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세이
미국 작가인 유대인 필립 로스, 그의 소설 『울분』의 책 표지는 붉은색이었다. 처음엔 무심히 지나쳤던 그 색깔이 책을 다 읽고 나자 핏빛으로 다가왔다. 죽음과 전쟁, 나아가 사랑과 분노를 상징하는 색으로. 유대 율법의 정결의식에 따라 짐승들을 잡을 때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던 피와 한반도 능선에서 죽어간 수많은 젊은 병사들의 피가 선명하게 연상되었다. 주인공 청년 마커스의 인생이 간절한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자신이 걱정했던 최악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면서, 나 역시 울분이 치밀어 올랐기에 때때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책장을 넘겨야 했다. 인생이란 너무도 연약하여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영원한 비극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었다. 삶이란 선택 앞에서, 전쟁이란 가장 큰 폭력 앞에서 한 인간의 운명은 왜 이다지도 나약한 것인가. 인류의 집단 지성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내 인생 역시나 결혼생활만큼의 세월과 전쟁을 치르느라 분노하고 힘들어하지 않았던가. 이혼을 떠올렸었다. 이제는 그 상처가 해석이 되어 조금씩 딱지가 앉아가고 있긴 하지만.
1998년 『미국의 목가』로 퓰리처상을 받은 필립 로스는 미국 문화예술 아카데미 최고권위의 상인 골드메달도 받은 유명한 작가였지만 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울분』은 유대인으로서 살아야 했던 작가 자신의 정체성과 청춘의 중요한 고민과 질문을 담고 있어 마치 그의 자서전을 읽는 듯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뉴저지 주 뉴어크, 주인공 청년 마커스 매그너는 코셔 정육점을 운영하는 유대인 아버지의 외아들로 태어나 순종적이고 성실한 모범생으로 부모의 자랑이었다. 그는 친척 가운데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하지만 대학생활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한국전쟁에 징집당해 생을 마친다. 세계 2차 대전에서 전사한 두 사촌들처럼. 몇 장을 넘기지 않아 작가 특유의 리얼한 삶의 모습을 담은 사실적인 묘사와 거침없이 솔직한 표현에 충격과 함께 이끌려 들어갔다. 이런 것이 바로 소설의 미덕이 아닐까. 우리 인생에 겉으로 드러내기 어렵지만 중요한 삶의 문제들을 현실보다 더 진실하게 본질을 다루는 것, 그래서 독자가 자신의 삶을 직시하게 만들고 삶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소설과 텍스트의 힘이리라.
이 책에서는 청년들의 최대 고민 중의 하나인 성과 사랑을 다룬다.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한 시기는 주인공 마커스의 나이와 거의 같단다. 그가 젊은 시절 겪었던 고민을 작품화한 것만 같았다. 적나라했다. 성에 대한 본능과 그 욕구의 해소는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라 많은 소설에서도 성을 다루고 있다. 아버지의 과도한 집착을 피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미션대학으로 편입한 마커스는 매력적인 올리비아란 여학생과 데이트를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저항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던 최고의 쾌감과 만족을 준 그녀의 행동에 오히려 혼란을 느낀다. 걸레라는 느낌을 갖게 되며 그녀를 멀리 한다. 이 부분에서는 여자에게 더 가혹하게 가해지는 편견에 나도 울컥 분노가 올라왔다. 혼전 순결이란 문제와 결혼이란 제도, 그때와 몇십 년이 지난 지금의 성문화의 변화도 비교해 보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가끔 격앙된 마커스의 입에서 나오는 단 두 마디의 욕, 강렬했다. 욕도 이렇게 효과적인 대사로 쓰일 수 있다니. 이 점도 내겐 권위적인 글쓰기에 대한 반항 같았다.
마커스, 그에게 대학의 전통인 채플 시간은 무의미하고 필요치 않은, 시간을 낭비하는 수업일뿐이었다. 그렇지만 학교를 졸업하려면 꼭 해야만 하는 과정이었기에 갈등한다. 아버지를 도와 닭의 내장을 손질하던 일이 역겨워서 구역질이 났지만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며, 자신이 해야 할 채플 시간도 견뎌내려 마음을 다잡는다. 가난하고 지긋지긋한 정육점 아들을 벗어나기 위해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려 올 A학점을 받아 졸업생 대표로 고별사를 하는 목표에만 집중한다. 주말엔 알바를 하면서. 소설에서는 다민족국가인 미국에서 유대인의 위치, WASP(백인 앵글로색슨계 개신교도)와는 달리 차별받고 분리된 가난한 계층임을 자주 드러낸다. 그런 환경에서 교육만이 성공을 위한 탈출의 사다리이기에 그와 그의 가족들은 많은 것을 희생하며 인내한다. 한평생 무거운 짐승을 옮기고 썰고 옷에 피를 묻혀야만 했던 아버지의 약해져 가는 몸과 바튼 기침소리, 아버지를 도와 일하며 생긴 엄마의 근육은 우리 부모의 모습과 겹친다.
내겐 유대인의 정결의식은 다소 추상적이었고 생소했는데 이 책의 구체적인 묘사가 섬뜩했다. 그들은 먹는 동물조차도 율법에 따라 정결한 의식을 행했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칼로 한 번에 목을 그어 죽여야 했다. 즉사시킨 목 없는 닭을 깔때기에 넣어 피를 뽑아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어린 마커스는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아버지의 사업이고 사업은 지저분한 사실이란 것도 받아들인다. 그에게 피는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면도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시도를 했던 올리비아, 부유한 의사의 딸인 그녀 손목에 숨길 수 없는 흉터는 그녀가 겪은 충격적인 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녀의 그 행동을 마커스는 나중에는 랍비의 율법에 따른 정결한 제의에 비유하며 연민의 해석을 하게 된다. 그녀를 걸레로 여겼던 자신의 편견을 돌아보면서. 나 또한 피는 결코 익숙해지기 쉬운 것이 아님에도 살기 위해 계속 피를 흘리는 일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피와 살을 공급받아야 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또 다른 생명에게 고마움과 겸손함을 배워가고 있다.
한 편, 마커스는 와인스버그 대학 기숙사에서 방을 두 번이나 옮긴 것과 관련해서 코드웰 학생과장과 면담을 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의 날 선 질문과 답변은 필립 로스가 가장 하고 싶은 장면이었으리라. 이 책의 클라이맥스였다. 오랜 전통을 지닌 학교의 규율과 종교적인 관습을 소중히 지키는 과장과 그것에 반항하며 거부하는 청년의 입장이 격렬하고 길게 이어져, 면담은 지성과 논리의 날카로운 전쟁 같았다. 하지만 작가는 두 사람의 주장을 균형 있게 싣고 있다. 러셀의 저서를 인용하며 종교의 역겨운 부당함을 설파하는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마커스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이를 반박하는 노련한 학생과장의 대사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들의 설전을 보면서 내 청춘의 인생 질문들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얼마나 고심하고 고민했는지, 나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유신론자인 나에도 단단한 신앙을 위한 회의와 흔들림은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에.
작가는 역사적인 사건 즉, 1950년 한국 전쟁과 그때 대학 생활을 시작한 마커스의 대학 일 년여를 다루었다. 심지어 마커스는 1932년 태어나 1952년에 죽었다고 설정한다. 그 시기는 비참했던 우리 역사와 관련되었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세계 2차 대전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에 또 터진 한국에서의 전쟁으로 미국의 청년들도 몇 십만 명이 죽어나간다. 전쟁이야 말로 가장 큰 폭력이며 개인과 공동체에게 행해지는 가혹한 운명인데 지금도 전쟁의 불꽃은 끝이 없으니. 그래서 작가는 전쟁의 비참함을 고발하며 쓸 수밖에 없으리라. 마커스의 일생은 자신의 운명을 피하고자 했으나 결국은 벗어나지 못했던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적인 신화와 겹친다. 최선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못하고 죽는 결론은 허무하기조차 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 독자인 내 몫의 해석도 있으리라. 곱씹게 되는 소설『울분』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날카롭고 묵직한 시선을 느낀다. 바로 그것이 삶을 사랑하는 그만의 방식이 아닐까.