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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빛초록 Apr 19. 2022

메릴다 머리를 나부끼던 90년대

90년대 나의 헤어스타일

태어나서부터 귀밑 3cm 두발 규제가 있던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참 많은 머리스타일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모발부자였으니, 초음파를 보고 있자면 너울거리는 머리가 한가득이었단다.
그렇게 머릿털을 한가득 까맣게 가지고서 태어날거란 기대를 한몸에 받던 아이는
알고보니 가운데만 텅 비고 나머지 부분만 빽빽한 사장님 머리를 한 갓난아이였다.
엄마는 내 가운데 머리가 영 자라지 않을까봐서 걱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워낙에 잘 먹고 자라서인지 금새 머리가 빽빽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몸에 열이 많아 하루종일 뽈뽈 기어다니다보면 머리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곤 했는데,
그 덕에 언제나 내 머리는 소가 핥은 머리였다.
여기저기서 예뻐하는 손길에 넘겨진 머리는 마치 케이크 머랭을 이리저리 뾰족하게 모양을 낸 듯 했다.


이리저리 핥은 머리를 하곤 방바닥을 열심히 기고, 뒤집기를 하다가 어느날엔간 드디어
머리를 가누고 아기 의자에 앉을 수 있게 되었고, 그즈음부턴 성장의 증표로 사과머리를 하기로 했다.
더 촘촘하고 길게 자라난 머리는 아기 고무줄로 묶기에 제법 적당한 양이 되었다.
사과머리를 분수같이 묶은 나는 집안 여기저기를 아장아장 뒤뚱뒤뚱 걸어다녔다.
그러다가 엄마가 틀어놓은 동요소리가 들리면 하나 둘 하나 둘 주춤주춤 리듬을 타며 춤을 췄다.

두돌이 지났을 때 쯤에는 슬금슬금 어른들의 음식을 겁도없이 손으로 확 움켜잡아 맛을 보곤 했는데,
제법 마음에 들었었는지 고소한 밥냄새가 주방에서 풍겨올때면 제일 먼저 밥상앞에 가서 앉아있는 사과머리 아기였다.
세살 어린이가 물에 씻어내지도 않은 빨간 어른의 김치를 하얀밥에 척척 얹어 먹는게 신기했는지
동네 아주머니들은 내가 밥을 맛있게 먹는다며 밥 때마다 우리집에와서 내 밥먹는 모습을 구경하다간 머리를 한번씩 쓰다듬고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 실내 걸음마를 마치고 유모차 없이 바깥 나들이가 가능해 졌을 떄 쯤엔
내 사과머리도 자라서 얌전한 생머리똑단발이 되었다.
엄마가 드라이를 해주면 바깥쪽으로 둥그스름하게 말리는 머리 모양에 숙녀가 된 듯해 마음에 쏙 들었다.
눈썹 선에 맞춰 귀엽게 자른 앞머리는 여러가지 머리핀과 머리띠에 찰떡궁합이었다.
그 시절 3대 초반이 된 우리 엄마도 나처럼 똑단발을 했다.
엄마와 나는 똑같은 머리에 똑같은 커플 머리띠를 쓰고 봄꽃 구경도 하고
똑같은 밀집모자에 검정색 A라인 원피스를 입고서 서울대공원에 가서 코끼리열차도 타고, 우아한 홍학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엄마랑 내가 똑 닮은 모습이라니, 엄마를 바라볼 때 마다 마음에 행복이 챠르르 퍼져 따스했다.

얌전한 똑단발 아가씨는 또 다시 자라서 절대 걸어다니지 않는 흑석동 골목길 폭주족이 되었다.
분명히 세발 자전거인데 커브길에서는 두발 자전거가 될 정도로 질주하고,
한쪽 발 도움닫기를 쉬지않고 굴리며 씽씽이를 타거나,
탈 것이 없으면 튼튼한 두 다리를 믿고 온 골목을 두다다다 뛰어다녔다.
그즈음엔 나도 폭주라이더 같은 긴생머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가져본 긴 생머리는 골목을 뛰어다니다보면 하염없이 엉켜있어 거센 엄마의 빗질에 머리와 목이 다 넘어오도록 힘들긴 했지만
얌전히 구두를 신고 노란 꽃무늬 원피스를 입는 날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머리였다.
곱게 긴 생머리에 진분홍색 벨벳 꽃머리띠를 쓰고, 레이스 양말과 엄마가 큰 맘 먹고 사준 랜드로버 구두를 신고 거리를 나설 땐
세상에서 가장 청순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엄마도 예쁘게 나를 꾸며주는게 좋았던지 시장에서 온갖 머리핀과 고무줄을 사다주었다.

그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머리 고무줄은 투명한 하트모양 통 안에 반짝이는 플라스틱 구슬이 들어있는 것이었는데,
내가 뛰어다닐때 마다 '찰찰찰~'하고 소리가 나는게 탬버린 소리 같아 좋았다.

초등학교 입학식 전에는 드디어 하고싶던 파마를 했다.
요즘 스타일로 따지면 히피펌이었다. 아주 긴 파마머리에 앞니 두개가 쏘옥 빠져서는
앞니에 바람드는줄도 모르고 입을 헤~벌려 웃으며 쏜살같이 뛰어다녔다.
모두가 신기해하는 자연갈색꼬불머리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마치 메리다 같았다. 
매일같이 긴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는게 보기싫었던지 엄마는 어느날 부턴가 내 머리를 질끈 높이 묶어주기 시작했다.
얼마나 세게 당겨 묶었던지, 눈이 위로 뾰족 찢어져 올라가있는게 1, 2교시까지도 얼얼했다.
그렇게 세게 묶어주었지만, 그 당시 나의 머리숱은 어른의 손으로 잡아도 한손에 잡히지 않는 수준으로 많았으니,
오후에 접어들면 머리가 이리저리 삐져나오거나 고무줄의 장력이 다해 끊어져 버렸다.
그렇게 엉망이 된 머리를 하고선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학교에서 뛰놀고, 동네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며 땅따먹기며 온갖 놀이를 하고 뛰어놀았다.
분명히 하나로 세게 묶어주었던 머리는 집에 돌아오는 저녁이 되면 해그리드처럼 산발이 되어있었다.
이리저리 풍성하게 펼쳐진 파마머리 사이사이론 나뭇가지나 나뭇잎까지 더러 걸려있었으니 누가보면 덩굴에 숨어도 못찾을 변장을 한줄 알았을 것이다.

긴머리 인생을 사노라면 꾹 참아야 할 것이 몇가지 있었다.
머리숱 부자라 30분간 드라이를 해도 도무지 완벽건조가 되질 않았으니,
겨울 아침 등교길에 머리를 감고서 교실에 도착하면 머리는 두피부터 끝까지 얼어 있었다.
분명히 엄마가 예쁘게 앞머리도 정리해줬었는데, 얼었다 녹은 머리는 언제나 떡진 머리로 돌아갔다.
겨울은 잠시니까 금방 지나가서 괜찮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있었다.
진짜 문제는 사계절 동네 남자아이들이 머리를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말 꼬리 같다고 놀리면서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를 어찌나 세게 당겼던지,
어느날에는 상해버린 머리를 당겨서는 머리가 한웅큼 빠져서 마치 고양이가 토해낸 털뭉치 같았다.
결국 나의 터져버린 울음에 담임선생님이 호되게 혼내주시기는 했지만, 이미 빠져버린 머리는 돌아오지 않아 슬펐다.

이러한 고충에도, 나는 긴 머리를 좋아했다.
단발머리라면 대충 드라이를 하고 머리띠, 머리핀 하나만 꽃을 수 있다면
긴머리로는 양갈래머리도 하고, 땋은 머리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다.
머리숱이 많아서 양갈래 땋은 머리가 안되어서 세갈래로까지 땋을 수 있었다.
벼머리가 유행하던 때에는 머리 양쪽으로 벼머리를 해도 될만큼 길어서 친구들이 언제나 내 머리를 부러워했다.
머리를 땋은 날에는 가끔 아주 작은 꽃모양 집게 머리핀을 머리 중간중간 꼽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내 머리가 아주 화려한 화원이 된듯 해 종일 기분이 꽃밭에 가있는 듯 즐거웠다.

나의 수많은 머리를 매일 아침 매만져주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헤어스타일리스트 엄마에게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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