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키보드 위의 에티켓: GG, GL, HF의 문화사

게임 속 짧은 인사말이 만들어낸 디지털 시대의 매너

by 신영

세상에는 많은 인사말이 있다. "안녕하세요", "Hello", "こんにちは". 그런데 이 영어 단어만큼 묘한 인사말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GL HF"


이 인사말의 특별함은 바로 그것이 사용되는 순간에 있다. 국민 민속놀이인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어보자. 대기실에서의 긴장되는 5, 4, 3, 2, 1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인게임 화면으로 전환된다. 일꾼에게 자원 채취 명령을 내리는 바쁜 마우스 클릭을 마치고, 엔터키를 눌러 키보드 타이핑을 통해 "GL, HF"를 입력한다. 상대방 역시 동일한 메세지로 답한다. 게임이 진행되고 승리 또는 패배로 게임의 종료가 임박했을 때, 또 다른 두 글자가 화면을 수놓는다.

"GG"


게이머들은 왜 이러한 의례를 가지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참 기이하다. 서로 전투를 벌이고, 기지를 파괴하고, 승리를 위해 깃발을 빼앗는 디지털 전쟁터에서 왜 사람들은 예의를 차리려 하는 것일까? 더구나 상대방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앞으로 다시 만날 가능성도 희박한 익명의 사람들끼리 말이다.


이는 마치 축구 경기를 시작하기 전 선수들이 악수를 나누고, 경기가 끝난 후 다시 악수하는 것과 비슷하다. 축구장에는 심판이 있고 관중이 지켜보고 있지만, 온라인 게임에서는 그 누구도 "GL HF"와 "GG"를 강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이 작은 의례는 어느새 게임 문화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GG' 'GL', 'HF'라는 세 가지 약어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의 디지털 삶에 어떤 색채를 더하는지 알아보려 한다. 단지 키보드 몇 번의 타이핑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 게임에 대한 열정, 그리고 디지털 문화의 본질이 담겨 있다.


GL HF GG는 어디서 왔을까?

먼저 "GL HF"와 "GG"의 정확한 의미부터 살펴보자. GL은 "Good Luck(행운을 빈다)"의 약자이고, HF는 "Have Fun(즐겁게 놀자 또는 재밌게 플레이하자)"의 약자다. 두 표현은 보통 함께 쓰여 게임 시작 전 상대방에게 건네는 인사말로 자리 잡았다. GG는 "Good Game(좋은 게임이었다)"의 약자로, 주로 게임이 끝날 때 상대방의 플레이를 인정하며 패배를 선언할 때 사용한다.


이 용어들의 첫 등장은 언제일까? 스타크래프트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1997년 퀘이크월드(Quakeworld)에서 이미 "gl"과 "gg"를 사용했다는 증언이 있으니, 스타크래프트(1998년 출시)보다 조금 앞선 셈이다. 이 용어들은 원래 오프라인 스포츠에서 경기 전후에 나누는 악수와 격려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경기 시작 전에는 "행운을 빈다, 재미있게 즐기자"라는 뜻으로 GL HF를 주고받고, 종료 후에는 승패와 상관없이 "좋은 경기였다"라는 의미로 GG를 말하며 스포츠맨십을 표하는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클랜베이스나 퀘이크넷(QuakeNet) 같은 초창기 게이밍 커뮤니티에서 이 표현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빠르게 입력해야 하는 온라인 채팅 환경에서는 긴 문장을 줄여 약어 형태로 정착되었다. 아마 90년대 말 온라인 게임이 대중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관행일 것이다. 마치 언어가 그렇듯,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필요에 의해 생겨나 점차 널리 퍼진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인사말 "안녕하세요"나 "Hello"도 누가, 언제, 어디서 처음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GL HF"와 "GG"도 마찬가지다. 이는 이 표현들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발명품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임을 시사한다. 사용자들의 필요와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진화해 온 살아있는 언어다.


스타크래프트와 한국: 디지털 예절의 전파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스타크래프트 초창기에는 한국어 지원이 되지 않아, 게임 내에서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했다. 해외 플레이어들과 래더(ladder)에서 경쟁하던 한국 유저들이 자연스레 그들의 에티켓을 흡수하며 이 문화가 국내에도 전파되고 자리 잡게 되었다. 재밌는 점은 이후 한국어 패치가 되었음에도 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임의 시작과 끝에는 "GL HF"와 "GG"로 영어로 소통하고, 그 외의 채팅은 한글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 현상은 언어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사례다. 사회언어학에서는 '코드 스위칭'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이중 언어 사용자가 상황에 따라 언어를 바꿔가며 사용하는 현상을 말한다. 한국 게이머들이 게임 시작과 종료 시에만 특별히 영어 약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의례적 코드 스위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 표현들이 단순한 언어적 소통 수단을 넘어 특별한 문화적 의미를 갖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스타크래프트의 대기방에서 카운트다운 후 게임이 시작되면 초반에 "GL HF"를 주고받는 관행이 자리 잡았고, 게임이 끝날 때는 패배를 인정하는 쪽에서 먼저 "GG"를 입력하는 것 역시 일종의 매너로 정착되었다. 스타크래프트의 게임 디자인상 마지막 건물이 파괴될 때까지 게임이 끝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승산이 없을 때 패자가 GG 선언을 하고 나가는 것이 일종의 매너(예의)로 여겨진 것이다. 마치 중세 기사들이 대결 전에 서로 투구를 살짝 들어 올려 인사를 나누고, 승부가 끝나면 패자가 먼저 상대를 칭송하던 것과 비슷하다. 이런 예법이 디지털 시대에 다시 등장한 셈이다.


프로게이머들은 공식 경기에서도 채팅으로 GG를 입력하며 항복 의사를 밝히는 것이 의무적일 정도였고, 승리한 쪽도 상대의 스포츠맨십에 답례하는 의미로 "GG"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반대로, 경기에서 지고도 GG를 치지 않고 나가버리는 행동은 "노GG" 혹은 "GG도 안 치고 나갔다"라고 불리며 분노 퇴장(ragequit)의 한 형태로 매우 비매너로 간주되었다.


승리한 쪽이 상대보다 먼저 GG를 입력하는 '선GG' 행위는 더욱 큰 결례로 여겨졌다. 이는 마치 이기지도 않은 경기를 미리 이겼다고 선언하거나, 진 상대의 체면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간단한 두 글자를 누가 먼저 입력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생기는 것은, 디지털 소통의 미묘한 뉘앙스와 복잡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익명의 공간에서 피어난 예의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 그것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게임 속에서 왜 사람들은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려 할까? 이론적으로는 서로를 존중할 이유가 전혀 없다. 상대방을 다시 만날 가능성도 적고, 예의 없는 행동에 대한 제재도 거의 없으니 말이다. 이는 마치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외딴곳에서도 쓰레기를 줍는 행위와 비슷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보상이 없어도 하는 행동 말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온라인 탈억제 효과'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익명성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현실에서보다 더 무례하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탈억제 효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즉, 익명성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친절하고 관대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GL HF"와 "GG"의 관행은 바로 이러한 '긍정적 탈억제'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게이머가 이런 예절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GL HF" 대신 도발적인 메시지를 보내거나, 패배했을 때 "GG" 대신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예외적인 행동들이 오히려 "GL HF"와 "GG"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예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커뮤니티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은, 이런 디지털 예절이 이미 하나의 사회적 기대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디지털 공간에서 형성된 예절은 우리의 다른 온라인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메일에 인사말을 쓰고 맺음말로 마무리하는 것, 소셜 미디어 게시물에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남기는 것, 온라인 포럼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예의 바르게 응답하는 것. 이 모든 행동은 디지털 세계에서의 '예절'을 형성한다. "GL HF"와 "GG"는 이러한 디지털 예절의 선구자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부족주의: 짧은 인사말이 만드는 공동체

"GL HF"와 "GG"는 단순한 인사말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표식으로 기능한다. 이 용어들을 사용함으로써 플레이어는 특정 게임 커뮤니티의 일원임을 나타내고, 공유된 문화적 코드를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마치 특정 사투리나 은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 알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공유된 용어와 의례는 온라인이라는 무형의 공간에서 소속감과 연대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났음에도 같은 인사말을 주고받음으로써 "우리는 같은 규칙과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형성된다. 나아가 이러한 관행은 언어와 국경을 초월한다. 한국인 플레이어와 브라질 플레이어가 만났을 때, 서로의 언어를 모르더라도 "GL HF"와 "GG"라는 공통된 표현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 이는 게임이 하나의 국제적인 언어로 기능할 수 있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바벨탑의 혼란을 넘어서는 새로운 소통 방식인 셈이다.


사회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된 공동체'라는 개념을 통해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을 설명했다. 서로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같은 신문을 읽고, 같은 국가적 상징을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를 '상상'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 세계 게이머들은 "GL HF"와 "GG"라는 공유된 의례를 통해 일종의 '상상된 게임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압축된 소통의 미학

"GL HF"와 "GG"는 최소한의 글자로 최대한의 의미를 전달하는 효율적인 소통 방식의 대표적 사례다. 게임 중에는 시간이 귀중하기 때문에, 긴 문장 대신 짧은 약어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압축된 소통 방식은 시간적 효율성뿐만 아니라 언어의 경계를 뛰어넘는 장점도 있다.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은 언어의 다양한 기능 중 '친교적 기능'을 강조했다. 이는 실질적인 정보 전달보다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둔 언어 사용을 말한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GL HF"와 "GG"도 바로 이러한 친교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들은 실질적인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참여자들 간의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고 게임의 시작과 끝을 의례적으로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현대 언어학에서는 경제성의 원리라는 개념이 있다. 즉, 언어는 필요한 의미를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GL HF"와 "GG"는 이 원리의 완벽한 예시다. 단 몇 개의 글자로 복잡한 사회적, 감정적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이다. 이런 언어적 경제성은 디지털 시대에 더욱 중요해졌다. 트위터의 글자 수 제한, 문자 메시지의 간결함, 이모티콘과 이모지의 발달 모두 더 적은 글자로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하려는 시도다. "GL HF"와 "GG"는 이러한 디지털 시대 언어 진화의 선구자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약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문맥에서 다른 뉘앙스를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명백히 이길 것 같은 상황에서 너무 일찍 "GG"를 입력하는 것은 때로는 항복의 의미가 아니라 냉소적인 뉘앙스를 담기도 한다. 이는 마치 문장 끝에 마침표를 찍느냐 느낌표를 찍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두 글자라도 사용 시점과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은, 디지털 소통의 복잡성과 풍부함을 보여준다.


일상으로 스며든 게임 용어

"GL HF"와 "GG"는 원래 게임 내에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그 범위를 넘어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 영미권 온라인 포럼이나 소셜 미디어를 보면, 누군가 시험, 면접, 프로젝트 발표 등 중요한 과제를 앞두고 있을 때, "GL HF"라는 댓글로 응원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또한 어려운 일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GG!"라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자축 또는 칭찬의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확장은 게임 문화가 더 이상 하위문화가 아닌 주류 문화의 일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언어가 이제는 넓은 디지털 문화권에서 공유되는 공통 언어가 된 것이다. 마치 '패치'나 '버그'같은 컴퓨터 용어가 일상 언어로 편입된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게임 용어들은 세대 간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이런 표현들을 기성세대가 배우고 사용함으로써, 디지털 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마치 10대들의 은어를 부모세대가 배워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약간의 어색함과 웃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세대 간 소통의 일부다.


프로게임 리그에서는 이러한 인사말이 때로는 공식적인 규칙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한 가지 사례로, 프로 리그에서 선수가 "GL HF"를 입력해 경고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는 프로 경기에서 채팅 에티켓이 엄격하게 규제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마치 프로 스포츠에서 선수들의 복장과 행동에 엄격한 규정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처럼 게임 용어는 때로는 공식적인 규범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유로운 소통의 도구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처럼 게임에서 시작된 언어와 관행이 일상생활로 확장되는 현상은 현대 문화의 흥미로 특징 중 하나다. 게임이 더 이상 현실과 분리된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힘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패배의 순간에 피어나는 품격

"GG"를 입력하는 행위는 특히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승리를 존중하는 것은 게임뿐만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교훈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패배의 순간에 품격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인지부조화'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우리는 자신을 유능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싶어 하는데, 패배는 이러한 자아상에 위협이 된다. 이로 인해 패배를 인정하지 않거나,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게임 자체를 폄하하는 등의 방어 기제가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GG"를 입력하는 행위는 이러한 부조를 해소하는 건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패배를 수용하고, 그것을 하나의 경험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자아상의 위협을 줄이는 것이다.


이런 패배의 인정이 디지털 공간에서는 두 글자로 압축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아무리 치열한 경쟁 끝에 패배했더라도, 플레이어는 "GG"라는 두 글자를 타이핑함으로써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승리를 존중한다. 이는 일종의 '심리적 마무리'를 제공한다. 승자든 패자든, "GG"를 통해 게임의 결과를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다음 게임으로 더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GG"는 단순한 게임 용어를 넘어, 실패와 좌절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는 작은 의례가 된다. 패배의 순간에도 상대를 인정하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게임을 넘어 일상에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그리고 이런 덕목을 연습하는 장으로서 게임이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스포츠맨십을 중요한 가치로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것을 넘어, 상대방을 존중하고, 승패에 상관없이 경기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를 의미한다. 디지털 스포츠맨십으로서의 "GG"는 바로 이러한 가치를 온라인 환경에서 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패배자가 승복하는 것은 아니다. 화가 나서 게임을 그냥 나가버리거나(이른바 '파티션 키보드'), 심지어 상대방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커뮤니티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GG"라는 의례가 얼마나 중요한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준다.


디지털 세계의 인간다움을 찾아서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소통하는가는 결국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가, 아니면 협력적인가? 익명성은 무례함을 조장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존중을 가능하게 하는가? "GL HF"와 "GG"의 존재는 인간의 선한 면이 기술적 환경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발현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이 간단한 약어들이 전 세계 게이머들 사이에서 공통된 예의와 존중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우리의 인간성이 가상공간에서도 여전히 빛난다는 증거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물리적 제약이 없는 디지털 세계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고 존중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런 현상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의 인간다움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오히려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인간적 가치를 구현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있다. 디지털 공간이 확장될수록, 그 안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작은 의례들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물론 모든 온라인 공간이 존중과 예의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 반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GL HF"와 "GG" 같은 관행이 널리 퍼지고 존중받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더 나은 디지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경쟁과 승부의 세계에서도 예의와 존중이 가능하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GL HF와 GG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큰 교훈일지도 모른다. 승패의 결과보다 과정의 가치를 중시하고, 상대방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마음. 이런 가치들이 디지털 세계에서도 꽃피울 수 있다면,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의 가상공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AI와 기계,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인간다움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바로 이런 작은 의례들,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는 방식들을 통해서다. 그리고 그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우리가 함께 살아갈 디지털 세상의 품격을 만들어간다.


Good Luck, Have Fun. Good Game.




참고 자료

- "List of StarCraft terminology" - StarCraft Wiki, Fandom

- "What Does 'GLHF' Mean, and How Do You Use It?" - How-To Geek

- "GLHF – Meaning, Origin, Usage" - Cyber Definitions

-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된 공동체>. 서지원(역). 길(도서출판) (2018).

- 로만 야콥슨. <Linguistics and Poetics" in "Style in Language"> (1960).

- John Suler, "The Online Disinhibition Effect", CyberPsychology & Behavior (2004).

- 레온 페스팅거. <인지부조화 이론>. 김창대(역). 나남출판 (2016).

- Carol Myers-Scotton. <Social Motivations for Codeswitching>. Clarendon Press (1995).

keyword
작가의 이전글테트리스로 이해하는 비트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