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나의 찬란히 빛나던 90년대
실행
신고
라이킷
16
댓글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연두빛초록
Dec 20. 2021
달콤한 포켓몬빵의 추억
띠뿌띠뿌씰 모으기 프로젝트
90년대까지 한국에서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모든 이들은 한번쯤 먹어봤을 전설의 그 빵.
국진이빵부터 포켓몬빵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띠뿌띠뿌씰을 추억한다.
60년대에 태어난 부모님 세대가 예쁜 여자 연예인들의 사진을 인쇄한 책받침을 모았다면
90년대에 태어난 우리는 세일러문같은 만화캐릭터가 알록달록하게 그려진 책받침에 촘촘히 띠뿌띠뿌씰도 모아나갔다.
SBS에서 처음으로 포켓몬스터라는 만화영화가 방영되었을때를 잊지 못한다.
삐죽삐죽한 번개머리를 한 지우라는 주인공이 포켓몬 박사님을 처음 만나고,
파트너로 작고 통통한 노랑피카츄를 만났을때,
서로 친해지기 전까지 도도한 피카츄는 지우에게 전기 빔을 쏴서 다 태워버리거나 감전시키곤 했는데,
토끼도 쥐도 아닌 피카츄의 생김새가 어찌나 귀여웠는지,
실제 세계에 포켓몬이 존재한다며 누구든 피카츄 한마리는 필수로 꼭 입양하고 싶어할 정도였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새롭게 등장하는 물, 불, 풀, 땅, 속성 등의 포켓몬들에 눈이 반짝이기도 했다.
알록달록한 계란을 쓴 채 짧은 팔다리가 매력적인 토게피에 한눈에 반해
옛날 천리안 나우누리 인터넷을 쓸 때 아이디를 몇년동안이나 토게피로 하기도 했고,
노래만 하면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잠에 빠지게 하는 푸린은 반짝이는 눈과 동그랗고 분홍색인게 마음에 쏙 들어
지루한 수업시간이면 선생님 몰래 노트에 그리기도 했다.
(요즘같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밤이면, 가장 필요한 포켓몬은 푸린이리라.)
로켓단과 냐옹이라는 악역을 물리치기 위한 정의로운 싸움을 보면서
우리는 마치 나도함께 정의로운 포켓몬 친구가 된 듯 매 회차마다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노래는 또 얼마나 신났는지,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버터풀 야도란 피존 또도가스 서로 생긴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 ! 맞아~"라는 멜로디와 가사는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곡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포켓몬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포켓몬 빵이 전격 출시되었다.
동네 슈퍼, 문구점 어디를 가도 매대 맨 앞에 진열될만큼 몇년간 인기를 끌었다.
요즘 유행하는 맛집은 몇달이면 시시해져 파리가 날리지만, 그시절 포켓몬빵의 인기는 사그러들줄 몰랐다.
가장 좋아했던 빵은 단연 로켓단의 초코롤빵!
얇은 초코빵 사이사이 한가득 초코크림과 초코칩을 발라서 돌돌 말아둔 모양이었는데,
그 동글동글한 모양도 예쁘지만 맛은 정말 최고였다.
상상이상으로 촉촉한 빵 사이에 진하고 달콤한 초코크림을 한입먹고서 하얀 우유로 시원하게 입가심을 하면 당이 확 차오르는게 세상을 다 가진 맛이었다.
한입에 앙! 베어 먹는 것도 좋았지만 얇은 빵 한겹 한겹 조금씩 벗겨먹는 재미도 있었다.
가끔 고소한게 먹고싶을때면 이브이의 미니땅콩크림샌드도 자주 찾았다.
이브이의 초롱초롱한 두 눈과 양갈래 머리를 위로 한 듯한 생김새의 귀,
마치 우리집에 있는 귀여운 강아지 같은 털의 결까지 그려져있는게 마음에 쏙 들었다.
사실, 맛있는 빵도 좋았지만 빵봉지 안에 빵과함께 들어있는 띠뿌띠뿌씰을 종류별로 모으는게 가장 큰 목표였다.
피카츄, 파이리, 꼬부기, 이상해씨, 이브이가 나올 때 까지만 모아야지 ! 라고 나름대로 띠뿌띠뿌씰 5대천왕을 정해놓고 시작했던 일이
5대천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스티커씰이 나와주지않아서 점점 규모가 커져갔다.
결국 마지막엔 책받침 양면을 빼곡히 채워 2.5장이 나올정도로 다 모았는데,
행여나 스티커가 떨어질까봐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도 못하고,
이 책받침들은 향후매년 방 정리를 하면서도 절대 버릴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띠뿌띠뿌씰을 모으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역시 5대천왕 스티커를 획득했던 때다.
그 중에서도 역시 단연 피카츄 ! 피카츄 스티커는 몇장이고 계속 나와도 반갑기만 했다.
동네 아이들 중에서는 피카츄 스티커가 총 몇장있는지 서로 대결을 하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로 진귀한 것이었다.
가장 슬플때는 역시 못생긴 포켓몬이나, 잘 알려지지않은 인기없는 포켓몬 스티커가 몇번이고 반복해서 나오는 때였다.
나는 모다피가 얼마나 많이 나왔었는지, 나중에 정리할 땐 모다피 스티커로 한줄을 다 채울 지경이었다.
노란 옥수수같이 생겨서 애정을 줄까 싶다가도, 작은 눈과 멍청하게 벌리고 있는 입을 보자면 참 정이가지않는 녀석이었다.
우리는 좋아하는 띠뿌띠뿌씰을 모으기 위해서 온갖 편법을 사용했다.
빵 봉지 그림에 가려져있는 씰을 보려고 씰 위치를 옮기기 위해서 빵봉지를 조물락대다가 슈퍼 아저씨에게 큰 호통을 듣길 여러번,
엄마아빠가 힘들게 벌어다 준 용돈으로 빵을 사서는 씰 스티커만 가지고 빵을 버리는 못된 행동까지 서슴치 않았다.
공정상의 문제였겠지만, 가끔 씰의 실루엣을 한눈에 보여주는 빵이 있는 날엔 엄청난 행운을 만난 기분이었다.
파이리 스티커는 파이리빵에 가장 많이 들어있지 않을까 싶어서
파이리 빵만 여러개 사다가 빵 봉지를 다 뜯어놓곤, 공기를 만나 바싹 말라버린 퍽퍽한 빵을 먹다 질려 버리기까지 했었으니
그 스티커가 그 시절 우리들 마음에 얼마나 큰 존재였는가 싶다.
빵을 살 때 마다 띠뿌띠뿌씰은 조심조심히 고이 책받침에 옮겨 붙이곤 했는데,
가끔 이름스티커나, 얇은 꼬리가 있는 포켓몬스티커가 뜯어져서 모양이 틀어지는 날엔 얼마나 마음이 속상했는지 모른다.
포켓몬 스티커 하나에 함박웃음을 짓고, 속상한마음을 하고, 그 왔다갔다 하는 어린마음이 사실은 엄청나게 유치하고 작은 마음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작은 것 하나에 세상을 가진 듯 행복할 수 있었던 그 어린마음이 사실은 가장 큰 마음이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큰 마음.
지금 내게는 그런 포켓몬스티커같이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나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는 나의 사랑스러운 신랑,
먼지도 없이 햇살이 내리쬐는 맑은 날의 하늘과 선선한 공기,
여유로이 커피한잔 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
사시사철 공원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꽃들과 사철나무들.
오랜만에 연락해도 반갑게 연락을 받아주는 나의 친구들.
힘든 이야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나의 친구들.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작은 행복이 가득모여 큰 행복이 되는 삶이 되길 또 한번 기도한다.
keyword
성장일기
포켓몬
추억
연두빛초록
소속
추억의힘을믿는
직업
작가지망생
추억의 힘으로 현재를 살아나가는 모두에게 공감, 위로의 글을 전합니다.
구독자
74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수포자의 길
배부른100원의 행복
매거진의 다음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