭덩숭덩 썰더니 커다란 양푼에 쌀밥 한가득, 부추 한가득, 쌈장과 참기름 한가득 넣고 비벼

또다시 와앙 한입 넣었다. 나도 얼른 숟가락을 가지고와서 와앙 한입 넣었다. 아니 부추랑 쌈장만 넣고도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 신기했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함께 식탁에서, 때론 TV앞에 앉아서 음식을 나눠먹었다.


6학년 되는 해에는 한가득 언니가 된 기분을 내러 둘이서 새로 생긴 롯데백화점에도 함께 갔다.

예쁜 치마를 사고싶었는데 치마 가격이 2만원 남짓이었고, 내 용돈도 딱 그만큼이었다.

교통비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집에서 출발해서 백화점까지 1시간 30분 거리를 왕복으로 걸었다.

정말 산넘고 물건너였다.

사택 단지를 나서서 초등학교 앞을 지나 동네 언니들이 많이 다니던 여자중학교 앞 문방구를 들러서 인도도 없는 고가차도를 건너건너 도착했다.

고가차도를 건널 때는 차들이 어찌나 쌩쌩 빠르게 뿌연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지, 우리가 미친짓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어쩌겠는가, 이미 출발했으니 도착지에 도달할 때 까지 부지런히 두 다리를 놀리는 수 밖에 없었다.

초여름의 더위가 아스팔트의 아지랑이를 만들어내는 동안 우리는 흠뻑 땀으로 젖은채 백화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드디어 눈에 점찍어두었던 미니스커트를 커플로 구입했다.

밥 먹을 돈도 없어서 쫄쫄 굶고는 다시 1시간 30분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힘들게 구입한 치마는 몇년이고 어느 계절이고 잘 입었으니, 걸어서 다녀온 가치를 충분히 다했다.


어느 해엔 지수네에 작고 귀여운 시고르자브종 강아지 한마리가 들어왔다.

까만 강아지였나..?

복슬복슬 부드러운 아기 털에 까만색 맑은 눈망울이 초롱히 예쁜 강아지였다.

아직 말랑말랑한 살이 느껴져 안아 올리면 그렇게 작고 소중할 수가 없었다.

강아지는 사람보다 체온이 높아서 그런지 그 온기가 더없이 따뜻했다.

그런데, 어느날 지수가 울면서 강아지가 밥도 안먹고 대자로 푹 퍼드러져 누워서 잠만 잔다고 이야기했다. 죽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싶어

바로 지수네 달려가서 강아지를 정성스레 쓰다듬고 물도 먹여주었다.

그날도 도저히 음식을 잘 먹지 못하다가, 강아지는 결국 무지개 다리를 건너버렸다.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던 강아지를 떠나보내려니 믿기지 않았고, 두고두고 몇달간 마음이 쓰라리게 아팠다.

너무 어린 시절만 살고 떠나버린 강아지가 떠난 이후엔 하늘나라에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있길 바란다.


그렇게 함게 행복한 시절을 보내다가, 내가 윗 지방으로 이사를 오면서 우리는 몸이 멀어졌다.

그래도 언제나 내 마음 속 한 켠엔 지수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나보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여유가 생기자 우리는 가끔 통화를 하고, 연락을 하기 시작했는데

몸과 마음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언제나 찬란하고 행복했던 우리의 초등학교 시절 추억을 떠올리곤 했다.

그렇게 잠시 옛날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다시 초등학생으로 시간이동해서 살고 있는 듯 했다.

잠시 행복한 시절의 나를 떠올리다보면 팍팍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이 고마웠고, 그 시간들을 누리게 해준 우리 부모님께 감사했고, 수없이 많은 추억들을 함께한 친구 지수에게 고마웠다.


한번은 내 동생이 미대에 진학을 했기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뛰어남을 걸작으로 남길 수 있을거라며

요즘 시대에 맞춰서 웹툰으로 그리자는 이야기도 했었다.

"우리는 스토리를 짤테니, 동생 자네는 그림을 그리게나."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느날엔간 가능하지 않을까 꿈꿔본다.


여전히 서로 몸은 멀리 떨어져있지만,

마음만큼은 바로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평생 서로를 위하고 의지하면서 살아간다면 참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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