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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Dec 28. 2021

잊지못할 크리스마스

소향을 만나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아침 일찍 교회로 향했다.
아침 8시부터 성가 연습을 하고, 9시부터 11시까지 유초등부 예배를 마치고나면
친구들과 교회 식당으로 앞다투어 달려가 아직 배식시작도 안한 주방 앞에 쪼르르 서서
턱받침을 괴고 배고파 노래를 불러대었다.
가끔은 우리 엄마도 교회 식당 봉사를 하곤 했는데, 집 주방이 아닌 교회 주방에 서있는 엄마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배고픈 우리를 위해 식사가 준비되기 전부터 친절하신 집사님들께서 빵과 우유, 요구르트 간식을 나눠주시곤 했는데
우리는 간식을 냠냠 먹으며 "밥먹기 전에 단거 먹으면 밥 맛 없다 ~ 밥 안먹으면 키 안커~"하는 잔소리가 뒤에서 들리건 말건
꺄르르 웃으며 금새 해치우곤 했다.
간식을 먹고나서 먹는 교회밥도 나는 참 맛있었다.
새하얗게 뽀얀 윤기가득 쌀밥과 빨간 고추장 멸치볶음, 쫄깃한 미역줄기볶음, 어묵볶음, 된장국은 언제나 최고의 반찬이었다.
고추장 한숟가락과 참기름 몇방울을 휘휘 두르고 슥슥 비벼서 먹고나면 세상 그 어떤 별미도 부럽지 않았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교회 뒷편 놀이터에서 한겨울의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리며 놀고나면
오후 기도회시간이 되어 다시 친구들과 모여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곤했다.

그렇게 언제나와 같이 소소하고 즐겁게 이어나가던 교회생활은 성탄절이 다가오면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는 매년 화려한 공연을 준비하곤 했다.
신나게 춤추며 노래부르는 성가대 합창부터 약 20-30분이 걸리는 성경구절을 통째로 외우는 성경암송대회,
동방박사가 별을 찾아 떠나는 연극, CCM노래에 맞춘 댄스공연, 어린이 오케스트라, 3-4명이 모여서 부르는 특송 등
다채로운 무대가 가득했다.
나도 언제나 3개 정도의 공연을 준비했다.
매 주 토요일마다 친구들과 교회에 모여 밤 늦게까지 연습하곤 했는데, 매 주 조금씩 늘어가는 실력이 뿌듯해서
매 주 가슴이 조금씩 더 펴지고 어깨는 한껏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한번은 지역대회에 특송팀으로 출전해서 1등 상을 타오기도 했는데, 그 때 맞춘 화음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성탄절이면 교회에서 맛있는 음식도 한가득 먹었다.
평소에 먹던 간단한 한식밥상도 정말 맛있었지만, 특식으로 나온 떡볶이와 김밥, 치킨까지 배부른줄도 모르고 먹었다.
예수님이 보신다면 아마 예수님 생일이 아니라 우리 생일파티한다고 삐지셨을 것 같이 우리끼리 즐거웠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성탄절 주일은 더욱 특별했다.
그 해엔 초등부 전도사님과 목사님, 성가대 팀들이 모두 모여서 저녁에 울산 시내공연을 구경하기로 했다.
붉은 저녁 노을이 하늘에 낮게 깔렸을 떄 쯤 우리는 울산 시내에서 가장 번화하던 삼산동으로 버스를 타고 떠났다.
가끔 친구들 한두명과 모여서 일년에 몇번 영화관을 가거나, 한 장에 5천원도 안하는 예쁜 티셔츠를 사고 돈까스를 먹기위해
갔던 동네인데 이렇게 많은 언니오빠친구들과 함께라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도착한 길거리에는 눈부신 크리스마스 조명들이 은하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동화속에나 있을 것 같은 아기자기한 장식물이 가득한 다른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온 기분에 몽글몽글 설레었다.
딸랑~ 딸랑~ 들려오는 구세군 종소리에 간식비로 쓰려고 아껴두었던 2천원을 흔쾌히 빨간 냄비 입구에 집어넣었다.
우리집에 있는 빨간 돼지 저금통이 배고파서 뾰루퉁해하진 않을까 잠시 걱정했지만,
이렇게 추운 겨울날 혼자서 힘들게 지내고 있을 친구들에게 내 간식비가 사용된다면 그것만큼 보람된 일은 없으리라- 하고 생각하니
이내 마음이 따뜻함으로 차올랐다.
그렇게 기부를 하고 돌아서는데, 하필이면 바로 앞길이 맛있는 길거리 음식이 가득한 포장마차 거리였다.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매콤달콤한 떡볶이, 따끈하고 부드러운 어묵, 바삭바삭 고소한 핫도그 냄새에 그만
방금 냄비에 넣은 2천원이 생각나고 말았다.
다시 빼올수도 없으니 저기 펼쳐진 온갖 간식들은 모두 그림의 떡이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간식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키가 180이나 되어서 20대 삼촌같이 보였던 중등부 오빠 하나가 다가와서
방금 갓 튀겨 따끈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커다란 못난이 핫도그를 손에 쥐어주었다.
얼마나 컸는지, 손에 잡자마자 휘청-하고 땅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다.
정성스럽게 설탕가루와 케첩까지 뿌린 황홀한 자태였다.
갑작스레 쥐어진 간식에 친구들과 나는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채로 한 입 한 입 나눠먹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핫도그 하나를 나눠 먹었을 뿐인데, 속이 든든해져 목도리를 벗어도 될 정도로 따뜻했다.
그 날 먹은 핫도그 겉에 울퉁불퉁히 붙은게 그떈 뭔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요즘 인기있는 감자핫도그에 붙은 감자였다.
(감자핫도그도 벌써 20살이 넘었다니 ...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 해 저녁에는 유명한 CCM가수가 성탄맞이 공연을 하러 찾아왔다.
아마 내가 기억하기론, 소향이었다.
합창시간에 어디선가 엄청난 노래가 들려오기에 우리는 연습하던 노래를 멈추고 가만히 귀기울여 들었다.
정말 천사의 목소리였다.
그 아름다운 천상의 목소리를 잊지 못하던 우리는, 그 노래를 들은 뒤로 매일마다 한번만 만나보면 소원이 없겠네~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추위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라 해도 몇시간이고 기다릴 준비가 되어있었다.
비보이 댄스팀과 어린이합창단이 지나가고 드디어 CCM가수, 소향이 나왔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리."
라는 가사가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내가 어떤 일을 겪어도, 누군가 한사람쯤은 내 편이 되어줄거란 생각에 마음이 따스해졌다.

유난히도 추운 겨울이었지만,
그 자리에 서서 목도리를 눈 밑까지 파묻히게 감고 몰아쉬는 숨에서 내뿜는 입김처럼 마음이 따스해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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