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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Dec 21. 2021

배부른100원의 행복

90년대 간식의 추억

일주일 용돈 2~3천원을 받던 초등학생 시절은 무럭무럭 자라나는 때여서인지 밥을먹고서도 언제나 배가 고팠다.

그러니 받은 용돈은 고스란히 군것질거리에 사용했다. 앵겔지수가 100%도 넘었던 그 시절 추억의 간식을 떠올려본다.


하교시간이면 언제나 학교 앞은 갖가지 군것질 음식을 파는 매대로 가득찼다.

요즘 오징어게임에 등장해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는 달고나도 그 주인공 중 하나다.

서울에서 달고나 한 장에 5천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그 당시 달고나는 200원이면 먹을 수 있는 달콤쌉싸름한 간식이었다.

작고 귀여운 국자에 설탕 2-3숟갈을 소복히 담고 가스불에 올려 살살 녹인다음, 마지막에 소다를 젓가락으로 두어번 콕콕 찍어 넣어 휘저어주면

투명했던 설탕물이 불투명한 황토색 달고나색으로 변하는게 제법 신기했다. 설탕이 녹는 냄새는 어찌나 달콤하고 진한 향수같았던지,

교문 밖을 나서기 전 부터 달콤한 냄새를 맡은 침샘이 고여 오늘 달고나 아주머니가 오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달고나가 타버리기 전에 납작한 판에 '탁탁'하고 국자를 털어내서 얼른 동그란 판으로 눌러주고, 예쁜 모양틀로 꾹 찍어내면 '짜잔-' 달고나 완성이었다.

우리는 곱슬곱슬한 파마머리에 알록달록한 꽃무늬 몸빼바지를 입고 고무제형의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 앞에 놓인 빨강 파랑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그 모양틀을 고이 떼어내보겠다고 혀로 핥고, 손톱이나 바늘로 긁어뜯곤 했다.

예쁜 모양을 그대로 떼어내면 무려 무료 달고나 상품 하나를 받을 수 있었으니, 한국인의 1+1 사랑은 그때부터 열성적이었던 듯 하다.

별모양이며 하트모양이며 하루에 두어번은 완벽하게 모양을 떼어내는 학생들이 나오곤 했다.

성공한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나 떼어낸 달고나를 자유의 여신상처럼 치켜들곤 했는데,

그 때마다 주위의 모든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립박수를 쳤다.

달고나 아주머니도 환하게 웃는 웃음으로 상품 달고나 하나를 비닐에 고이 넣어 '성공'이라는 단어를 매직으로 써서 선물처럼 주시곤 했다.

어느시점 부터는 달고나 아주머니가 오시지 않고, 문방구 앞에 달고나 기기가 생겼었는데, 자주 고장이 나거나 청소 상태가 안좋아서

결국 먹고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집에서 달고나를 시도하다 온갖 국자와 그릇을 다 깨먹곤 엄마에게 크게 혼나곤 했다.


달고나 다음으로 인기있던 학교 앞 간식은 단연 나뭇가지에 실처럼 날아든 솜사탕, 하얀 눈처럼 희고도 깨끗한 솜사탕이었다.

동요 가사 그대로 엄마 손잡고 나들이갈 때나 떼를 써서 먹어볼 수 있던 솜사탕이었는데, 학교앞에서 사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가!

솜사탕은 300원-400원으로 달고나보단 비쌌지만, 괜히 분홍빛으로 풍성한 그 모양과 푸짐한 양이 좋아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우리 학교 앞 솜사탕아저씨는 먹지 않은 하얀우유급식을 그대로 가져오면 솜사탕으로 바꿔주시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솜사탕아저씨가 오시는 날이면 교실 위 모든 책상위에 하얀 서울우유가 그대로 남아있곤 했다.

그리고 하교길에는 솜사탕 아저씨 뒤로 수십개의 서울우유가 줄을 빼곡히 서 있었다.

용돈이 없어도 우유만 가져가면 먹을 수 있는 간식이었으니, 그 달콤함은 두배, 세배가 되었다.


학교 앞 간식 중에 가장 비쌌던 간식은 알록달록한 별사탕같이 스프링클이 가득 뿌려진 초코바나나였다.

분명 집에서도 자주 먹는 바나나인데, 알록달록 초코 옷 하나 걸쳤다고 어찌나 비싸고 맛있어보였던지...

초코바나나는 하나에 무려 천원이나하던 부르주아 간식이어서 감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가끔 자랑스럽게 "여기, 초코바나나 하나 주세요. 스프링클은 하트모양으로 주세요."라고 당당히 주문하는 부잣집 딸래미들을 볼때면

한껏 부러운 눈으로 먹는 내내 쳐다보곤 했다. 사먹는 아이도 우쭐하면서 아주 천천~히 초코 바나나를 한 입 한 입 떼어먹었다.

초코 바나나 하나만 있으면 한입만달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괜한 심부름과 개인기를 주문할 수 있는 절대반지같은 특권도 누릴 수 있었다.

너무 비싸서 잘 팔리지 않자, 아저씨는 바나나 반개를 500원에 파는 아이디어를 가져오셨는데,

나는 그제서야 떡볶이 몇일을 참은 용돈으로 작은 초코바나나 반개를 사먹어보았다.

솔직히 정말 별로 맛이 없었다. 원래 바나나는 엄청 달콤하고 부드러운데, 딱딱한 초콜렛을 입으니 부드럽지도 않고, 스프링클은 먹으면 안될것만 같은 식감에

바나나의 단 맛은 묻혀버리고, 초콜렛도 그닥 맛있지가 않았다.

비싸다고 다 맛있지는 않구나, 화려하다고 다 맛있지는 않구나,를 그 때부터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한번 먹어보니 우쭐 하면서 초코바나나 한개를 통째로 사먹는 아이들이 더이상 부럽지 않았다.


우리 학교에서 육교를 건너 길 건너로 향하면 우리가 단골로 가는 맛있는 분식집들이 있었다.

300원짜리 컵떡볶이를 주문하면 말랑말랑한 밀떡에 쫄깃한 어묵을 컵 한가득 먹을 수 있었다.

학교 앞 간식은 바로 사먹을 수 있어 간편하지만, 역시 떡볶이는 큰길을 건너오는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매일 먹고싶은 최고의 맛이었다.

물엿을 많이 넣어서 찐득하고, 행여 매울새라 케첩을 넣어서 새콤달달한 빨간 떡볶이는 국물 한 방울도 남기기 아까웠다.

가끔 떡볶이가 질릴때면 400원짜리 피카츄돈까스를 사먹었다.

공장에서 간단하게 제조된 납작한 피카츄돈까스는 나무젓가락에 꽂힌채로 튀김기로 퐁당퐁당 들어갔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피카츄돈까스를 먹었었냐면, 커다랗고 동그란 튀김기에 더이상 피카츄돈까스가 들어갈 자리가 없이 빼곡히 튀겨도

20-30분을 기다려야만 먹을 수 있는 날도 있었다.

뜨겁게 튀겨진 피카츄 돈까스 위에 매콤달콤한 소스를 한가득 바르고 한입 베어물면, '바삭'한 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따끈한 돈까스 튀김이 일품이었다.

지금도 가끔 꼬마돈까스를 집에서 튀겨먹을때면, 그 시절의 피카츄 돈까스 맛이 그리워진다.

전국에 파는 줄만 알았던 쫀드기 튀김은 알고보니 경상도 일부지역에서만 판매하는 특식이었다.

쫀드기를 뜨거운 기름에 튀겨서 라면스프를 뿌려먹으면 정말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쫀드기 튀김에 고소한 기름맛과 매콤짭짤한 라면스프라니... 온 얼굴에 라면스프가 묻는지도 모르고 신이나게 뜯어먹었다.

짠맛이 강해서 먹고나면 물을 엄청나게 많이 먹게 되었지만, 그 강력하고 자극적인 맛을 한번 보면 절대 한번만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분식집 위로 올라가면 정말정말 맛있는 김밥집이 하나 있었다.

그 집 김밥의 비결은 단무지를 넣지 않는 것이었다.

그 대신, 당근을 단무지처럼 절여서 한가득 넣어주셨는데, 지금까지도 그만큼 맛있는 김밥은 먹어본 적이 없다.

어른이 되어서 고급스러운 참치회 연어회들이 들어간 마끼김밥같은걸 사먹어보아도, 그 시절 그 김밥맛은 느낄수가 없으니...

사장님이 어디 살아 계신다면 비법을 전수받아 체인점을 내고싶을 정도다.

인기가 많은 탓에 하교 후 빨리 뛰어가지 않으면 금방 동이나 돈을 모아도 먹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그 김밥집에서 아이들에게 더 인기가 많았던 간식은 바로 와플이다.

따뜻하고 바삭한 와플에 사과잼과 생크림을 한가득 발라서 와삭 베어무는 와플은 반쪽에 600원이나 할만큼 비싼 음식이었다.

얼마나 먹고싶었으면 우리는 200원씩 3명이 모아서 하나를 사서 정확히 3등분해 나눠먹곤 했다.

요즘 대학와플이 생겨서 언제든 먹을 수 있는데, 다양한 메뉴에 행복한 고민을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가장 좋은건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나는

사과쨈 생크림 와플이다. 그 시절 맘껏, 양껏 먹을 수 없어서였는지, 지금은 아주 저렴한 간식이지만

먹을때면 언제나 성공한 부자의 기분이 든다.


용돈이 거의 다 떨어져갈때면, 위에 있는 간식들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 대신 우리가 향하는 곳은 언제나 학교 길 건너의 문구점들이었다.

분명히 문구용품을 사러 가야하는'문구점'이지만 사실상 그 시절 아이들에게는 '간식판매소'같은 역할을 할정도로 맛있는게 많았다.

어른이 되어 술먹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맥주모양 사탕 100원,

몇번만 핥아도 혀와 입술이 파랗게 물들어 결국 학교에서 금지되었던 페인트사탕 100원,

100원도 없어서 가끔 사먹었던 50원짜리 설탕사탕은 사각거리는 식감으로 베어물면 사르르-녹아없어지곤 했다.

돌돌 떼어먹으면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 사라지던 테이프 100원,

군것질 아니고 비타민 먹는거라고 우기면서 엄마가 뺏으려던걸 째려보며 휙 뺏어냈던 노란 스마일사탕 100원,

스마일사탕처럼 환 모양으로 생겼던 동그랗고 작은 콜라맛 사탕 100원,

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결국 충치를 불러냈던 콜라맛 젤리와 초코맛 젤리, 포도젤리도 100원,

손바닥으로 돌돌 돌리면 깔끔하게 떨어져나갔던 아폴로도 100원,

이가 아픈줄도 모르고 아득아득 씹어먹던 꾀돌이와 밭두렁도 100원,

100원의 행복이 가득한 천국같은 곳이었다.


요즘 90년대를 재현해둔 추억의 공간들이 있는 관광지에 가보면, 우리가 100원에 사먹던 간식 3종을 모아서 2~3천원에 팔곤하는데,

물가는 그만큼 올랐지만, 왠지 개당 천원은 용납되지가 않는 그 때 그시절 옛사람이 되어버린 나는 차마 사먹지를 못하겠다.

그 과자들을 볼때면, 딱 내일 하루만 그 시절로 돌아가서 먹고싶은 옛날 간식들을 한가득 사와서 간식파티를 열고싶은 마음이든다.


물론 양이 많긴 하지만, 배달떡볶이 배달팁까지 총 18,000원하는 요즘,

코묻은 용돈 몇푼으로 한가득 배를 채울 수 있던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 때 그 간식을 같이 먹었던 친구들은 어디선가 모두가 행복하게 지내고있길.

21년이 힘들었다면 22년은 그 때 처럼 큰 고민없이, 작은 간식 하나에도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길. 더욱 더 따뜻하고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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